[Opinion] 기다리는 시간마저 사랑하는 당신에게,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글 입력 2015.10.07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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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낙엽, 벤치, 노을, 바람, 시집 … 운치가 느껴지지 않나요? 낙엽이 쌓인 공원 저기 한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가을을 느끼고 있나요?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의 연인이 오기 전까지 시집 한 권, 아니 시 한 편 읽어보시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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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소위 말하는 수능 모의고사에도 단골로 출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화자가 소극적인 모습을 띄다가 결국엔 적극적인 모습을 띄는 … 이런 시어, 시구풀이 말고 모든 걸 떠나서 단어 하나하나를 느끼며 시를 읽어보세요. 그래요, 지금 벤치에 앉아있는 당신에게 딱 어울리는 시가 아닌가요?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꿍꿍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그대가 오기 훨씬 전부터 설레는 마음에 미리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기 시작하는 당신은 낙엽이 흩날리는 소리에도, 저기서 다람쥐가 툭 튀어나오는 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라고 있을 겁니다. 혹시 그대 발자국은 아닌가, 얼마만큼 왔나, 거의 다 온건가? 하고 말이죠. 언제 올지 모르는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만큼 지치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 귀를 쫑긋 열고 그대이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죠. 아아! 저 멀리서 귀퉁이를 돌아오는 한 사람이 보입니다. 마치 그대 같아요! 그대의 향기, 그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100보, 70보, 50보, 10보 … 아, 당신이 아니었군요. 당신일거라고 기대했던 잠깐의 희망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건가요, 오긴 오는건지요. 혹시 오는 길에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닌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이제 나는 당신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려고 합니다. 저 멀리서 오고 있는 당신을, 온 힘을 다하여 오고 있는 당신을 기다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쯤에서면 당신을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쯤이면 내가 보이지 않을까, 나를 더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요. 그대가 있음직한 곳으로, 그대의 느낌이 있는 곳으로 어딘지 모르지만, 당신이 나를 그렇게 찾아오고 있는 것처럼 당신에게 나도 다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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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구가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입니다. 단순히 기다림 이상의 더 적극적인 행동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말이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그만큼 갈망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내게 와줄 것만을 기대하고 기다리지 말고, 나도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언젠가 그 만남의 결실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의미가 참 좋았어요. 이렇게 했을 때, 마침내 당신을 만나게 되면 ‘네가 힘들까봐 나도 이만큼 걸어왔어. 수고했어. 우리 이제 함께 걷자.’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우스갯소리 일수도 있지만,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는 시인이 돈을 빌려준 친구가 언제 돈을 갚으러 오나, 하고 독촉하는 마음에서, 괜히 애타는 마음에서 쓴 시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서 낭만이 깨지는 것 같지만요. 단순히 사랑하는 연인 뿐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꿈도, 곧 있을 점심시간도, 친구에게 빌려 준 돈도, 모든 대상이 이 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이 시가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곧 인내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늘 하루하루를 기다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에 대해서 한번쯤 새롭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을 기다리기 딱 좋은 가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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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http://kr.best-wallpaper.net/Golden-autumn-park-nature-landscape-lawn-bench-sun_2560x1600.html

http://www.mimint.co.kr/know/board_view.asp?strBoardID=goodbbs&bbstype=love&bidx=8823

네이버 책 이미지


[유다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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