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문학]

방법은 조금 달랐어도, 결국엔 사랑이였음을.
글 입력 2017.04.0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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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같은 방을 쓰던 언니의 일기장이나 편지를 훔쳐보다가 걸려서 몇 번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다.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돌이켜 다시금 생각해보면 내게 무서운 존재였던 언니는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알고 싶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비밀을 듣거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라고 시작되는 이야기가 결국 아무나 아는 사실이 되어버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데,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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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실내인간>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된 책으로, 이야기는 ‘이석원’이라는 사람이 ‘김정희’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생기는 일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매 연결되어 있어 한 편의 소설 같은 산문집이라는 것이 특징으로, 그래서 책을 한 번 손에 잡으면 이야기에 흠뻑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한 매력이다.
 
나는 처음 책을 읽고 그 자리에서 반절을 넘게 읽었는데, 산만함의 극치인 내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여러 번 고민한 끝에, 궁극적으로 내린 답은 역시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이었다. 비록 <나의 소녀시대>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풋풋하지는 않은 40대 아저씨의 현실적인 사랑이지만 그 가운데 ‘누군가를 원하고 소망한다.’는 본질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혼으로 상심을 겪고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 자체를 체념까지 했던 그에게 사랑은 10대·20대보다 더한 간절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앞서 말씀한 것처럼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그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산문집이다. 그리고 나는 산문집을 읽으면서 사실은 이 이야기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더랬다. 특히 책장을 넘기면서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고, 숨겨졌던 마음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더더욱. 책을 읽을 때 작가가 속해있는 밴드의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었는데, 쟁쟁거리며 절정으로 향하던 악기 소리가 그렇게 슬프게 들렸던 것 역시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처럼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조절할 수도 없는 타이밍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전적으로 그 당사자들이라니. 머피의 법칙 같은 불변의 진리가 야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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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떠한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한 이유를 고민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에서도 그렇다. 단지 심심할 때만 보낸 줄 알았던 ‘뭐해요?’라는 가벼운 인사가 사실은 억누르다 못해 살짝 삐져나온 마음 한 가닥이었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거창한 말이 아닌 흔한 말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큰 의미를 담고 있을 수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이처럼 담백한 글을 읽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러한 문장이 주는 울림과 여운은 삶에 있어서도 오랫동안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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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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