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부란 무엇인가?- 대한민국 교육은 옳은 것인가. [문화예술교육]

글 입력 2015.04.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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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들어가며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잔소리’를 꼽자면 무엇이 있겠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부해”가 아닐까 싶다. 필자가 아직 학생신분이어서 일까. 한글을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구구단을 배우고… . 빠르면 유치원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생 또는 직장인이 되어서도 우리들은 ‘공부’라는 것을 한다. 또 공부하기를 강요 받는 것도 낯설지 않다.


01. 대한민국에서 ‘공부’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공부’에 대한 유별난 집착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2014년 교육부와 통계청이 공동으로 연구한 사교육비 의식조사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24만 2000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매년 늘어가는 추세이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교육비 지출이 심한 나라로도 꼽힌다. 이렇게 비용을 아끼지 않고 교육에 열을 올리는 우리사회의 교육은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지난 10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 안산지역 고등학생 2000여명이 모여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을 추모하는 1주년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추모를 위해 모인 학생들 중 한 학생은 “어른들은 이제 그만 잊고 공부에 충실하라고 합니다. 도대체 저희에게 공부가 무엇이기에 저희에게 친구들을 잊으라고 하십니까?”라고 말했다.

그렇다. 공부가 무엇이길래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잊으라고 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공부의 의미는 사회문제, 억울한 사람들에게 관심 끄고 그저 국영수 책을 달달 외우는 것이 다인 것인가. 피타고라스의 정의가 죽은 아이들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세월호 사건 당시에도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있다가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 동안 학교에서 배운 대로 말만 잘 들었을 뿐인데 그게 곧 죽음이 되었다.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잃은 것이다.


02.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서의 ‘학교’

알튀세르.JPG


마르크스 사상에 구조주의적 해석을 제시한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자본주의적 착취 관계를 재생산하고자 하며, 국가 역시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가 기구를 설정한다고 말했다. 알튀세르는 국가기구는 억압적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먼저, 억압적 국가기구는 경찰, 법정, 감옥, 군대 등과 같이 사회질서에서 벗어나면 억압적으로 교정하는 국가기구를 뜻하는데, 이는 공권력이라는 명분으로 노동계급을 규제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를 강제하는 기관들이다.


한편,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종교(교회), 문화, 학교(교육), 언론(미디어)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는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대량으로 주입하는 국가기구이다.


이데올로기적국가기구의 대표적인 기관이 바로 학교이다.
학교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학교는 거의 모든 계급이 의무적으로 거쳐 가는 곳이며, 마치 중립적인 장소, 또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적합한 가치만을 가르친다. 즉, 상식의 한계를 설정해서 생각의 기준을 한정시키는 국가기구가 바로 학교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학교에서는 자본주의의 질서를 가르치는 것과 함께 어른들이 권력자, 지배계급이 되어 학생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학습을 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호기심도 용납되지 않으며 그저 책에 있는 내용만을 머리에 넣기 바쁘다. 문제의식을 갖고 질문을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이러한 주입식 교육을 통해 학생은 사고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되고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세월호 사건 때처럼 곧 죽음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


03. 소통으로서의 공부_문제제기식 교육

우리는 이제껏 체제의 순응을 위해, 누군가에게 통제 당하기 위한 ‘공부’라는 것을 해온 것이다. 바보같이 말이다. 깨달아야 한다. 더 이상 현 교육체제에 속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국영수말고 사회문제와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프레이리.jpg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이러한 주입식 교육을 은행저금식 교육이라 명칭하며, 이를 비판하였다. 그는 “학생들이 지식의 양을 저축하면 할수록 비판적 의식은 그 만큼 약해지게 된다”고 하였다. 이는 곧 보이는 것만을 믿고 따르며 숨어있는 부조리는 파악하지 못하며 살아가게 됨을 뜻한다.

이에 프레이리는 우리가 지향하고 실천해야 할 교육으로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시하였다. 문제제기식 교육은 의식의 본질에 답하기 위해 의사소통을 도모하는 것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를 하여 그 속에 숨어있는 이데올로기를 발견하는 교육 방식이다.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끝없이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하는 힘을 기르고 총체적인 의식적 자아를 확장하는 것을 창조적인 교육으로 보는 것이다.


04. 마치며 


필자도 이러한 프레이리의 교육에 동의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엄마에게 ‘이게 뭐야?’라고 수 없이 질문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대상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지게 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대상에 대해 ‘이건 이거야’라는 식의 단정을 지어버리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휩싸인 채 살아간다. 주입식 교육에 의해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은 이상 여러분도 이제는 알아야 한다. 지금처럼 주입식 교육에 의해 현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간다면 또 어떤 곳에서 우리의 눈물과 후회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을.

 




참고자료

한겨레 [2030 잠금해제] 공부의 의미를 묻다(임자헌)

파울로 프레이리 [페다고지(남경태 역/ 그린비/ 2009. 07)]

[김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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