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영화의 봄날 : 봄날은 간다(2001) [영화]

글 입력 2017.07.2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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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001)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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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영화들은 그 특유의 색감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시기가 가지고 있는 음향, 영상의 느낌과 시대적 분위기가 지금은 다시 구현할 수 없는 이상한 세련미를 띤다. 이런 영화들은 사극이나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더 한국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과도하게 정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와 연출, 소품들에서는 향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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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나무 서랍들, 마루가 있는 나무집, 파란 물뿌리개와 화단, 장독대, 철제 대문과 고무신, 종이 담배곽, 수신자를 알 수 없는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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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것의 소리들, 기괴하지 않은 음향과 배경음악들에서는 매우 친숙하고 따뜻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설명적이지 않은 대사들과 분절된 시간적 흐름은 영화가 가져야하는 영화적 느낌을 투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일상의 것들이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될 때, 우리는 시각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을 모두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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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빗소리, 겨울의 눈소리, 눈 위에 찍히는 뽀드득 발자국 소리, 갈대숲을 쓸고가는 바람소리,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노랫소리, 여름날의 매미, 새벽녘의 새의 지저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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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애를 되돌아 볼 때의 그 아련하고 마음저리고 고민스러운 감정을 상우(유지태)는 너무나 잘 표현하였고, 다듬어지지 않은 여인, 은수를 이영애는 밉지 않게 잘 표현해 냈다.

마지막 찻집에서 화분을 받고도 말을 아끼는 모습과 같이 시간을 보내자는 말에 대답없이 안녕을 고하는 상우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은수의 이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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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생겨버린 옛 여인의 차를 긁다가 들키는 일, 술에 취해 헤어진 연인의 집에 찾아가는 일, 전화를 기다리는 일, 엉엉 울어버리는 일,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하며 앉아있는 일, 가족들에게 알 수 없는 짜증을 부리는 일, 고래고래 노래를 부리는 일, 무기력과 짜증에 빠져 방문을 닫고 누워있는 일. 계절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에 슬퍼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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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가 겪는 찌질하고 슬픈 이별의 과정들을 너무나 잘 담아 내었고 꾸밈없는 연출과 연기는 충분히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였다.

라면먹고 갈래요?
버스와 여자는 떠나면 잡는게 아니란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주옥같은 명대사들을 남긴 채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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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 같이 왔다가
한 순간 사라져버리는 사랑과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모습만을
머릿속에 간직하신 할머니

집나간 할머니를 자꾸 찾으러 다니는 가족들과
대화는 없어도 이해는 있는 아버지와 아들

사진과 녹음기 속에 박제된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기억 혹은 추억
변하지 않는 사랑은 치매걸린 할머니의 머릿속에
박제된 할아버지의 기억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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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의 감성이 마음에 든다면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과 '8월의 크리스마스',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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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내 캡쳐)


[유세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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