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 공연 - 국립국악관현악단

글 입력 2017.05.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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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를 피해 후다닥 도착했던 국립극장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잠시 줄을 서서 표를 받은 후 곳곳에 놓인 팜플렛들을 가득 쓸어 담았다. 그리곤 객석에 앉아 가방 속에 그것들을 꾹꾹 담아두고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곧이어 등장한 연주자들. 대금이 불어준 소리에 피치를 맞추던 그들의 모습.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아주 오래간만에 보는 사이임에도 어제 본 것처럼 친밀감이 느껴지는 관계. 나에게는 국악이 그러하다. 잠시 혼자만의 감상에 빠질 즈음 고대했던 연주가 시작됐다.
  
#히나우타(鄙歌)
첫 번째 곡은 일본의 전래 민요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다웠다. 전통적인 국악의 5음계나 3박자에 기초한 소리가 아니라 시작부터 신선했다고 해야 할까. 주선율은 마치 3-50년대의 옛날 가요 –목포의 눈물, 애수의 소야곡- 혹은 일본의 엔카를 연상시켰다. 이러한 일본풍의 선율을 국악기로 연주하니 무척이나 오묘했다. 유독 인상 깊었던 것은 소금의 높고 쨍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그토록 이국적인 소리를 내는 악기였나 싶을 정도로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큰 역할을 차지했다.
  
#후토(后土)
두 번째 곡은 후토(땅의 신)이라는 제목답게 광활한 대지가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이 곡 또한 기존의 국악에서 쓰이는 음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중반으로 갈수록 불협화음과 같은 선율이 이어졌는데 그것이 상당히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한중일의 전통적인 사운드보단 오히려 클래식의 현대음악이 떠올라 첫 곡보다 좀 더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마두금 협주곡 '원(源)'  
가장 베스트였던 작품이다. 실제로 들은 마두금의 소리는 크고 울림이 깊었다. 듣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나올 듯 깊은 향수를 느끼게 했다. 이 애환 가득한 악기는 해금과 같이 두 개의 현을 활대로 문질러 소리를 낸다. 하지만 해금보다 훨씬 소리통이 크고, 부드러우며 풍부한 음색을 지녔다. 누구라도 마두금의 첫 음을 듣는 순간 매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마두금 연주자는 몽골의 전통성악인 흐미도 함께 노래했다. 흐미는 입을 벌리지 않고 산과 강, 바람 등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는 음악이다. 코와 혀를 이용해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는 것인데 그 독특함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이 곡은 몽골의 초원을 연상케 하는 이국적인 가락뿐만 아니라 국악기와의 조화도 돋보였다. 특히 양금과 소금, 대금, 마두금의 어울림은 동일성과 차이의 미학이라는 슬로건에 가장 부합한 순간이었다.
  
#가야금 협주곡 '소나무', 오케스트라 아시아를 위한 뱃노래
네 번째 곡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색을 지닌 가야금의 장점과 일본 문화 특유의 절제미, 간결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던 작품이었다. 이를테면 뜨거운 여름밤에 서늘한 밤공기를 마시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연주자의 기교와 감성, 호흡 모두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완벽했다. 다섯 번째 곡은 민요인 뱃노래를 재창작한 곡으로서 가장 익숙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굿거리장단이 얽힌 곡은 나각과 나발의 소리가 더해져 갈매기가 끼룩대는 백사장에 온 듯 했다. 연주자들 또한 가장 편해보였고 가장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번 공연에서 유독 인상적이었던 것이 소금, 박, 훈, 양금, 생황과 같은 악기의 구성이었다. 평균율을 사용하는 서양악기와는 달리 국악기는 음계가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관현악보다 실내악 또는 독주에 적합한 악기라고들 흔히 말한다. 이러한 국악기의 장점이자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다양한 악기의 활용이 아닐까. 특히 생황, 양금, 철현금, 대해금, 퉁소, 소해금 등 관현악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는 악기를 통해 소리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추구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윤중강 평론가는 20세기의 국악기로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을, 21세기에 부각되는 국악기로는 소금, 생황, 아쟁, 양금, 태평소 등을 들었다. 여기에 더해 개량악기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 현대적 시도라고 말한 바 있다. 공연 관람 후 나 역시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악기의 특성과 다양성, 새로운 음계를 강조한 작곡이 점점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리라 생각했다. 일본과 중국 작곡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기존의 국악에서 잘 쓰이지 않는 곡 구성과 음계, 악기 활용 등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보여줄 현대적 실험, 새로운 가능성을 고대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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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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