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시작에 선 소년 - Call Me by Your Name [영화]

글 입력 2018.05.3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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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o's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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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7살 엘리오. 이번 여름에도 나는 가족별장에서 여름을 보낼 예정이야. 하는 일이라곤 책 읽고 악보를 끄적이고 친구들과 놀거나 손님들을 초대한 날이면 피아노를 연주해. 그러다 아버지의 연구를 도와줄 보조 연구원이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나는 그에게 방을 내줬어.

17살이 으레 그렇듯 나는 그를 탐색하기 시작했지. 왠지 모르게 그와 거리를 두고 벽을 쌓게 돼. 어른인 것처럼 항상 당당하게 행동하는 그의 행동이 미운 걸까. 나도 모르게 그 앞에선 긴장하고 그가 하는 말을 곱씹어봐. 그러다 나를 싫어하나라는 생각에 퉁명스럽게 그를 대하기로 했어. 남들이 잘생겼다고 칭찬하는 올리버. 흥, 너도 날 싫어한다면 나도 널 싫어해 주겠어. 그런데 그는 계속 나와 친근하게 지내고 싶나 봐. 알 수 없는 터치를 하고 나와 함께하기를 원해. 그와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그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내 감정을 확인해보고 싶다! 입을 맞춰보면 알까.

마음을 확인한 후 나는 그를 온종일 찾아. 내 입에선 올리버라는 이름만이 하루 종일 나와.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즐거워. 즐겁다면 이건 사랑이 아닌가?

그를 보내고 역에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어. 나 좀 데리러 와 주실 수....... 말을 끝맺지 못하고 난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말을 이었어.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멋진 우정을 나누었다고 하신다. 난 아버지가 하는 말을 경청한다. 멋진 우정을 나누었으니 이젠 멋진 이별을 해야 한다고. 이별의 감정을 내가 잘 다스려서 관계를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일까. 전화가 걸려왔다. 올리버다. 아니 엘리오다. 나는 그의 이름 엘리오를 몇 번이고 외친다. 엘리오,엘리오,엘리오,엘리오..  내 첫사랑 안녕. 모닥불 앞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나만의 방법으로 감정을 추스른다. 정말 안녕. 멋졌던 그 여름 엘리오와 함께.



Oliver's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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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조 연구를 위해 한 달 동안 이탈리아에 머물 예정이다.

난 나를 어느 정도 안다. 하나에 너무 깊게 빠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난 항상 어른답게 절제해왔다. 절제된 삶은 나를 조금 더 멋있어 보이게 했다.

나도 모르는 터치가 엘리오한테만 나온다. 내가 모르는 새에 나간 손은 그를 만지고 있었다. 그는 나의 터치에 놀란 듯 경기를 일으키며 나를 피했다. 어이쿠. 해명해야 한다. 마사지를 해주는 척하며 자연스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휴. 절제하자. 절제.......

엘리오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나를 향해 돌격해왔다. 무작정 입을 맞추고 자기감정을 표현한다. 나는 그보다 6살 많은 어른이니까 절제해야 한다. ‘안 돼! 엘리오 우리 그냥 친하게 지내자’

하지만 내가 내뱉은 말은 나에게도 낯설게 들렸다. 내 마음은 진실 돼서 거짓말을 못 하나 보다.

엘리오는 매력적이다. 계속해서 부정하지만, 그에게로 향하는 시선과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결국, 난 내 마음에 굴복하고 말았다.

우리 둘만의 비밀스러운 애칭을 정했다. 서로의 이름으로 불러주기. 난 너를 올리버라 부르고 넌 나를 엘리오로 부르기로. 너와 난 이제 모든 걸 공유할 수 있어. 그날 밤 이후 닫았던 철장이 열리듯 내 마음도 급히 쏟아져 나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나아간다. 확고한 나와 달리 엘리오는 갈피를 못 잡고 나를 밀어냈다 당겼다. 난 그저 그에게 안절부절못하며 끌려갈 수밖에. 마음이 더 크고 빠른 사람만이 조급할 수밖에.

약속했던 한 달이 끝나고 난 다시 돌아간다. 기차를 타자마자 난 현실로 돌아왔고 나의 감정도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여기선 나의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하는 곳이다. 그렇게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고 엘리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에 그해 여름이 생각나듯 아련해졌다. 그가 보고 싶어졌고 이 통화를 끝내면 그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엘리오라고 연달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잠시 내 정신은 그해 여름으로 되돌아간 듯 아늑해진다. 이내 정신을 되찾고 전화를 끊는다. 나는 이제 행복한 신랑으로 그녀와 결혼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첫사랑을 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좋은 첫사랑을 했고 많은 감정을 배웠으니 이별이라는 감정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부모가 사랑을 통해 얻은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설명해줄까.


새로운 사람과 시작할 때마다 그들에게 보여줄 내가 더 이상은 없어져 버리게 돼


엘리오 아버지의 말은 나의 사랑했던 과거, 앞으로 사랑할 미래를 모두 생각하게끔 했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레지만 그만큼 불안하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조심스러운 만큼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한다. 나의 첫 연애는 어땠는지 생각했다. 일단 너무나 조심스러웠고 나도 갈피를 못 잡는 마음에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 때론 나를 너무 드러내 상처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엘리오 아버지 말처럼 그들에게 보여줄 내가 더는 없어지게 된다. 그 무엇도 느끼기 싫어서. 이제 느끼고 상처받고 치유하는 모든 행동들이 싫어서.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몸은 오직 한 번만 주어지니 그 당시 느낀 기쁨과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은 판도라의 상자 같다. 열지 않으면 영원히 모르지만 한 번 연 이상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사랑의 감정 속에 허우적거린다. 사람마다 시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계속해서 또 다른 감정을 불러오는 사랑은 그래서 처음이 중요하다. 처음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아가는지에 따라 나를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들 수도 있고 꽃길을 걸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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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잊고 있던 사랑과 사랑이 불러오는 감정을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

엘리오가 한 첫사랑은 나에게도 간질간질하고 하룻밤의 꿈처럼 허무하고 아득해 보였다. 사랑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결국 끝이 난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엔 모양과 길이가 없는 감정이 계속해서 존재한다. 어디든 상관없이. 둘이 함께 놀았던 물에. 냄새에, 올리버가 주고 간 그의 셔츠에. 엘리오의 입술에. 눈에. 심지어 내(엘리오) 이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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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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