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쓸모 없는 것'에 보내는 찬사 - 델타보이즈 [영화]

글 입력 2017.12.0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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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도, 열정도 없는 시골 공장 알바생 '일록'은 어느 날 시카고에서 온 친구 '예건'에게 남성 4중창 대회에 참가할 것을 권유받는다. 일록은 뜬금없는 제의에 당황하지만 은근히 흥미를 느끼게 되고, 멤버 모집 공고를 낸다. 그렇게 일록, 예건, 대용, 준세 네 남자가 팀을 결성한다. 팀 이름은 '델타 보이즈'다.

네 남자는 외모도, 생활도 구질구질하다. 일록은 매형의 공장에서 무력하게 일하고, 예건은 일자리에서 매번 퇴짜를 맞고도 별다른 대책 없이 낮잠만 잔다. 대용은 생선가게에서 일하지만 노래 연습만 있다 하면 일을 내팽겨치고 달려 나간다. 준세는 그나마 가장 현실감 있는 캐릭터다. 아내와 함께 트럭에서 도너츠 장사를 하다 대용에게 끌려 나가는데, 그 역시 답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델타 보이즈를 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오합지졸들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한다. 누구도 지지해주지 않는 예정된 실패, 비현실적인 꿈이라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그 열정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어떤 감상성도 주입하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넘어서며 성장하고, '성공'하는 영웅담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들은, 아니 적어도 이 영화는 사회가 말하는 '성공'에는 관심조차 없어보인다. 시종일관 장애물에 부딪히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만을 비출 뿐이다. 대용의 대사처럼 '못하는 걸 알지만 하고 싶은' 마음, 그 순수한 열정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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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이들의 찌질함을 두 시간 가량 지켜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되는 데에는 배우들의 공이 크다. '델타 보이즈'는 정해진 대본 없이 상황만 설정한 채 배우들의 참여, 애드리브로 완성되었다. 배우들의 개성이 그대로 반영된 만큼, '생활 연기'가 빛을 발한다. 힘껏 각 잡은 멋들어진 대사 대신, 격 없는 대사가 계속해서 툭툭 튀어나온다. 한국말에 영어를 섞어가며 말하는 예건, 그런 그를 욕하는 일록, 누가 뭐라해도 열정적인 대용, 도너츠 가게와 델타 보이즈를 사이에 두고 살벌하게 다투는 준세 부부까지, '코믹 생활 연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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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들의 도전은 역시나, 실패로 끝난다. 정원 미달을 이유로 구청에서 대회를 취소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설렘으로 가득차 있다. 주인공들은 머리도 자르고, 양복까지 갖춰 입은 채 그 동안 열심히 연습한 무대를 마지막으로 리허설한다. 옥상에서 하는 리허설일 뿐이지만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박수 갈채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 박수소리는 마치 그들의 고군분투를 지켜본 관객들이 보내는 박수소리 같다. 아무런 결실을 내지 못하더라도, 열정으로 가득찬 그 뜨거운 과정은 그 자체로 기꺼이 박수 받을 만한 모습인 것이다.

고봉수 감독의 영화들은 '쓸모 있음'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 당당히 반기를 든다. 감독이 '델타 보이즈'를 통해 이야기하는 '가치 없는 것의 가치'는 차기작 '튼튼이의 모험'에서도 일관되게 보여진다. 이 또한 현실성 없는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사회가 강요하는 생산성을 거부하고,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하겠다. 그게 한심해보일지라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진짜 멋있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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