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프레디 켐프의 에튀드, 그리고 에티튜드!

프레디 켐프 피아노 리사이틀
글 입력 2018.07.2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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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켐프의 에튀드, 그리고 에티튜드!
프레디 켐프 피아노 리사이틀


프레디켐프.jpg
 


아쉬움이 돼버린 어린 날에


“손에 달걀을 쥔 것처럼 오므리고!” 초등학생쯤일까. 어린 나에게 피아노란 상자 속이었다. 작은 상자 안에는 피아노가 있고, 얌전히 작은 상자 같은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이야기를 듣고 먼저 눈치챌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상자 속이란 피아노 학원을 말한다. 어린 내 눈에는 피아노 학원이 상자 속 상자들처럼 보이더라. 학원에서 그간 연습한 걸 쳐 보이는데 그 시간이 매우 길었다. 어릴 때 엄마의 손에 끌려 이리저리 학원에 다녔다. 피아노 학원부터 시작해 성악, 발레, 태권도까지 별별 학원을 다 다녔다. 물론 그 영향으로 많은 경험을 해보아 감사한 일이었지만, 예전에는 다 싫기만 했다. 그래서 이사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무엇보다도 기뻤던 건 학원을 그만둘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학원 중에서도 피아노는 가장 싫어했다. 학원 안에 꽉 차 있는 방들과 들어가면 몇 분 동안은 나올 수 없다는 게 답답했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늘 진도는 나갔고, 나는 그 진도를 잡기 위해 허덕였다. 무언가를 배워서 즐겁다 보다 얼른 그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손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건지 피아노가 날 치고 있는 건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억지로 해서 그랬던 걸까 결국 23살이 된 난 체르니 30까지 쳤던 게 무색할 정도로 음표까지 모두 까먹었다. 아예 백지상태.

그때 그만둔 거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딱 한 가지 있다면, 조금 더 즐겁게 피아노를 대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늘 아쉬웠다. 그래서 서론이 길었지만 이번 프레디 켐프 에튀드를 보고 싶은 이유였다. 그리고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음표를 섬세하게 수 놓았네.


8시가 되자 문이 활짝 열렸고 우리가 기다린 단 한 명, 그가 성큼성큼 피아노로 다가왔다. ‘그리고 바로 연주를 시작했지.’라고 영화에서 나레이션을 하는 듯 강렬한 인상이었다. 마치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피아노를 향해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카푸스틴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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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GRAM >

N.Kapustin: 8 Concert Etudes for Piano Op.40
카푸스틴: 8개의 연주회용 연습곡 작품번호 40
I. Prelude
VII. Intermezzo
VIII. Finale

F.Chopin: Etudes Op.10
쇼팽: 연습곡 작품번호 10
제 1번 C장조
제 2번 a단조
제 3번 E장조
제 4번 c샤프 단조
제 5번 G플랫 장조
제 6번 e플랫 단조
제 7번 C장조
제 8번 F장조
제 9번 f단조
제 10번 A플랫 장조
제 11번 E플랫 장조
제 12번 c단조

< INTERMISSION >

S.Rachmaninov: Etudes-Tableaux Op.39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작품번호 39
제 1번 c단조
제 2번 a단조
제 3번 f샤프 단조
제 4번 b단조
제 5번 e플랫 단조
제 6번 a단조
제 7번 c단조
제 8번 d단조
제 9번 D장조


난 프레디 켐프가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카푸스틴 곡을 들었을 땐 그저 경쾌하고 통통 튈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프레디 켐프가 연주하는 카푸스틴 곡은 경쾌함 속에 섬세함이 있달까. 사실 작품을 누가 치느냐, 누가 해석하느냐가 다르다는 말을 마음속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나 다를까 싶었다. 근데 영상보다도 현장에서 그의 연주를 들었을 때 가장 달랐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제7번은, 내가 집에서 들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조금 더 따뜻하고 여렸다. 마치 공주를 주제로 한 하나의 극을 보는듯했다. 처음엔 새들이 지저귀고 따사로운 햇볕의 아침. 한 나라의 공주가 발코니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나중엔 약간은 말괄량이 같은 공주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빠르고 현란하다. 쇼팽의 에튀드를 들으면서 느낀 생각이다. 음을 짚을 때 정확하게 찍고 넘어가는 힘과 부드러움이 공존해야 할 것 같았다.

