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nion] 고3의 진로 선택과 'Good Boy Twist' [문화 전반]

2019년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이용되는 과거의 '착한 소년'.
글 입력 2018.11.19 21: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19년도 수능이 막 끝이 났다. 어떤 학생은 수시 면접을 준비하고, 누구는 정시를 알아보기도 할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수능이 끝나고서 수시로 지원했던 철학과의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나는 유일한 철학과 지망생이었다. 철학과를 선택한 많은 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내가 철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셀 수없이 많지만, 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는 것이 인생 제2 막을 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격적인 삶의 주체로 살아갈 날은 지금껏 겪은 시간보다 훨씬 길다. 그리고 대학은, 그 준비 연습이자 시작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그 시작을 하기에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내 행보는 주변 친구들이 '보통'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과는 달랐다.



7f6f5161b2b7547e678a99753569c78e_cdZFxIg9n2B8NWbK3778PIp4MwLE.jpg
▲ 커리어넷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총 522개의 학과가 있다

 


내 주변의 정말 많은 친구들은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 간호학과를 지원했다. 혹은 4년제에 취업이 보장되는 학과를 선택했다. 문과였고 생물학적 지식도 딱히 없었던 내 친구들은 왜 다들 간호사가 되고 싶어진 걸까? 공부를 꽤 잘했던 친구들은 명문대보다는 적당한 수준의 대학의 간호학과를 지원했고, 성적이 낮았던 친구들은 전문 대학의 간호학과를 지원했다. 이런 선택은 어떤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지지? 어떤 요소들이 이 선택에 개입하는가?

친구들이 선택한 것은 한 마디로, '안정성'이었다. 간호학과는 가기만 한다면 취업이 보장된다. 이것이 바로 내 친구들에게 그렇게도 강한 영향을 끼쳤던 진실이다. 이 안정성의 이면에는 어떤 마음이 숨어있을까?



"어느 정도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아야지! 뒤처져서 비참하게 살거야? 안정적인 선택을 해."



기성세대와 부모님들은 이런 소리를 한다. 사회를 이미 겪은 그들이 하는 충고다. 이러한 조언은 다른 학생들이면 몰라도 눈앞이 깜깜한 현실을 체감 중인 고3 학생들에게는 잘 듣는 편이다.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겁주기 딱 좋은, 정확히 먹혀드는 멘트다. 이런 겁박에 영향받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등학생이 사회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제한되어있고, 그들의 미래에는 불확실함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안정적'이라는 학과들을 찾고 또 찾는다. 그러나 이런 걱정이 생기지는 않는가? 우리가 찾는 그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것들도, 단지 지금의 기준이 아닐까? 잔나비의 'Good Boy Twist'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사회의 기준에 대한 노래다.



HUNGRY heart! HUNGRY soul! HUNGRY mind!

굶주려야 한단다. 훔치는 법도 알아야

달리는 법도 알게 되지.
/

눈물겨운 뜀박질이여. 영원하라!

/

Dancing E! Dancing S! Dancing C!

도망치려는구나.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면 그곳엔 없단다.


'Good Boy Twist' - 잔나비



[화질굿]NaverBlog_20160311_162559_04.jpg



헝그리 정신! 그야말로 옛날의 대한민국을 살아온 사람이 말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첫 문장이다. 그렇다. 'Good Boy Twist'의 화자는 '꼰대'다. 보컬 최정훈은 '꼰대'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가사를 보자. 이 화자는 '굶주리고', '훔치고', 결국엔 '달려야 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춤추는 행위는 현실도피로 치부하고 가로막는다. 그 시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아를 찾는 일이 아닌 '끊임없이 달리는 것'이다. 화자는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채 눈물겨운 달리기를 해낸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머지않아서 화자는 거짓말처럼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화질굿]KakaoTalk_20181119_061745006.png



Oh 친구야 넌 왜

날 지를 못하니

춤추는 법도 모르는 새는 날 줄도 몰라요!


