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뱀파이어 이야기 [문화 전반]

사악한 뱀파이어가 로맨틱한 이미지로 변모하기까지
글 입력 2015.07.2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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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인기 있는 소재로 다뤄지고 있는 뱀파이어 열풍의 시작은 미국 소설가 스테파니 메이어의 소설 [트와일라잇]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부터였다. 그후 그녀의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총 5편의 영화로 영화화되었고 미국에서는 [뱀파이어 다이어리], [트루 블러드] 등 뱀파이어 소재의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트와일라잇.jpgVampire-diaries-season-4.jpg
  
2015070216304621546_1.jpg블러드.jpg
 

한국에서도 이 열풍은 예외가 아닌데, 현재 방송 중인 [밤을 걷는 선비]나 [오렌지 마말레이드], 이미 종영된 [블러드] 모두 주인공으로 뱀파이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현재 우리에게 뱀파이어는 평범한 인간인 우리들과 다르게 빠르고 강하며 인간의 피를 마시기 때문에 인간에게 위협적이나, 감정이 있는 로맨틱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이고, 우리는 당연하게도 그들이 존재할 리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한때 우리는 뱀파이어가 정말 존재한다고 믿었다. 가톨릭이 유럽 최고의 권력이었던 중세 시대, 교회에서는 뱀파이어에 대한 보고서를 여럿 발간하였고, 민간에서도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뱀파이어들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었다. 의학 지식이 발달하지 않았고 자연현상을 신의 뜻으로 굳게 믿었던 옛날 사람들에게 아마도 자연재해로 인한 시체의 유실이나 출현, 생매장 당한 시체가 깨어나 돌아오는 현상은 뱀파이어의 존재를 인정하게 할만도 했다. 17-18세기에 이르러 교회가 뱀파이어의 존재를 신의 이름으로 인정함에 따라 뱀파이어에 대한 믿음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증폭된다. 그들에게 뱀파이어는 더 이상 옛날 이야기에나 등장하는 상상 속 귀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신성모독과 다름없는 뱀파이어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보고서를 출간하였을까? 그 이유는 당대 전염병의 유행에서 찾을 수 있다. 전염병으로 죄 없이 죽어간 연약한 이들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교회는 뱀파이어를 공포와 증오의 대상으로 지목한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뱀파이어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위협적이고도 무서운 존재가 되었고 모든 악을 뱀파이어의 소행으로 치부하며 교회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믿음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가 상상 속 귀신이 아닌 현실의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되자, 당대의 악명 높았던 연쇄살인범들이 뱀파이어로 규정되어 좀 더 구체적인 뱀파이어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영국 작가 브람 스토커의 소설 [흡혈귀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인 블라드 쩨뻬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뱀파이어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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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드 쩨뻬쉬


블라드 쩨뻬쉬는 루마니아 역사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무찌른 위대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블라드는 현 루마니아 남부에 위치한 15세기 왈라키아의 왕자였으며,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블라드 드라쿨(Vlad Dracul)이었는데 ‘용’이란 뜻을 가진 Dracul에 루마니아어로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e)a’를 붙여 블라드 드라큘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쩨뻬쉬는 ‘꼬챙이’라는 뜻으로 그가 전쟁 포로나 범법자들을 긴 꼬챙이에 꿰는 방식으로 잔인하게 처형하였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오스만투르크와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투르크 족들을 생포하였는데, 포로들은 꼬챙이나 말뚝에 꽂혀 서서히 죽어갔고 블라드 쩨뻬쉬는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하였다고 한다. 잔혹한 그의 처형방식 외에도, 블라드 사후, 그가 매장되었던 곳을 파 보니 관 속이 텅 비어 있었다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그를 뱀파이어로 규정짓게 한 확고한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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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체베트 바토리


뱀파이어의 전형을 만든 또 하나의 실존 인물은 헝가리 귀족 에르체베트 바토리(Erzsebet Bathory)백작 부인이다. 군인이었던 남편 페렌츠 나다스니(Ferenz Nadasdy) 백작이 1600년 전장에서 전사하자 마흔 살의 에르체베트 바토리는 혼자 남았다. 어느 날 바토리는 하녀의 실수를 탓하며 때리다가 피가 그녀의 얼굴과 팔에 튀었는데 피를 닦다가 순간적으로 피가 묻은 부분의 살이 하얗고 탱탱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했던 그녀는 그 이후로 젊은 여인의 피가 그녀에게 젊음을 되찾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하녀들을 시켜 농부의 딸들을 납치하여 그들의 피로 목욕을 했다. 그녀는 단순히 소녀들의 피만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즐겼고 다양한 고문 도구들을 제작하여 소녀들을 죽이는 데 사용했다.
마을의 젊은 여인들이 바토리의 성에서 죽어나간다는 소문이 주변에 퍼지자, 그녀는 마침내 체포당하는데, 바토리의 만행에 가담한 하녀와 하인들은 모두 사형당했지만 정작 그녀는 귀족이라는 이유로 사형당하는 대신 창과 문이 폐쇄된 독방에 갖혀 평생을 살았다. 그녀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녀가 죽인 처녀들의 수는 50명에서 많게는 610명에 이른다.

이렇듯 전염병의 원흉이자 연쇄살인자와 같은 공포의 이미지였던 뱀파이어가 로맨틱한 이미지로 변모하게 된 데에는 2차 저작의 힘이 크다. 브람 스토커의 소설을 토대로 하여 처음 제작된 1931년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영화 [드라큘라]에서 뱀파이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존재였지만 1992년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 게리 올드만 주연의 영화 [드라큘라]에서 처음으로 뱀파이어는 사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마에게 몸을 팔게 된 비극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1994년 닐 조던 감독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주연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도 뱀파이어는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사람의 피를 거부하며 인간적인 고통으로 고뇌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후 뱀파이어는 공포스러운 이미지이기보다 강하고 위협적이지만 인간성과 본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감정을 느끼는 섹시하고 로맨틱한 이미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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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1992]의 한 장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의 한 장면





참고목록

[네이버 지식백과] 드라큘라 [Dracula] (두산백과),
뱀파이어 연대기 - 뱀파이어의 낭만적 부활, 역사 속 뱀파이어

[네이버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드라큘라(1992)
[이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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