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에 너의 자리를 알리는 행위 - 단편소설집

너무 많은 사랑을 주는 사이에 뒤틀려버린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의 관계
글 입력 2019.05.1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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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관람 후 프로그램 북과 희곡집 사이에서 고민을 할 정도로 괜찮은 작품을 만났을 때, 그 작품이 주는 영향력에 취해있는 한편으로는 일상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나의 것으로 만들어 타인에게 전달할 건지 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어둠 속에서 무대가 빛을 내면서 시작되는 작품의 오묘한 분위기라던가,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집단 무의식이라던가 그런, 나의 몇 줄짜리 감상평으로는 채 전달되지 못할 사소한 부분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분명히 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도 공연이 재해석되어 완전한 기승전결을 갖춘 타인의 글을 보게 될 것을 생각하면, 그의 재능에 감탄할 내 모습이 그려지는 것과 동시에 나의 글을 초라하게 여길 것을 알기에 리뷰를 작성하기까지의 일주일 남짓의 기간은 아주 큰 긴장감으로 둘러싸여 있다.

감동하였다는 단순한 후기에서 벗어나서, 작품을 단순한 오락거리로 만드는 재미있었다는 감상평에서 벗어나서 내가 느낀 그 감정을 전달하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 <단편소설집> 작품에서 교수 루스 스타이너는 글쓰기는 가르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글쓰기란 어떤 뛰어난 기교나 재능이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평범한 일들을 어떻게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세상에 알리는 것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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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어디서부터 뒤틀리기 시작했나

<단편소설집>은 단편소설을 내는 대학교수 루스 스타이너와, 그의 집에 온 것만으로도 감격해 어쩔 줄 모르며 사고를 치기 일쑤인 리사 모리슨 두 명의 여성만이 무대에 올라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스승의 역할을 맡은 루스는 어설픈 리사에게 자신의 인생의 진리를 여럿 던져준다. 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말을 하면 안 되고, 글로 써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그의 말이었다. 자기가 하는 말을 전부 공책에 받아적으려고 하는 리사에게 모든 것을 적지 말라고 했다. 잊어버릴까 봐 걱정하는 리사에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너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울려대는 전화기를 무시하며, 급하다면 계속해서 전화기를 울려댈 거라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니 전화를 받지 않을 거라는 여유를 부린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말이 모두 지혜로 가득 차 있다고 믿지 말라는 조언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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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가르치는 사람은 두 가지 정도로 나뉜다. 자기 재능에 도취해, 자기보다 삶을 덜 일구어 온 자에게 조건 없는 선망을 받으며 자존감을 채우려고 하는 부류가 있다. 그들은 진정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라면 으레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행동을 해야만 자신의 성공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도 채워지지 못한 하찮은 자존감은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무 상관 없는 타인의 선망 어린 눈빛을 보기 전까지 그칠 줄 모른다. 당연히 그것으로도 텅 빈 마음이 채워질 리가 없어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행위에 사람들은 오히려 가엾음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가 보통 스승이라고 일컫는 사람은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이다. 자신의 재능을 뽐내듯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타인에게 닿아서 어떠한 영향력을 가져다 줄지를 안다. 자신이 일궈온 삶의 흔적을 어떻게 전달해줄지를 안다. 제자가 자신을 존경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정의되지 않는다. 타인에 의해 정의되는 삶이라는 것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리사는 스승의 눈만 바라보며, 모든 것을 다 흡수할 것 같은 자세로 감탄하며 루스의 말을 경청한다. 리사에게 루스는 선망의 대상이다. 몸을 쉬어가기 위해 마련된 인공적인 자신의 집과는 다르게, 삶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루스의 서재를 보며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동산에 온 것 같이 기뻐했고, 루스와 마주 보고 앉아 향이 좋은 차를 마시고 있는 그 상황마저 인생에서 기록해야 할 순간으로 귀중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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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일방적인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다른 모양새를 취해간다. 우디 앨런이 10년을 같이 산 사람과 함께 키웠던 입양아와 사귀다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며, 리사는 예술가가 가지고 있었던 ‘시대의 양심.’이라는 이미지에 금이 난 것에 강하게 분노했다. 루스는 예술가에게도 사적인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자기는 그게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리사를 보며, “왜 그 일에 직접 상처를 받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 분노 이면에 있는 리사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리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묶어낼 정도로 많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스승과는 의논하지 않은 곳에 자신의 원고를 투고해서 등단을 할 때쯤 둘의 갈등이 극심해진다.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루스에게 리사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스승과는 안 보내기로 했지만, 자기 혼자 일방적으로 보낸 곳이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겨우 말하는 리사의 모습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나 지나서 스승에게 이야기한 것도 인생 최대의 용기를 낸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리사는 작가가 되어 젊은 시절에 루스가 델모어 슈왈츠와 했던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출간한다. 스승에게는 유일하게도 빛나는 인생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루스와 리사가 만난 지 7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기에 늙고 병들어버린 루스에게 찾아가, 리사는 스승에게 칭찬받을 줄 알았지만 루스는 불같이 화내며 책을 모두 한곳에 모아 불태워버리라고 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를 넘어서 능력과 사회적 성공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자와, 그저 배신당하고 상처받은 한 사람. 스승은 제자에게 인간적인 유대감을 원했지만, 제자는 끝내 제자로 남고 말았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다.



