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나무숲, 그 익명의 폭력성 [문화 전반]

대나무숲의 고백 제보들을 중심으로
글 입력 2017.12.2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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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그 익명의 폭력성


몇년 전 부터 에스엔에스에
새로운 소통의 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대나무숲’.


♤♤♤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

라고 예전 어떤 설화속의 사람이,
대나무숲에 가서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소리치고
후련하게 내려왔다는 그 것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익명의 소통의 공간이다.


각 학교, 집단, 넓게는 지역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소통의 공간을 통해
모르는 사람을 알아가고,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되고, 돈독함까지 쌓았다.




대나무숲의 가장 주된 무대가 되는,
‘학교’를 대표로 보건데
그 곳의 대표적인 이야깃거리는 주로 3가지인 것 같다.

고민, 건의, 그리고 고백.

이번 글에서는 3가지 이야깃거리중 마지막,
‘고백’의 글들에 초점을 맞춰

대나무숲, 그 익명의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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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에는 하루에도 몇번이고
어느학과의 몇학번, 누군가를
찾는 내용이 올라온다.

같은 교양수업을 듣는다던지,
어디에서 마주쳤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데
혹시 애인이 있냐는 내용이 그 주된 내용이다.

그에 대한 댓글은
거의 지인들이 지명된 사람을 태그하고,
제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대나무숲의 그러한 기능은 아주 긍정적인 것이다.

용기를 못내었다거나
타이밍이 안맞았다거나 하는 이유들로
스쳐 지나간 인연들을 다시,
온라인의 공간에서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에만 가능한 새로운 로맨스다.


또 그러한 제보와 연락을 통해
많은 연인들이 생겨나고,
사랑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것은 재밌기도 하고,
꽤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그것은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


대나무숲의 제보는 ‘익명’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의 존재 의미와 같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할 수 있다.


/


ㅇㅇ.jpg
 

하지만 그 무대가
'모든 사람에게 노출되는 공적인 공간' 이라면?

제보자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지만,
제보를 당하는 사람은 아니다.

자신의 주된 정보가 모두
공공의 사람들에게 원치 않게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원하지 않는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
제보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제보를 당하는 사람은 어찌되었든
무조건 자신의 이름과 정보가 노출된다.

초성만을 적어서
글을 올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고는 해도,
댓글이나 다른 방법등을 통해
그의 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또 그 공공의 공간에 달리는 댓글을 생각해보라.

반응은 다양하고도 일관적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곳에는 어떠한 관심과 집중,
그리고 꼭 놀림이 포함되어 있다.

주로, 000과의 여신 혹은 남신, 대나무숲 방화범이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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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건 대부분에게 기분 좋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것은 폭력적이다.

원하지도 않은 관심을 받게되고,

놀림의 대상이 되고,

또 자신의 이름이 원치 않게
공적인 장소에 공개된다는 것이 그러하다.


/


또. 제보자가 숨겨져있기 때문에 폭력적이다.

앞서 말했듯 글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어느 수업에서 봤는데
너무 예뻤어요./멋졌어요. 자꾸 시선이 가네요.’


꽤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좋아하는 마음과 애정이 담긴
시선을 받는 일은 낭만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숨겨져있는 누군가의 그것이라면?

몰랐으면 몰라도, 자신을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는?

그 사람이 뒤에 숨어서 나에게 좋은 감정만을
표현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꽤 무섭지 않은가.

이것은 대나무숲에 이름이
올라온 사람들이 감당해야할 무언가다.


원했던 원했지 않았던.
그 시작은 꽤 로맨틱하고 낭만적이었지만,
그 후에 그 사람이 느낄 감정은
아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그냥 그건 온라인 상의 제보일 뿐이고,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잖아!

라고 묻고 싶다면, 그 물음을 멈춰주시길.

이미 누군가는,
베일에 쌓인 누군가의 시선을 상상하는
불필요한 신경에 쌓여있을 지도 모른다.

그저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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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제보가 언제나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했고,
새로운 사랑의 탄생을 도왔다.
하지만, 그것은 익명이기 때문에
꽤 폭력성을 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원치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개인 정보를 노출시키고,
관심을 받게하고, 시선을 신경쓰게 만든다.


인연을 찾는 당신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더 자신을 드러내고
용기를 낸 것이었으면 좋겠다.


또, 당신이 대나무숲이라는
소통의 장소를 빌려 누군가를 찾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꽤 불편한 상황에 처하게 하는
실례가 될 수 있는 것임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만약 이런 익명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조금만이라도 신경을 써주시고
또, 더 낭만적인 방식인 직접 '말을 걸어보는 방법'도 생각해보시길.

곳곳에서 인연을 찾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당부하고 싶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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