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연극 '트로이의 여인들'

글 입력 2017.08.1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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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미덕'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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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 침묵은 피해자의 미덕이었다. 특히 피해자가 여성일 때 더욱 그러했다. 침묵한 채 눈물 흘리는 여성의 모습. 피해자는 그 한정된 이미지 안에 있어야만 겨우 보호받을 수 있었다. 피해자가 수동적이고 연약한 존재여야 한다는 생각은 곧 그 범주를 벗어나는 피해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입을 열어 자신이 겪은 일과 그 때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피해자를 사람들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 '피해자'라는 그들의 신분은 의심받았고 피해자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보호로부터도 멀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그러한 '피해자의 미덕'은 사라지고 있다.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쪽은 가해자이지 피해자가 아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는 피해자가 많아지고 있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침묵하지 않는 피해자, 즉 '말하는' 피해자에 대한 연극이다. 연극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패배한 트로이에서 살아남아 그리스 군의 노예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직접 자신이 처한 운명을 확인한다. 그 운명에 분노하고 슬퍼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으로 힘껏 저항한다.



그들이 말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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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은 왜 말하는가?

 트로이의 여인들은 연극 내내 소리내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그들이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소리는 그들을 끌고 갈 그리스 군에게는 닿지 않으며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된다. 운명을 바꿀 힘은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잇는 유일한 것이고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그리스 군에게는 닿지 않을지라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아니 목소리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내는 모든 소리에는 '그리스의 여인들' 시리즈가 성찰하고자 하는 내용-정의란 무엇이고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과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낯섦 속 익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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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의 여인들>은 참 색다르고 낯선 연극이었다. 최근에 만들어진 연극만 주로 봐 왔기 때문에 고전 그리스 비극 자체가 낯선 탓도 있었고 분명 한국어인데도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대사들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연극도 아니었다. 억압받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표현하는 것, 그리고 억압하는 세력에 몸은 굴복할지라도 정신은 굴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전작 <안티고네>에 이어 그리스의 여인들 시리즈가 전하고자 하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과 가치'가 아닐까. 낯선 것들 사이에서 익숙한 것을 발견할 때면 더욱 반갑다. 고전 그리스 비극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현재에도 존재하는 '트로이의 여인들'의 목소리에 우리는 계속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공연 정보>

기간: 8.10~8.20
        화 ,금- 오후 8시/토- 오후 4시 7시/ 일, 공휴일- 오후 4시/ 월- 공연없음
장소: 예술공간 서울
공연시간: 70분
제작: 극단 떼아뜨르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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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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