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우리에게 그 때, 거기, 그들의 태백산맥

조정래, 태백산맥
글 입력 2017.06.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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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를 보면 검정 배경에 빨간 글씨로 쓰여 있다. 太白山脈. 검정과 빨강은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색이다. 해방 직후부터 분단까지 암흑과도 같은 생활을 했던 민중들의 검정색과, 사회주의를 부르짖으며 피 튀기는 혁명을 하고자 했던 소위 빨갱이의 빨간색, 이 두 색의 대비와 조화가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설 「태백산맥」의 공간적 배경은 벌교다. 벌교에는 까맣고 질척한 뻘과 닮은 질기고 질긴 사람들이 산다.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끝끝내 살고자, 또는 고문과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고자, 때로는 옳은 것을 무시하고 자기 잇속을 챙기고자 질기게 살아간다. 태백산맥은 그들 모두의 이야기다. 하지만 결국 그들을 멈춰 세우는 것은 위험과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다. 또는 사랑을 비롯한 어떤 진심이다. 결국 이것 또한 검정과 빨강으로 상징된다. 색 중에서도 가장 강한 색인 검정과 빨강의 소설 「태백산맥」은 그렇게 독자의 마음속에도 깜깜한 무언가와 뜨거운 무언가를 남겨놓는다.
그는 그 억센 산줄기의 봉우리 봉우리에서 봉화들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봉화들은 너울너울 불길을 일으켜 어둠을 사르며 줄기줄기 뻗어나간 산줄기들을 따라 끝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불꽃들과 함께 함성이 울려오고 있었다.1)
   소설 속 모든 일이 일어나는 중심인 벌교엔 정작 태백산맥이 지나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제목은 태백산맥인가. 한반도 전체가 몸이라면 태백산맥은 그 몸 곳곳을 연결하는 핏줄과 같다. 가정을 바꿔 나라가 몸이라면 그 핏줄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민족성일 것이다. 태백산맥은 민족성의 상징어가 아닐까, 그래서 제목을 태백산맥으로 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는 「태백산맥」이 이념소설이기 이전에 민중소설, 즉 민족성을 담아낸 그릇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작가와 작품이름을 나란히 놓았을 때, 이 정도의 무게감을 갖는 작품을 많지 않다. 「태백산맥」은 표지와 제목, 즉 겉에서 보았을 때도 어떠한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작품은 그 작품을 감상한 독자들에게 각별해지고 어떤 아우라와 같은 걸 뿜어낸다. 다만, 태백산맥은 장장 10권의 길고 긴 여정이었던 만큼 나에겐 그 아우라가 더 짙고 오래 남을 것 같다. 지금, 여기, 우리에겐 그 때, 거기, 그들의 태백산맥이 있다.


11) 조정래, 「太白山脈10」, 341p

[윤맑은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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