제1번이 대부분의 피아니스트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는 말처럼, 제1번 연주가 끝난 뒤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오른손을 연신 털었고, 관객들은 그의 손의 고통이 사라지길 그리고 그다음 연주는 어떨지 그 침묵 속에서 기대감에 차 상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제2번이 시작되었을 때 가히 소름이 끼쳤다. 비슷하게 음을 연속적으로 쌓이는 느낌인데 전혀 달랐다. 그리고 제6번과 12번을 들었을 땐 쇼팽의 에튀드엔 참 다양한 색이 담겨있구나 싶었다. 제6번은 너무도 슬펐다. 내 속 깊이에 담아둔 슬픔을 끄집어내려는 것 같은 음들이 이어졌다. 그걸 멍하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가니 누군가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고,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미리 들어봤던 것을 현장에서 들으니 또 달랐다. 피아노만 오롯이 있는 적막 속에서 슬픔이 배로 왔다.

제12번 혁명은 다시 들어도 그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졌다. 그래서 음 하나만으로 마음이 벅찼다가도 수면 아래로 빠르게 내려앉았다.

*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는 낮고 어둡고 힘 있었다. 높고 낮음의 극단을 이보다 더 제대로 달릴 수 있을까. 마치 곡들이 ‘라흐마니노프가 썼어!’라고 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제2번에서는 어둡게 깔린 안개 사이를 날아다니다 갑자기 비가 오고 새들의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꿈같이 깨어나는 조용히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제6번의 앞부분을 듣는 순간 탄성을 내질렀다. 물론 마음속으로. ‘이거였지, 내가 기다렸던 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알고 있으면서도 깜짝깜짝 놀랐고, 직접 들으니 술래잡기하는 듯 뒤를 돌아보면 코앞에 얼굴이 보이는 무서운 느낌이었다. 그 숨이 턱 막힘을 실제로 들으니 더했다. 또한 온몸으로 음을 느끼며 음에 따라서 온 몸이 휘청휘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에티튜드를 느끼며


예정된 프로그램 순서가 끝나고, 프레디 켐프는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의 인사 후 성큼성큼 들어갔다. 하지만 일제히 쏟아지는 박수에 다시 나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어눌한 한국어로 ‘쇼팽의 왈츠’라고 말하는데,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일제히 환호했다. 왈츠는 실로 감동적이었다. 그는 나를 교실로 안내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적막한 노을이 지는 시간,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교실에 혼자 앉아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씁쓸하면서도 그 조용한 시간이 좋은 시간. 부드러워서 조금 애달프고 조금 슬펐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했다. ‘아 참 부드러운 연주구나.'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박수갈채 속에 프레디 켐프는 여러 번 문을 열고 나와야 했고 총 세 번의 앙코르곡을 쳐주었다. 그리고 나가면서도 여성분의 “세 번이나 앙코르곡 쳐준 건 진짜 처음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니 그의 에티듀드가 어느 정도인지 알겠더라.

사실 그의 가장 인상 깊었던 에튀튜드는 그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앞에서 프레디 켐프 사인회가 열렸고 CD를 구입해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긴 줄의 위엄이란! 보고 깜짝 놀랐다. 난 사인하는 모습을 보는 걸 택했다. 가만히 서서 프레디 켐프가 사인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 사인을 해주고 받아가는 사람 한명 한명을 끝까지 봐주는 거였다. 뒤를 보인 모습과 가는 모습을 포물선 그리듯이 꼭 뒷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다시 CD를 받고 사인을 했다. 1~2초 정도였지만, 그게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모든 사람을 그렇게 대했다. 사실상 CD를 받고 돌아서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데 말이다. 그저 그 모습이 눈에 밟혔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그가 그의 음악을 듣는 한국 팬에 대한 에티튜드가 생각났다는 말이다. 누구나 의미부여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한텐 이 부분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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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면서 쇼팽의 왈츠를 전곡 들었다. 아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쇼팽의 왈츠의 매력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걸 프레디 켐프가 가르쳐주었다.

피아노 공연을 보는 것이 처음이고, 음악 시간에도 딴짓을 해 지식도 없는 나이기에 어떻게 전문적인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영상을 보며 “이거 좋다”라고 생각했던 곡과 직접 가서 내 귀로 들은 건 천지 차이였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작품에서 ‘어! 이렇게 좋은 곡이었나’ 싶었다. 피아노 안에서 시작해 원형 무대 안쪽을 돌아 내 귀에까지 도착하는 그 공명은 아직도 소름끼친다. 잊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이런 멋진 연주를 선사해준 프레디 켐프도. 그의 에티튜드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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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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