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닿게 될 황혼은 어떤 빛깔일까요

마당극 "쪽빛 황혼"을 본 후 든 생각
글 입력 2018.08.1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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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디 그날에도 푸르른 빛깔이기를 -


영월 아세요? 메밀전병이 유명한 곳. 저희 엄마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서 태어났대요. 엄마의 엄마, 우리 할머니는 거기서 아이를 낳고, 거기로 시집을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와 그럼 못해도 50년은 영월에서 산 거에요.

“지겹겠다 할머니”
“그러게 올라오면 좋겠는데 말이야”

할머니의 상경이 자식들 간에 한창 화두가 될 때가 있었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영월에 남아 사시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엄마랑 이모랑 삼촌이랑 작은 삼촌은 걱정이 됐죠. 가까이서 모시고 싶어 했어요. 사실 저도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얼핏얼핏 기억나는 건, 할머니도 올라와서 살아볼까 고민하셨다는 거예요. 할머니가 올라오셔서 저희 집에도 잠깐 있으셨다 이모네 집에 갔다 다시 내려가셨다는 기억만 날 뿐이에요. 엄마의 말로는,

“그냥 거기가 좋대. 할머니는 여긴 너무 갑갑하대” 하면서 내려가셨대요.

그래서 지금 할머니는 그 동네에서 여전히 살고 계신답니다. 밭이라고 하기엔 다소 작은 텃밭에 고추랑 옥수수 심고요. 동네 할머니들이랑 화투 치시는 게 취미이자 장기에요. 저한테 처음 화투를 가르쳐주신 분도 할머니인걸요. 자랑이긴 한데, 오빠랑 앉아서 했을 때 저 꽤 잘 친다고 하셨어요. 요즘같이 더울 땐 에어컨 빵빵한 노인정에 가신대요. 거기서도 화투를 치시겠죠?

어림짐작해보면 할머니는 그냥 그곳이 엄청 좋아서가 서울이 엄청 싫어서가 아니고 그냥 음…. 가장 편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네요.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곳이고, 시집왔을 때부터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무엇보다 영월이 할머니가 할머니로서 당당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려가신다고 말씀하셨을 거예요. 엄마랑 이모랑 삼촌이랑 작은 삼촌이 그런 생기를 봤기에 더는 권하지 않으신 거라 생각해요.

갑자기 뜬금없이 할머니 이야기를 한 건요, 이 마당극을 보고 할머니 생각이 나서요. 잊고 있었던 기억인데 연극을 보고 화르륵 그때의 기억이 타올랐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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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 <쪽빛 황혼>은 노부부 박씨내외에 대한 이야기에요. 두 부부는 고향에서 살다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상경해요. 그리고 이 아무것도 모르는 할멈에게 장수탕 예술단이 사기를 쳐요. 장수탕이라는 딱 들어도 사기 냄새가 풀풀 나는 몸에 좋은 약이라고요. 날아오는 할부증서에 자식과 며느리의 눈치를 보죠. 설상가상으로 할멈은 치매에 걸려요. 며느리는 더 어머님을 돌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양로원에 보내자며 아들과 다투죠. 그런 상황에서 할멈은 계속 말해요. “영감- 우리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요. 결국 박씨내외는 고향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돌아온 고향에서 죽음을 맞으며 끝나요.

고령화 시대의 노인 문제, 자식들의 효문제. 이 마당극을 보고 많은 게 떠오르는 게 당연할 것 같아요. 그게 지나간 청춘일 수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겠죠. 무엇이 됐든 우금치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 맞닿아있는 것들을 비추는 건 분명해요.


청춘들아 너네도 늙는다
그 곧았던 허리도
버드나무 가지처럼 구부러지고
총명한 머릿속도 희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지고
.
(중략)


그래서인지 서울에 와서 자꾸만 작아지는 박씨내외가 안타까웠어요. 자식들이 야속해 보였고요.

그러다 결국 박씨내외가 고향으로 돌아가 당산나무 아래서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어요. 노인 문제, 자식들로서의 효문제 이런 거 다 옆으로 밀어놓고, 무언가에 대한 원망도 밀어놓고,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 뿐이라는 걸요. 누군가를 원망하려는 게 아니었어요. 갓 시집온 새색시가 그 어려운 시어머니 앞에서 춤을 췄던 때. 시아버지가 바짓단을 잡고 신명 나는 춤 한판 보여줬던 때.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서로가 해온 음식을 먹으며 잔치를 벌였던 때가 그리운 것. 어째서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데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그 옛날을 그리워하는 걸까요. 우리는 얻음과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결국 <쪽빛 황혼>은 원망이 아닌 연가죠. 그때가 그리운 연가. 우리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잃은, 정과 공동체에 대한 연가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젊은 사람들을 야속해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젊은 사람이고, 시대가 변하면서 사는 방식이 달라지는 건 피할 수 없으니까요.

사실 예전엔 지금보다 더 살기 어려운 팍팍한 시대였다는데, 우리는 오히려 지금 이 시대를 팍팍한 시대라고 부르고 있어요.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사이라는 말은 남 말이 되었고 서로서로 믿는 것보단 할멈처럼 순진하게 믿는 사람을 오히려 멍청하다 하고 뒤통수치기 바쁜 세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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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금치는 세월이 변하는 것을 원망하진 않지만 한 가지는 기억했으면 하는 것 같아요.

가끔 잊는 것들. 젊든 늙든 모두 삼신할미가 예삐 점 지어내려 보낸 사람들이라는 걸. 너도 늙고 나도 젊었다는 걸. 생생하고 아름다운 때가 있었다고요. 평생 젊을 것이라고. 젊은 건 나의 특권이고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버리라고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통을 받아왔고, 또 언젠가 우리도 그 바통을 이어갈 거라고요.

박씨내외가 천도굿으로 하늘에 잘 도착했길 바라요. 그리고 그곳에서만큼은 다들 만나 다시 한번 그 신명 났던 춤 한판 추길 바라요. 그들의 황혼이 쪽빛이기를. 푸르고 푸르기를.

그리고 지금의 황혼은, 저희 부모님의 황혼은, 그리고 앞으로 제가 닿게 될 황혼은 어떠한 빛깔일까요. 저에게 <쪽빛 황혼>은 그걸 가슴 깊숙이 생각하게 만든 마당극이에요.



고집스러운 걸음을 멈추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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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 : 공주에서 부여를 넘어가는 고개 이름.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과 친일관군이 최대 격전을 벌인 역사적인 곳. 우금치는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문화로 꽃을 피워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극이 끝나고, 우금치는 13년 전 서울에 올라와 공연한 이후, 13년 만에 다시 올라와 공연하는 거라고 했어요. 내려갈 땐 다시 올라오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는데 참 오래 걸렸다고 말했어요. 사실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이잖아요. 조금 더 안정적일 수 있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이 모두에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끝나자마자 그 안에 있던 관객 모두가 손뼉을 쳤어요. 그래서 더더욱 그들의 고집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걸음을 멈추지 않길 바라요. 그들만큼은 계속 이야기해주길 바라요. 우리가 잊어버리지 않게. 우리의 정신이 사라지지 않게요.


서울 중심의 척박한 오늘의 연극적 토양 속에서
지방의 동인 극단 마당극패 우금치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저항의 몸부림을 칠 것이다.
죽기야 할라구. 버둥거리느라 껍데기는 벗겨지겠지 뭐.
알맹이까지 상할라구.

-우금치 예술감독 류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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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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