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망 속에서 키가 큰다, 아픈 만큼 큰다, < 거인 > [영화]

난 거인이 아니예요. 그냥 애란 말이예요.
글 입력 2017.10.0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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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Set Me Free, 2014)
김태용 감독


간단한 줄거리


아이들에게는 애정을 두지 않고 지원금을 받기 위해 보호하고 있는 그룹홈과, 아이들을 두고 친정으로 가버린 어머니와 변변한 직업 없이 교회나 성당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내세워 지원금을 받으려하고 동생 민재마저 그룹홈으로 보내고 싶어 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생활하는 영재. 영재는 어디 하나 몸과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한다. 영재는 집에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신부가 되려는 예의바른 모범생을 연기하며 세상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가족을 극도로 혐오하는 와중에 이상적으로 바라는 가족의 모습을 바라며 그 가운데에서 아슬아슬하게 삶을 영위해나간다.



“세상에서 네가 제일 불쌍하다는 생각부터 버려, 
세상에는 너보다 더 불쌍한 놈들도 많아.”


다른 그룹홈으로 떠나게 된 영재에게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로 인해 스스로 위안을 받거나 자신의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열일곱의 나이가 혼자서 자립하기에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절망과 아픔으로 가득찬 성장통을 겪고 거인이 되어가고 있는 영재는 끊임없이 ‘난 거인이 아니예요. 그냥 애란 말이예요.’라고 외친다.

누가 그를 거인으로 만들었을까?

영재는 진심어린 사랑을 갈구하고 어른들의 보살핌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안정이 필요한 이 사회의 구조적인 피해자이자 연약한 어린 아이일 뿐이다.

< 거인 >은 김태용 감독의 삶이기도 하다. 그 또한 학창시절을 그룹홈에서 보냈고 영화는 그의 삶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에 대해 마냥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기 어렵고, 영재가 안쓰러우면서도 영화 속에서 영재를 ‘여우, 하이에나와 같이 뭘 해도 될 것 같은 애’라고 비유하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 품고 산다.”


예고편의 문구답게, 영화는 내내 주인공인 영재의 삶을 비추고는 있지만 등장 인물 누구 하나 완전한 ‘악인’은 없다. 영재를 진심으로 다독이고 보살피지 못한 어른들과 주변 환경에는 책임이 있지만 그들의 상황에는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영재의 아버지

영재의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할 경제적 능력은 없이 아이들을 내세워 교회나 성당의 지원금을 받으며 아이들을 그룹홈으로 밀어낸다. 하지만 영재가 가장 혐오스러워하는 아버지 또한 변변한 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겨우 종교 지원금이라는 방안을 모색했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 그룹홈같은 시설에 아이들을 보내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함과 자책이 드러나는 표정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재의 어머니가 여러 곳을 전전하며 일하다가 허리를 다쳐 소득이 없는 환경에서도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이 엿보인다. 가부장제 속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가장이라는 역할을 떨치지 못하는 이 시대의 많은 아버지로 표상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원장 부부

원장 부부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금을 받기 위해 키우면서 지원금을 주는 사람들에게 위선을 떨면서 다 큰 아이들을 내쫓고 싶어하며 가끔 모진 말도 내뱉는다. 하지만 원장 아빠는 아픈 아내를 위해 아침마다 밥을 하고, 이미 나이가 꽉 차버려 내보내야 할 영재에게 하루 빨리 나가라고 하지만 쫓아내버리거나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 한다. 그룹홈 아이들에게 애정은 주지 않지만 먹이고 입히는 주어진 일은 끝까지 해낸다. 영재에게 싸늘한 말을 뱉으면서도 끝까지 영재가 있을 새로운 그룹홈까지 데려다준다.

 
신부님

영재를 항상 온화하게 대하고 신학대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불어 넣어주며 교육 봉사자와 연결까지 해주는 신부님은 영화 내내 좋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신부님에게는 영재에 대한 믿음과 사랑보다는 단순히 성서를 실천한다는, 콕 찝어 지적할 수는 없지만 영재를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피는 거라곤 느껴지지 않는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떨쳐지지가 않는다.

 
범태

그룹홈에서 쫓겨난 범태는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빌고, 영재의 잘못을 발견한 걸 빌미로 자신이 어떻게든 그룹홈에 들어올 수 있게 원장을 설득하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자동차를 털다가 영재의 신고로 현행범으로 잡혔지만 그 이후 범태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나오지 않는다. 범태도 영재처럼 갈 곳 없이 방황하며 삶의 끝자락에 서있는 어린 소년이기에,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범죄를 저지르는 비행 소년이라고 낙인 찍을 수는 없었다.



“무능한 아버지를 죽여주시고, 
못난 어머니를 벌해주시고, 
이런 나를 품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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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칠 대로 지쳐버린 영재가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에게도 영재의 상처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순 없다. 그리고 영재에게 무조건 힘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노래를 들려주면서 살려달라는 애원과 동시에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영재를 다독여주고 싶다.


나는 한때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지길 바랬어
온 세상이 너무나 캄캄해 매일 밤을 울던 날
차라리 내가 사라지면 마음이 편할까
모두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두려워
아름답게 아름답던 그 시절을 난 아파서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내가 너무나 싫어서
엄마는 아빠는 다 나만 바라보는데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자꾸만 멀어만 가
어떡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내게 정말 맞더라고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 나아지더라고
근데 가끔은 너무 행복하면 또 아파올까 봐
내가 가진 이 행복들을 누군가가 가져갈까 봐
아름다운 아름답던 그 기억이 난 아파서
아픈 만큼 아파해도 사라지지를 않아서
친구들은 사람들은 다 나만 바라보는데
내 모습은 그런 게 아닌데 자꾸만 멀어만 가
그래도 난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밝은 빛이라도 될까 봐
어쩌면 그 모든 아픔을 내딛고서라도
짧게 빛을 내볼까 봐
포기할 수가 없어
하루도 맘 편히 잠들 수가 없던 내가
이렇게라도 일어서 보려고 하면
내가 날 찾아줄까 봐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바랬을까

< 나의 사춘기에게, 볼빨간사춘기 >

[최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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