끼니 사이에 먹기

리사가 루스에게서 처음 글쓰기를 받을 때 냈던 글의 제목 ‘끼니 사이에 먹기’, 폭식증을 다룬 글이었다. 루스는 글만 보고서는 진지한 사람일 줄 알았다면서, 리사가 쓴 글일 줄 몰랐다고 한다. 그도 그럴 만도 한 게, 리사는 루스의 서재에 들어와서 가만히 있지도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돌아다니고 찻잔에 담긴 물을 엎어버리는 사고를 친다. 그러고는 자기가 너무 긴장해서 그렇다는 변명을 구구절절 말한다.

루스가 자기에게 하는 칭찬과 비난 모든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자기가 쓴 글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리사 자신과 관련된 것 모두에서다. 끝을 올려서 말하는 말투를 언급하며, 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느냐고 궁금해하는 루스에게 죄 지은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하는 모습이나, 수식어를 지나치게 사용한 소설의 구절을 언급할 때라던가 리사의 모습은 늘 누군가에게 혼나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애초에 배우지 못한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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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이야기를 하며 차차 리사가 왜 연극을 하는 듯한 톤의 목소리로 조급하게 말을 하며, 자신에 대한 평가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조금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던, 아니 적어도 리사 본인이 만족할 만큼 사랑해주지 못한 부모님이지만 리사는 처음 등단을 한 책을 아버지에게 보내준다.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숨기고 싶지 않다고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사실 그의 내면에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무엇보다 크게 들끓어 오른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루스를 친구로 대하지 못하고, 스승으로만 여기며 그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 역시 가정에서 왔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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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트라우마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해결될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폐소공포증,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떤 것에 대한 공포증은 그냥 그 상황이 다가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장이 막히고 두려워진다. 더 이상의 아무런 이성적인 생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자신에게 불안감을 주는 장소나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본능적인 움직임밖에는 하지 못한다. 그런 물리적인 상황과 유사하게 트라우마란 것은 자신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어떤 정신적인 체계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트라우마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 사람은 자신이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지 못할 때는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존재하기 위한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리사에게 그것은 글쓰기였다. 자신의 삶을 묶어낸 단편소설집을 출간하고, 더는 쓸 소재가 없어지자 그는 불안해했다. 불안해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이제 모두 고갈되었다고 스승에게 외친다. 스승이 쓴 소설이 어떠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것도 자기 안중에는 없다. 리사에게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초조해 하는 스승을 신경 써 줄 여유가 없다.

지나가 버린 과거에 얽매여서, 더 아름다워질 수 있고 빛날 수 있는 현재를 놓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인생을 통틀어봤을 때 분명 본인도 후회할 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고통은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느냐를 두고 나약함과 강함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을 절대 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히 세상에는 존재하고,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트라우마라도 인간의 뇌에 하나의 흔적이 새겨지는 순간 ‘의지’라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같은 일을 겪어도 이겨낼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본인이 아닌 이상 비난할 자격도 없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거나 보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정말로 다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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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사생활,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할 권리

<단편소설집>의 극 중에 나오는 우디 앨런이 10년간을 동거한 여자와의 입양아 순이 프레빈과 결혼을 했다는 소식에 분노하는 리사와, 예술가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며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는 루스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연예인은 우리 대신 막살아주는 사람들이라고 하기까지 하며 두 사람은 극단적인 의견의 대립을 보여준다.