'Good Boy Twist' - 잔나비



화자가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세상의 기준이 바뀌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뜀박질의 시대가 속절없이 가버린 것이다. 이 시대에서는 '춤추는 법'과 '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지난 시대의 기준에 맞춰 춤추기를 포기했던 화자는 이제 '시대 부적응자'가 되었다. 참, 억울하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가사 : why should we run? Oh why should we steal the things we don't need?) 억누르면서까지 지난 시대가 요구하는 기준을 열심히 충족했던, 그저 'good boy'였을 뿐인데 말이다. 춤추는 사람들 속에 던져진 화자가 절규하면서 음악은 끝이 난다.


최정훈은 'Good Boy Twist'를 이렇게 설명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에 발을 맞추지 못하면 도태가 되어요. 그건 단지 기술과 유행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지금껏 옳은 것이라 배운, 그래서 품에 안고 힘차게 뛰었던 모든 가치들이 한순간에 뒤집혀 더 이상 품을 필요도 없는 허상이 되어버린 건 나와 내 친구들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죠. 우린 늘 그랬듯 두 눈 질끈 감고 더 뛰어야 할까요? 아님,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춤을 춰야 할까요? 그게 허무의 몸부림이라고 한들 말이에요."



[화질굿]untitled.png



이 1년 만에 나온 잔나비의 싱글은 우리 세대에게 날카로운 시사점을 준다. '착한 소년'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뭐든 한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을 두 눈 질끈 감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소년은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 나쁜 세상이 착한 소년들을 이용해먹어서 이런 지경이 되어버린 걸까? 착한 소년들의 귀에다가 '춤추는 것은 도망치는 행위다. 거기선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거다.' /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아야지! 뒤처져서 비참하게 살 거냐?'라는 겁박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기성세대인가? 나는 그렇지마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히려 소년들 자신일지도 모른다.  소년들은 스스로에게 악마의 주문을 되뇌는 거다. 그들은 스스로가 건 주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저 달리는 일을 할 뿐이다.



[화질굿]athletes-athletics-black-and-white-34514.jpg



'착한 소년'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보다는 외부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시키는 일을 한다. 전통적인 기준에서 '착한 아이'가 되려면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여기서 잘못된 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추구할 것은 그저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과거 시대의 '착한 아이'가 아니다. 유교적 가치관을 준수하는 것이 개인의 인생을 완성시켜줄 수 있는 조선시대라면 그것은 분명히 추구해야 할 가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달라도 너무 다른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유교적 가치관의 준수가 자신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개인의 삶이 사회 전반에서 침해당할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지금의 우리가 정말로 위치한 시점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율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획일적인 사상이나 외부의 지령은 없다.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가야만 한다.


간호학과가 정말로 당신이 직접 선택한 게 맞는가? 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하고도 진지한 결심이 아닌, 얄팍한 거짓 근거에 흔들려 하게 된 결정은, 결국 나중에서야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보다도 믿어주어야 할 것은 자신일 텐데, 내 선택에 있어서 내 목소리를 무시하고 남의 목소리만 듣는 것은 기만적이기도 하다.


나약하게 "사회가 요구하는 게 자꾸 바뀌는 데 어떻게 하라고!"하고 억울해하지 말아라. 앞만 보는 뜀박질을 요구하고, 춤추고 나는 것을 요구하며, 그에 뒤처질 순 없다고 살살 꼬시는 사회에 순응하고 휘둘리지 말아라. 진실은, 사회에 어떻게든 자신을 맞추기 위해 버둥거리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에서 언제나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20대는 남과 비슷한 모습을 하는 것에 거의 강박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남에게 자신을 맞추기만 하다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마저 잊어버릴걸?" 자신의 목소리마저 잃어서 스스로 삶의 모든 의미를 없애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일을 하지 않으려면 별것도 아닌 바깥소리에 겁먹지 말고, 온전한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투쟁해라.




KakaoTalk_20181112_153827310.jpg

 



[이란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