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쏟아지는 비는 '스테디 레인'

그 여름 시카고에는 폭풍우가 더러움을 쓸어내고 떠났다.
글 입력 2017.11.1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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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쏟아지는 비는 '스테디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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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인극에는 매력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마력이 있다. 훌륭한 대사와 표정만으로 무대를 채운다. '스테디 레인'의 두 주인공은 충실하게 ‘서사’만을 가지고 그걸 해낸다. 방백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느 무대건 듣는 것으로 보는 것을 대신한다. 관객석의 앉은 나는, 빗속이 아니더라도 그들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110분을 마주했다. 바로 지난 수요일 밤이었다.

  어두운 골목, 총, 양복. 그들 모두는 느와르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대로인 만큼 우리는 느와르 특유의 엄청난 모순과 혐오를 만나볼 수 있었다. 대니와 조이, 그리고 그들의 가족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난 그들 중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었다. 공감할 수 없었던 만큼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나는 마냥 쏟아지는 비를, 창 밖에 퍼붓고 있는 저 비를 그저 실내에서 바라보는 사람처럼, 구경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객석에 앉아 있었다. 그저 저 비가 그칠 때, 어떤 결말과 의미를 가져올지 기다리며.


<시놉시스>

그래도 모든 것이 그럭저럭 잘 돌아갈 줄 알았다.
그 날 밤, 총알 한 방이 대니의 집안으로 날아오기 전까지는.

자칭 시카고 최고의 경찰이라 자부하며 언젠가 스타스키와 허치 같은 경찰이 될 것이라 믿는 ‘대니’와 ‘조이’는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였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대니는 시카고 뒷골목 창녀들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포주들에게 흉악하게 굴기로 유명하다. 반대로 조이는 여인숙과 다를 바 없는 독신자 아파트에서 혼자 술을 들이키며 시간을 보낸다.

대니는 매일 저녁 혼자 사는 조이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고 어느 날 저녁 자신이 돌봐주는 창녀를 조이에게 소개한다. 그 저녁식사 시간은 엉망이 되고 화가 난 대니는 그녀를 바래다 주러 갔다가 엉겁결에 그녀와 관계를 갖게 된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포주 중 한명인 월터 일행에게 위협을 당하고 한 쪽 다리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대니의 가족들과 조이가 여느 때처럼 대니의 집에서 한가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때 총알 한 방이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

이 사건으로 아직 걷지도 못하는 대니의 어린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 모든 일이 월터가 저지른 일이라고 믿는 대니는 경찰 업무는 아랑곳 않고 법의 수위를 무시하며 월터를 쫓는다.

그 즈음 시카고의 어느 뒷골목으로 출동한 대니와 조이는 약에 취해 벌거벗은 어린아이를 마주한다. 그들은 신분 확인도 하지 않고 아이의 보호자라고 주장하는 남자에게 아이를 돌려보내고 몇일 후 아이는 시체로 발견된다. 두 경찰이 어린 아이를 연쇄살인범에게 돌려보냈다는 사실에 세상은 발칵 뒤집어지고 두 사람의 경력도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다.

꼬리를 물고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계속해서 악화되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 대니는 오로지 가족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월터 일행만을 뒤쫓고 조이는 무너지기 직전인 대니의 가족 주변을 맴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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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비는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하락하고, 하락하고, 추락하고, 추락해서, 결국에는 땅에 떨어졌다. 산산조각나면서. 어쩌다 운 좋은 빗방울은 물웅덩이에 닿아 고인 빗물에 섞여 들어간다. 이를 알리듯 동심원을 그리며 퍼진다. 아주 커다란 빗방울은 물웅덩이 전체를 뒤흔든다. 대니의 인생이 그랬다. 대니의 인생은 비가 퍼붓던 그 여름, 끝도 없이 곤두박질 쳤다. 정말 눈치 없이 계속되는 비처럼 하염없이 하락했다. 구름처럼 떠올랐던 대니는, 결국 내리꽂힌다. 산산조각 나며, 동심원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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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향한 죄책감은 컨트롤할 수 없다. 이미 죄책감이 마음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어찌할 도리 없이 죄책감의 늪에 빠진다. 몸도 마음도 고되고 나서야 우리는 죄책감을 피할 수 있는 확률이 죄책감을 만날 확률보다 더 높다는 것을 안다. 비도 이와 같다. 도저히 멈출 도리가 없다. 그저 흠뻑 젖고 나서야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우산을 챙겼더라면 말끔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을 거란 것을 알게 된다. 분명한 것은, 죄책감이든 비든,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하면 마음대로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퍼붓기 전으로 돌이킬 수조차 없다. 대니의 죄책감과 조이의 죄책감은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컨트롤할 수 없이 밀고 들어온 것. 대니가 느껴야 했던 죄책감과 조이가 느껴야 했던 죄책감은 이미 시작된 이상 멈출 수 없었다. 돌이킬 수도 없었다.

  결국 그 여름 내내 시카고에는 비가 쏟아졌다. 조이는 말했다. “비는 그쳤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모든 짐승들은 밤에 활동한다.
언젠가 저런 쓰레기들을 씻어낼
진짜 비가 내릴 것이다.

  그 여름 시카고에는 폭풍우가 더러움을 쓸어내고 떠났다. 누군가는 떨어져 곤두박칠 쳤고, 누군가는 죄책감에 절어 물고문과 같은 여름을 보냈다.





“모순이야”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누군가가 말했다. 모든 걸 지키고자 했던 남자가 모든 걸 잃고, 결국 지킬 것 하나 없었던 남자가 모든 걸 가지게 된 순간. 다시 모든 걸 지키고자 했던 남자의 심정이 된다는 것. 누군가는 이 모든 걸 모순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했다. 누군가 나에게 단 하나의 단어로 이 것을 설명하라 한다면, 글쎄, 악순환이라 설명하겠다. 비는 떨어지고, 언젠가는 다시 수증기가 되어, 구름에 당착한 순간 곤두박질치게 되는… 부디 조이는 그 악순환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무엇을 향한 욕망과 진심에 표지판을 살피지 않는다면, 빗길은 절벽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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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정보

공 연 명 : 연극 <스테디 레인>
공 연 장 : 아트원씨어터 3관
공연기간 : 2017년 10월 27일 (금) – 2017년 12월 3일 (일)
공연시간 : 평일 저녁8시, 주말(토,일) 3시/6시
러닝타임 : 100분
티켓가격 : 전석4만원
관람연령 : 만 13세 이상 관람가 (중학생 이상 관람가능)
기획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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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 레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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