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럽고 추한 것을 좋아하세요? [시각예술]

'예술보다 추한 Ugly as Art' 전시에 다녀오다
글 입력 2017.04.3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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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대 미술관에 방문했다. 지난 3월 7일부터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사실은 전시 제목의 ‘추한’이라는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될 것 같았다. 언젠가 한 번쯤 고민해보리라 했던 것을 이 기회에 영감을 얻어 파고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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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서용선 작가의 나무 조각 작품과 인상적인 문구를 지나 전시 초반부로 들어가면 함진 작가의 재미있는 작품이 보인다. <무제2017>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쓰레기들로 만든 것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럴 듯 했으나 가까이서 살펴보니 꽤 충격적이었다. 방바닥에 보기 싫게 굴러다니는 머리카락들이 전시장 한 켠에 붙어있다. 뭉그러지고 말라비틀어진 과일, 지저분한 테이프 자국,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었다. 아니, 보기 좋지 않았다. 더럽고 구역질 났다. 그런데 계속 보게 된다. 이 조형물은 무슨 쓰레기로 만들었을까, 하나하나 살펴보는 게 은근히 재미있었다. 특히 컵라면 뚜껑, 스프 봉지 등으로 만든 컵라면 쓰레기 작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작품을 보고 꽤 근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완벽한 비례, 정교한 다듬질, 화가의 피땀 섞인 노력, 고민, 그런 것들이 합쳐진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용선 작가처럼 나무를 마구잡이로 깎아 놓은 것은 추한 것일까? 함진 작가의 작품처럼 정교하고, 세밀하고, 디테일한 표현과 새로운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은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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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진, 무제2017, 2017


오치균 작가의 는 작가 자신이 뉴욕에서 유학했을 때를 배경으로 그린 것인데, 4년 전 뉴욕에 갔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뉴욕에 간 첫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빌딩 중 하나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가려 늦은 저녁 거리를 걸었다. 그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주변에서 줄줄이 웅크리고 누워있던 홈리스들의 모습이 4년이 지난 지금도 꽤 생생하다. 그때 처음으로 ‘도시의 낭만은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세계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여행할 때 그 속에서 어둡고, 습하고, 거칠고, 더러운 것들을 일부러 찾아내려 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없다면 그 도시는 별로 매력이 없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파리, 프라하, 홍콩 등 낭만적인 도시에는 언제나 혼잡하고 축축한 것들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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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균, Homeless, 1986


루이스 부뉴엘과 살바도르 달리가 만든 충격적인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도 볼 수 있었다. 그 영화에 여성의 눈을 면도칼로 자르고, 구멍 난 손에서 개미가 우글대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무언가에 이끌린 듯 그 장면을 기다리게 되었다. 잔인하고 징그러운 것들은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 불쾌해질 것을 알면서도, 마치 공포영화를 찾는 수많은 관객들처럼, 꼭 그 장면을 봐야만 하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은 미디어에 넘쳐나고, 사람들은 중독된다. 인간에게 추함을 지향하는 본성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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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뉴엘 & 살바도르 달리, 안달루시아의 개, 1928


최영빈, 이근민 작가의 작품은 ‘인간의 몸은 신성하고 아름답다’라는 우리의 생각을 뒤엎는다. ‘별로 그렇지 않은 걸.’ 창백하고 축축한 인간의 몸을 사실적으로 묘사할수록 혐오감이 든다. 생각해보면 김태희와 골룸 사이에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눈의 크기, 피부의 탱탱함, 입술의 각도, 곧은 자세 등등 아주 작은 차이들이 모여 그들에게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해낸다. 전시의 막바지에서, 구지윤 작가의 작품들을 보기 시작할 때 나는 마음 속에서 작품에 대해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 짓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작품의 색채는 화려하고, 분명 아름다웠지만 어떻게 보면 토사물 같이 자유분방하고 어지럽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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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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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욱, 부재와 임재 사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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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드 사가장, Transfiguration, 2011


서울대미술관장 정영목 교수는 전시 소개글에서 “때문에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추한 것’은 없다. 단지 ‘추한 것’과 ‘추하지 않은 것’의 판단 기준이 상대적일 따름이다.”고 했다. 전시를 보기 전에는 ‘정말 그럴까?’ 했다. 이 세상의 누가 보더라도 메스꺼움을 느끼는 것이 존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내 감각부터 의심하게 된다. 내가 이런 추한 것에 매력을 느꼈던가? 아니면 그것이 사실 본래적으로 ‘추한 것’이 아니었던가? 전시 도록에서 서울대미술관 연구부 정신영 교수는 “추함의 기준은 아름다움의 기준보다 덜 논의되어 왔다”는 요지로 글을 시작했다. 그렇다, 우리는 왜 어떤 눈이, 어떤 다리가, 어떤 휴대폰의 디자인이, 어떤 도시가, 어떤 마음씨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하면서도 어떤 것이 추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무시해왔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만큼이나 추한 것에 끌리는 데도 말이다. 이미 예술계에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편적인 추함의 기준에 도전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한 번쯤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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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화) 까지 전시기간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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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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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에밀리
    • 전시 연장 기간 5월 16일 (화) 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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