만일, 채식주의자라고 TV에 나오던 연예인이 일상에서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잡식을 한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윤리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판매하다가, 실상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국민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어떤 청렴한 역할을 하던 연예인이 사생활에서는 난잡한 면모를 보인다면 그건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 그 난잡한 정도가 불법이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불법이 아닌 정도로, 그저 일반인들이 생각해온 그 사람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정도라면 실망을 하는 것은 개인의 몫일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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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대목이 또 하나 있었는데, ‘국가 예술지원기금NEA(National Endowment for Arts)’를 위한 연설을 할 때 자신의 인생이 아닌 거짓말을 이야기하면서 리사에게는 단순히 조금의 과장이었다고 한다. 국가 지원이 예술의 본질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연설을 위해서 기꺼이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느냐, 아니면 어떤 일을 위해서는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야 하느냐의 문제였다.

그토록 올곧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리사였지만, 정작 본인은 스승의 삶을 본따와 자신의 소설로 만든다. 리사는 루스도 연설에서 남의 인생을 자기 것인 양 거짓말을 했는데 왜 자기는 그러면 안 되냐고 따지지만, 루스는 자기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화를 낸다.

언뜻 보기에는 리사와 루스 모두 이중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리사는 사람이란 예술에서도 오로지 청렴결백해야 한다고 주장해오면서 정작 자신은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자 스승의 삶을 소설의 소재로 삼아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다. 그러나 리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단지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말대로, 소설의 앞부분은 루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글로 옮긴 것 같지만 루스와 델모어 슈왈츠의 육체적인 사랑 이야기를 지어내어 소설로 만들었다. 또, 그녀는 스승이 자신에게 이야기를 줬다고 주장한다.

과거로 되돌아가 보면 스승은 자신에게 말로 내뱉어버리면 글로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글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스승이 그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고 말을 했다는 것이, 스승 자신은 글로 그 이야기를 쓰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루스는 어이없어하며, “그 쓰레기를 믿었니?” 라고 중얼거리듯 말한다. 그런 스승에게 리사는 계속해서 루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써주기를 바랐던 거라고, 스승이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반응인 거라고 7년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자신을 변명한다.

루스는 상황에 따라 대중의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게 거짓말을 해왔고, 예술가는 작품으로 인정받지, 사생활이 어떻듯 상관없다고 말해왔던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꾸며낸 이야기를 보며 화를 낸다. 사실이 아닌 소설이지만, 루스 자신과 델모어 슈왈츠 사이에는 육체적인 관계가 없는 플라토닉한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억울해하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빼앗긴 사실에 분노했다. 말을 할 수 없는 자의 삶을 빼앗아 자신의 이야기로 쓰는 것은 예술의 자유라고 말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을 빼앗은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가. 그러나 사람을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건, 로봇이나 인터넷과는 다르게 빼앗긴 사람은 아무리 표현의 자유를 들고서라도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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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사와 루스 두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적인 감정이 비교적 부족해 가르친 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했던 리사, 리사를 두고 성공하고 싶어 어떻게든 모든 것을 배우려는 신세대라는 해석도 있지만 나는 그저 상처가 너무 많아 자기 자리를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해야 했던 사람으로 보였다. 그에게 소설은 스승의 사생활을 까발린 것이 아닌, 그저 사회와 자신을 매개하는 하나의 이야기였을 뿐.

루스는 이미 권위 있고, 존경받는 단편 소설 작가였고 대학의 교수였지만, 늘그막에 아이가 없었던 것을 후회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남의 아이를 기르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은 것을 후회했고, 그렇게 길러 놓은 아이들이 결국 자신의 곁에 남지 않는다는 것에 실망한 한 인간이었다. 성공하려고 애쓰고, 더 높은 지식과 이성을 얻기 위해 애쓰는 리사의 옆에서, 자신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쓸쓸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가르칠 아이들을 보며 감동을 하고, 젊을 때 했던 사랑을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않고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해뒀다가 소중한 이에게 살짝 펼쳐 보이는 그런 순수한 사람이었다. 사회가 자기에게 바라는 역할은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이었지만, 주기만 하는 인간관계에 지쳐서 더 많은 애정을 갈구하는 스승.

스승은 너무 많은 것을 줘버렸고, 제자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아버렸다. 살면서 일구어놓았던 많은 지성을 주는 사이 감정만 남아버렸고,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사랑을 받는 법을 몰라 지식만을 배웠다. 엄마와 딸의 아낌없이 주는 어쩔 수 없는 사랑과는 달리, 그들의 사랑의 방식은 약간은 가슴 아플 정도로 일방적이기도 했으며, 사실은 너무나 다른 형태를 가진 사랑이었기에 끝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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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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