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열정에는 등수가 없다: 영화 '4등' 리뷰 [시각예술]

영화 '4등' 리뷰
글 입력 2017.04.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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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에는 영화 <4등>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상 속 순위매기기



   순위매기기만큼 사람을 자극하는 것이 또 있을까. 괜히 스포츠가 큰 인기를 끄는 게 아니다. 예능프로그램은 사람들의 이런 속성을 잘 활용한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게임이 중심이 되는 리얼버라이어티, 순위매기기 식 토크가 주를 이루는 스튜디오 예능이 이를 증명한다. 많은 예능프로그램들에 순위매기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들어 있다. 출연자들은 끝까지 남기 위해, 또는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쓰고 시청자들은 이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스포츠와 예능프로그램을 포함한 대부분의 순위매기기 게임에서 사람들은 상위권을 차지한 사람(주로1~3위)의 빛나는 결과만 기억한다. 그 외의 것들-4등,5등을 한 사람이라든가, 1등을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은 잘 알지 못한다.

  영화<4등>은 이처럼 순위매기기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하고 어두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빛나는 결과만을 중시하며 나머지는 애써 무시하려 하는 우리에게 "정말 그래도 돼?"라며 물음을 던진다.



1등까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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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4등>은 수영선수가 꿈이지만 수영 대회만 나갔다 하면 4등을 면치 못하는 아이 '준호'와 과거 늘 1등을 하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지만 감독과의 불화로 수영을 그만두고 현재는 문화센터 수영 강사가 된 '광수'의 이야기이다. 접점이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은 어떻게든 준호를 메달권에 들게 하려는 준호 엄마의 극성 덕에 코치와 학생으로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준호를 가르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광수는 준호가 수영하는 걸 보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 광수는 준호를 제대로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이 때부터 훈련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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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과는 있었다. 매일 새벽 광수에게 언어폭력, 신체폭력을 당해가며 훈련한 결과 준호는 처음으로 대회에서 2등을 한다. 하지만 1등이 아니었기에 광수의 호된 '가르침'은 계속된다. 광수는 준호를 때리고, 때린 후에는 맛있는 걸 사주거나 마사지를 해주며 '맞을 짓을 했으니 때리는 거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광수는 과거 감독이 휘두르는 폭력을 피해 수영을 그만뒀음에도 어느새 훈련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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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하는 게 더 무서워"


  준호의 엄마는 준호가 겪는 일을 눈치채지만 광수를 만나기 전 4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준호를 다시 보는 게 두려워 눈을 감아 버린다.  1등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 하에 폭력은 '교육'이라는 탈을 쓴 채 정당화된다. 광수는 준호를 때리며 과거 자신의 스승들이 학생들을 훈육할 때 늘 좋은 성적을 내는 자신을 열외로 두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혼냈더라면 자신이 좀 더 잘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천재였음에도 잘 풀리지 않은 까닭을 굳이 따지자면 그의 스승이 그를 '때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좋은 성적만 내면 평소 생활이 어떻든 간섭하거나 훈계하지 않은 결과지상주의 때문이다.

  익숙한 모습이다. 교육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결과만 좋다면 과정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결과지상주의를 우리는 지금껏 현실에서 흔히 봐 왔다. 인권, 안전, 윤리의식 등등. 결과만이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많은 것들이 그저 목표를 위한 소모품이 되어버린다. 사람이 목표를 이루는 게 아니라 목표가 사람을 갉아먹는다. 사회 곳곳에 만연하는 비리들 역시 결과지상주의의 폐해이다. 광수도 크게 보면 이러한 결과지상주의의 피해자이다. 그가 그랬듯이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오늘의 피해자는 내일의 가해자가 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1등이 된 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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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되는 광수의 폭력과 이를 묵인하는 엄마 사이에서 준호는 고통받는다. 결국 준호의 아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준호 아빠와 엄마, 코치인 광수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준호는 수영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준호는 수영을 좋아하지만 수영과 준호 사이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끼어 있었다. 그가 수영을 그만둔다고 하자 '네가 무슨 권리로 수영을 그만둬' 라며 울부짖는 엄마의 모습은 지금까지 준호가 누구를 위한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호는 수영을 좋아하고 잘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준호는 여태까지 엄마와 코치의 의지로 1등을 위해 연습해 왔다. 하지만 이 때 준호는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 1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의 노력으로 1등을 거머쥐며 영화는 끝난다.



하지만, 인생은 스포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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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등하는 게 뭐가 중요해? 라고 외치던 영화가 주인공이 1등을 하며 끝이 나다니.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던 준호가 결국 1등을 해서 마음은 편안하지만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물론 수영과 같은 스포츠 분야에서는 등수가 중요하다. 준호는 좋아하는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 1등을 해야 한다. 준호는 노력 끝에 '자신만의 수영'을 할 수도 있게 되었고 덩달아 1등까지 하게 되었으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선 인생은 스포츠와 같이 등수가 명확하게 나오는 것이 아닐뿐더러 노력한다고 꼭 어떤 분야의 1인자가 되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이 영화는 "거봐,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니까 1등하잖아. 1등 못하는 너는 노력과 열정이 부족해서 그런거야"라는, 자칫 왜곡된 메세지를 전달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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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건 준호가 결국 1등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수영에 대한 열정을 깨닫고 노력한 끝에 '자신만의 수영'을 터득하고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 분야에서 꼭 1등이 아니라고 해도 좌절할 필요 없다. 아니, 인생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등수매기기 자체가 의미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출발점이 다르고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간다. 뛰는 사람도 있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된다면 나름대로 의미있는 삶이다.

  죽기 전 생각나는 것은 살면서 1등을 몇 번 했느냐가 아니라 후회할 일을 얼마나 했느냐일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잘하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은 후 남과 비교하지 않고 거기에 열정을 쏟으면 그만이다. 우리는 '*등'의 자리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빛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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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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