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역사, 끝나지 않은 이야기 "퓰리처상 사진전" (6.24 ~ 9.14)

글 입력 2014.07.1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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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퓰리처상사진전 홈페이지(http://www.pulitzerprize.co.kr) 보도자료 섹션)



순간의 역사, 끝나지 않은 이야기

퓰리처상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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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 중앙일보, JTBC, YTN에서 주최한 퓰리처상사진전에 다녀왔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들은 예술적 가치보다는 저널리즘의 측면에서 해석된다. 해서 이번 전시는 사진이라는 예술장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실제로 많은 이들이 각자 다른 동기를 가지고 이 전시를 관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교육의 측면에서 매우 훌륭했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전시란 그들에게 친절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들 일상과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의미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세계와 인간의 모습을 기록하고 고발하는 저널리즘의 역할과 맞물려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의미 있는 정보와 생각할 거리들을 던지고 있어 굉장히 인상 깊었다.

특히 한국전쟁특별전 ‘The Forgotten war’의 경우 더욱 그러했는데, 사실 6.25전을 직접 겪은 당사자들의 손자, 손녀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 또래의 젊은이들, 즉 전쟁 3세대들은 이 사건을 책에서만 접할 수 있는 언젠가 옛날 저 먼 다른 세상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참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으며, 혹은 대전쟁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에만 익숙할 뿐이다. 36점의 작품을 통해 날 것 그 자체로 우리에게 열어 젖혀진 전쟁의 모습은, 자칫 무뎌질 수 있는 역사적 참상이 당시 얼마나 뼈아픈 고통이었는지를 날카롭게 가리키고 있었고, 현재 우리의 삶 곁에서도 공포스러우리만큼 가깝게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했다.


맥스 데스포, 전쟁고아의 눈물, 1950.jpg

△ 맥스 데스포, 전쟁고아의 눈물, 1950


이번 전시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이기도 했다. 26년 동안 총 네 차례 수상한 캐롤 구지는 "정지된 순간, 바로 여기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다. 아주 본능적인 뭔가가"라 말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은 물론,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사건들 속에서의 수많은 상호작용이 사진 한 장에 녹아 들어 노골적이고도 직접적으로 그 사건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특정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만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해 끊임없이 곱씹을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카메라에 눈을 대고 찍으면 찍힌 그것이 사진 아닌가, 했던 사람들은 아마 이번 전시를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1984년 수상작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엔서니 수오(Anthny Suau).jpg

△ 엔서니 수오, MEMORIAL DAY, 1984


Fleeing Kosovo  캐롤 구지  The Washington Post.jpg

△ 캐롤 구지, Fleeing Kosovo, 2000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을 보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절대 이 전시는 그러한 뼈아픈 인류의 역사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노애락과 가슴 짠한 이야기들, 사랑과 애정도 담고 있다.


1989년 수상작 사우스웨스턴 고교의 수업(CLASS ACT AT SOUTHWESTERN HIGH)  사진=매니 크리소스토모(Manny crisostomo).jpg 

△ 매니 크리소스토모, CLASS ACT AT SOUTHWESTERN HIGH, 1989       

1982년 수상작 시카고에서의 삶(LIFE IN CHICAGO)  사진=존 H. 화이트(John H. White).jpg

△ 존 H. 화이트, 시카고에서의 삶, 1982


이번 전시는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던 바와 같이 그 규모가 굉장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혹은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초대전은 워낙 전시실 크기 자체가 굉장하기 때문에 전시하는 작품의 양이 방대한 경우가 많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0년의 퓰리처상사진전보다 약 100점이 더 많은 234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1940년대부터 10년씩 8개의 시기로 나뉘어 벽에 걸린 작품들을 따라 한 바퀴 걷고 나니 한 편의 역사책을 자세히 읽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규모가 굉장했던 것은 작품의 개수보다도 관람객의 수였다. 필자는 평일 점심시간에 방문하였음에도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진들을 따라 벽 앞에 이어 서서 진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에 주목 하기에 앞서 사람들의 모습에 눈이 가는 바람에 마치 그 공간 안의 퍼포먼스 예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글을 끝마치며 아쉬운 소리 하나 하려고 한다. 언론사진의 특성상 그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장면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해서 다들 어쩔 수 없이 벽 가까이에서 사진을 보고, 사진에 대한 설명을 읽고,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작품 앞에 멈춰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일반 예술 전시에 비하면 굉장히 작품들의 사이 간격이 좁아 사람들 간의 불필요한 접촉이 생겼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과연 이곳에 현대사를 공부하러 온 건지 전시를 관람하러 온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작품을 선보이려는 좋은 의도는 이해하지만 상대적으로 공간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에서 벽 이외의 다른 공간은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았는데, 사실 그 공간에 간이벽을 세워 시선을 분산시키게 되면 사람들의 동선은 다변화되었겠지만 전시장 안이 너무나 혼란스러워질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최선의 전시방법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복작거리는 공간에 어느 정도 있다 보면 누구든 관람 자체에 대해 회의가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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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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