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행인이 가져온 판타지, 퀴담

글 입력 2017.06.2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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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담(Quidam)은 라틴어로 ‘익명의 행인’이라는 의미로 익명성의 사회와 소외된 세상을 희망과 따뜻한 화합이 있는 곳으로 바꾸어 놓는 상상력 가득한 작품이다. 과거의 서커스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단순히 볼거리를 제공하고 기예를 통한 아찔한 쾌감을 선사하는 데에 그쳤다면 퀴담은 환상적인 ‘서사’를 갖췄다는 점에서 차별화 되었다. 신문 읽기에 집중하고 있는 아버지, 라디오에만 귀를 기울이는 어머니, 그리고 어린 딸 조이(Zoe)가 있는 한 가정의 거실에 코트를 입은 머리 없는 퀴담이 우산을 쓰고 찾아오는데서 공연은 시작된다. 조이가 그가 두고 간 중절모를 쓰면서부터 조이의 눈에는 전과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결국 조이와 광대들은 가정의 인간 소외를 해소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돌려놓게 된다. 또한 퀴담은 라이브 음악에 직접 노래를 부름으로써 즐길 수 있는 예술적 요소들을 늘렸다.

퀴담에서 기예는 각 인물들의 감정과 입장을 표현하는 것으로, 서사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회전하는 바퀴에 사람이 들어 있는 기예는 일상의 반복되는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쳇바퀴 같은 삶을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내며 중국 소녀들이 요요 같은 도구를 던지고 받는 기예는 십대 소녀인 조이의 어린아이 같은 면모를 나타낸다. 또한 한 여성이 공중에서 붉은 천에 신체를 매달고 비트는 동작은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 못한 어머니의 괴로움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단순히 기예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추구 한 것이 아니라 서사를 그 안에 녹여냄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공연에 더 몰입하고 많은 것들을 해석 할 수 있게 하였다.

퀴담의 중절모를 쓴 신사의 이미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익숙한 것들을 뒤집고 관습을 거부하며 실제 세계를 시험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서 ‘어떤 불가능한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려 했다. 중절모를 쓴 신사가 나타내는 것은 익명성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이 신사는 얼굴을 알 수 없는 뒷모습이거나 앞모습일지라도 얼굴을 가렸거나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어 인물의 개성을 찾아 볼 수 없다. 타의 회화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이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라면 마그리트의 신사는 이러한 생각을 뒤집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인물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퀴담이 이런 중절모 신사의 이미지를 하고 있는 것은 ‘익명의 어떤 것’이 세계를 바꿔 놓는다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퀴담을 비롯한 서커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광대이다. 광대는 무당과 맥을 같이 한다. 광대의 곡예는 무당의 굿거리와 같이 신에게 바치는 제물인 것이다. 이 때문에 광대는 세계에서 하늘과 인간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한다. ‘밧줄’을 매개로 하늘과 땅을 오가며 아찔한 곡예를 선보이는 것도 광대의 중간자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또한 퀴담이 모자를 바닥에 떨어트릴 때, 그리고 화합을 이뤄 더 이상 모자의 힘이 필요하지 않게 된 조이에게 모자를 다시 돌려 받으려 등장 했을 때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친다. 번개는 신의 제일가는 권능으로, 대개 각 신화에서 신들의 왕인 주신(主神)이 다루며 신성시 된다. 또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꽂히기 때문에 신의 사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천둥으로써 퀴담, 그리고 모자의 신성함이 드러나고 강조 된다.

광대이자 무당, 그리고 신의 사자인 퀴담과 신비한 존재들이 인간에게 권능을 나누어 줌으로써 가정의 인간 소외를 회복하게 해주었다. 조이에게 모자를 돌려받으면서 퀴담이 어디론가 다시 떠나 버렸듯이 퀴담은 또 다른 사람에게 신비한 기적을 나누어 줄 것이다.


[정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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