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그말리온 신화, 사라진(Sarrasine)과 히긴스(Higgins) [문학]

매력적인 피그말리온의 이야기
글 입력 2015.09.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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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피그말리온의 신화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종의 여성 혐오주의자였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조각상으로 만든다. 그의 조각상은 너무나 완벽해서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다.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에게 옷과 장신구들을 입혀주고, 말도 건네는 등 조각상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져만 간다. 하지만 조각상은 조각상일 뿐, 결코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사람이 될 수 없다.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이 조각상 같은 여성을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을 사람으로 바꿔준다. 결국 사람이 된 조각상 ‘갈라테이아’와 피그말리온은 결혼한다.1)
 
  이 매력적인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후대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사라진》(Sarrasine)의 등장인물 ‘사라진’(Sarrasine)과,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Pygmalion)의 ‘헨리 히긴스’(Henry Higgins)는 각각 근대와 현대의 피그말리온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라진》(Sarrasine)


BalzacSarrasine01.jpg

Sarrasine By Alcide Theophile Robaudi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먼저, 《사라진(Sarrasine)》(1830)의 등장인물인 ‘사라진’은 프랑스의 조각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대한 소질과 함께 일종의 예술가적 광기와 자유분방함을 가진 ‘사라진’은, 아버지가 그에게 바랬던 법조인의 길이 아니라 조각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는 어느정도 인정받는 조각가가 되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사라진의 목표는 그를 더욱 더 예술에 몰두하게 만든다. 우연히 들어간 로마의 한 극장에서 사라진은 그 극장의 프리 마돈나인 ‘잠비넬라’(Zambinella)에게 반하게 된다.
 


“그 순간 그는 그때까지 자신이 어딘가에 있는 그 완벽함을 찾아 여기저기 헤맸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감탄했습니다”
 
- p.330(《S/Z》 부록 《사라진》, 김웅권 역)



    사라진에게 잠비넬라는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이다. 잠비넬라는 사라진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사라진은 잠비넬라의 모습을 조각함으로써 그녀의 모습을 복제한다. 하지만, 잠비넬라에게는 사라진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로 잠비넬라는 ‘거세된 남자’(카스트라토)라는 사실이다. 잠비넬라와의 만남 속에서 그녀(?)는 사라진에게 분명히 그가 여자가 아니라는 암시를 주나, 이미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사라진에겐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 후, 사라진은 프랑스 대사에 초대받게 되고 그 곳에서 남자의 모습을 하고 노래하는 잠비넬라의 모습을 보게 된다. 피그말리온의 갈라테이아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뒤이어 한 로마 공작에게 잠비넬라가 카스트라토 가수란 얘기를 듣게 된 사라진은, 몹시 충격을 받고 잠비넬라를 자신의 작업실로 납치한다.



“나는 현실의 어떤 여인을 보면서 끊임없이 저 상상의 여인에 대해 생각할 거야.”
(중략)
“나에게 그대는 지상에서 모든 여자들이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어!”

- p.352 (《S/Z》 부록 《사라진》, 김웅권 역)



   사라진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여성, 그의 갈라테이아가 파괴되는 순간, 사라진의 광기는 폭팔해 잠비넬라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그 순간 잠비넬라의 후원자인 추기경의 부하들이 들이닥쳐 사라진을 죽이고 만다. 근대의 피그말리온, 사라진은 그의 갈라테이아의 비밀이 풀림과 동시에 파멸을 맞게 된다.
 




《피그말리온》(Pygmalion)


Cover-play1913.jpg

Illustration depicting Mrs. Patrick Campbell as Eliza Doolitl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다음으로, 희곡 《피그말리온(Pygmalion)》(1916)을 보자. 이 작품은 벌서 제목부터 피그말리온이다. 음성학자인 헨리 히긴스(Henry Higgins)교수는 엄청난 음성학 덕후이다.(이 말이 아니고선 히긴스의 음성학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서도 그들의 출신지를 정확하게 알아맞히고, 신기한 영어 발음을 들으면 녹음해서 표본을 수집한다. 히긴스에게 음성학은 ‘예술’이다. 하지만, 히긴스의 예술을 모독하는 여자, 일라이자(Eliza)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표준어에서 심각하게 동떨어진 영어를 구사하는 일라이자는, 히긴스에겐 그의 예술인 음성학을 모독하는 존재이다.
 
 

히긴스 : 그렇게 우울하고 역겨운 소리로 말하는 여자는 어디에도 있을 권리가 없고, 살 권리가 없어! 네가 영혼을 가진 인간 존재이며, 말을 할 수 있는 신성한 선물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라. 네 모국어는 셰익스피어, 밀턴, 그리고 성경의 언어야! 그러니 거기 앉아서 불쾌한 비둘기처럼 중얼거리지 마.

- 《피그말리온》 Act 1



    거리에서 꽃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일라이자는, 예쁜 말씨를 배워 더 좋은 직업(꽃가게 점원)을 갖고자 히긴스를 찾아간다. 이런 일라이자는 히긴스에게 예술적 도전으로 다가온다.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가르쳐 결국 상류층의 말을 쓸 수 있게 만들어 낸다. 하지만 거만한 히긴스는 그의 예술적 실험이 성공했음에 기뻐할 뿐, 일라이자는 무시한다. 히긴스의 갈라테이아, 일라이자는 상처받아 히긴스를 떠나버린다. 현대의 갈라테이아는 독립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그녀를 만들어준 자를 떠나는 것이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점은, 피그말리온 신화가 문학 작품 속에서 차용되면서도 그 결말과 작가의 (차용한)목적의식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사라진》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번역한 버전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버전이 거의 20년 전에 출간된 것이라, 조금 더 깔끔한 번역을 원한다면 롤랑 바르트의 《S/Z》에 부록으로 달린 텍스트를 보면 좋다. 《피그말리온》은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로 우리 나라에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작품은 흥행을 위해 원작의 결말도 바꿔버린 할리우드 자본주의의 끝을 보여준다. 버나드 쇼가 작품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싶다면 희곡 텍스트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
《사라진(Sarrasine)》 텍스트 인용: Roland Barthes. S/Z. tran. 김웅권. 서울: 동문선, 2006.
George Bernard Shaw, Pygmalion
1)네이버캐스트 신화, 인간을 말하다.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피그말리온
 
그림 출처
"BalzacSarrasine01" by Alcide Theophile Robaudi - Honore de Balzac, Sarrasine. Philadelphia: George Barrie & Son, 1897.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Commons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alzacSarrasine01.jpg#/media/File:BalzacSarrasine01.jpg
"Cover-play1913".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Commons -


[이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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