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벨기에 물고기, 상처를 마주보는 방식에 대해서

글 입력 2017.04.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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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로드는 소년이자 소녀, 물고기이자 아저씨이다. 괴팍한 동시에 사랑스러울 수 있고, 괴로워해서 더욱 아름답다. 연극 ‘벨기에 물고기’는 상처 입은 한 인간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룬다. 48세의 성인이 된 끌로드는 다른 모습으로 발현된 소녀인 모습의 끌로드를 마주치고, 스스로와 나눠야만 했던 대화를 나눈다.

  트라우마의 치유를 방해하는 커다란 요소 중 하나는 근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상후증후군 치료의 중점은 그 본성을 ‘까발리는 것’에 있다. 자신의 감정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어떤 상황이 나를 못 견딜 정도로 괴롭게 만드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아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판단할 수 있다.


  끌로드는 이미 너무 나이 들어 버렸다. 그래서 자신이 버리고 온 어린 끌로드를 마주할 수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시간은 그들에게서 너무 많이 지나와 버렸다. 이 사실은 이제 와서 어린 끌로드를 받아들이려고 한들, 완벽하게 자기로 품을 수는 없다는 말이 된다. 연극 내에서도 결국 두 끌로드는 끝까지 타인으로 그려지니까. 이 극의 작자는 상처를 꿰매거나 고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끌로드는 용기를 내어 자신과 대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어딘가가 쓸린 상태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아름다워지는 지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연극은 상처와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내 상처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조금 더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끌로드는 결국 스스로를 마주보고, 스스로가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얼마나 돌아서 왔든, 오래 걸렸든, 결론이 중요하다. 어린 끌로드가 어른 끌로드에 대해서 설명하는 마지막 장면은 결국 끌로드라는 인물이 자기 스스로가 되어 자유로움을 찾았다는 설명이 된다. 흉터는 완벽하게 지울 수 없으나, 다만 그 흉터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덧붙여 그건,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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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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