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화려하고 천박한 남자들의 삶, '비스티' 를 보다 [공연예술]

글 입력 2017.03.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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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이벤트로 당첨된 티켓을 들고, 줄거리도 모른 채 한 대학로 뮤지컬 극장에서 ‘비스티’ 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극의 배경은 ‘개츠비(Gatsby)'라는 호스트빠, 주인공들은 그 곳에서 일하는 일명 ’선수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공간도, 인물들도 아니지만 순식간에 이야기에 흡입될 수 있었다.

 ‘비스티’는 창작 뮤지컬로 2014년에 ‘비스티 보이즈’라는 이름으로 초연되었다. 사실 ‘비스티’의 배경과 인물들은 하정우와 윤계상이 출연한 영화 ‘비스티 보이즈’라는 곳에서 나오게 된 것인데 줄거리와 인물들 성격마저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비스티보이즈.jpg
자료원: 네이버 영화 


 영화나 극을 봤다면 알 수 있겠지만 비교적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네오 누아르(neo-noir)’ 혹은 ‘포스트 누아르(post-noir)' 장르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네오 누아르란 할리우드에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나온 장르로 1940~50년대의 고전 누아르 필름의 범죄, 스릴러, 폭력, 어두움의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 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주제, 내용, 미술 등을 갖춘 장르 스타일을 뜻한다. 대표작으로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와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했던 홍콩 ’영웅본색‘ 영화가 있다. ’네오 누아르‘ 장르의 뮤지컬인 ’비스티‘에서 필자는 뮤지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어두운 배경과, 어두운 인간의 본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둠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뮤지컬 ‘비스티’에는 총 5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마담, 주노, 알렉스, 민혁, 그리고 승우. 아버지의 빚으로 어쩔 수 없이 ‘갯츠비’ 호스트빠에서 근무하게 된 승우. 적응도 잘 못하고 모든 것이 어설픈 승우는 마담으로부터 주노를 감시하라는 비밀령을 받게 된다. 주노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마담의 여자와 몰래 만나며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거라 외치고 도망칠 계획을 짠다. 알렉스는 생계형 선수로 자신의 딸의 입원비와 수술비를 위해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민혁은 얼핏 보면 가장 근심 없고 밝은 사람처럼 나오지만 가장 사치스러우며 배우를 꿈꾸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마담은 ‘갯츠비’ 호스트빠의 우두머리로 강인하고 무심하며 또 잔인한 인물로 나온다.


주인공들.PNG
자료원: 인터파크 티켓


 이야기는 각자의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인물끼리 얽히고 섥히며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주인공들은 왜 이런 비극을 맞이해야 했을까.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마담의 소유욕으로부터 전개된다. 겉으로는 굉장히 강하고 허세가 많은 마담은 사실 안은 매우 약하고 정이 많으며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다. 혼자가 싫어 주노의 첫사랑을 이용했고, 민혁의 앞길을 방해했으며, 알렉스에게 못 할 짓을 시켰다. 마담은 이들을 소유하기 위해 ‘넌 내꺼야’ 라고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또한 이들이 떠나가지 못하게 예전 자신이 옆 박스 선수 얼굴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건을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위협한다. 그러나 마담이 비극의 끝에서 주노에게 ‘사실 나 그 때(옆 박스 선수 공격할 때) 많이 무서웠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도 할 수 없이 나약한 인간이구나, 덜 자란 어른이구나 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승우에게 있다. 승우는 이야기에 깊이 개입되어 있지만 또 완벽하게 관찰자의 입장으로 극을 이어나갔다. 특히 그가 마담과 주노의 신경전 중 홀로 영화 보듯 과자를 먹고 있는 장면에서 승우가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마담과 주노의 비극을 곁에서 지켜보고 또 알렉스를 도와주면서 한편으론 민혁을 이용하는 숨겨진 악역으로 변했다. 호스트빠를 금방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승우는 마담과 동일한 인물로 성장하면서 악순환의 궤도를 달리고 말았다. 마담으로부터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움켜잡아야 한다고 배운 승우는 정말 마담이 갖고 있었던 ‘조커’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돈과 권력의 욕심을 채웠다. ‘갯츠비’에서 일한 첫날 승우는 자신에게 악취가 나는 것 같다며 울부짖었지만 그는 결국 마담보다 더 악한 인물로 변하고 타락해버린다.

 누가 나쁜 것일까? 세상이 악랄하게 변한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변한 걸까. 마담은 ‘내가 나쁜거냐?’라고 묻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 어느 누구도 나쁘다, 좋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은 그저 인간의 본성대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뮤지컬 음악의 또 다른 발견


 뮤지컬이라면 단연 음악이 빠질 수 없다. 극의 화려함과 생기를 북돋아주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극대화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초반에 등장한 넘버 ‘아름다운 밤이여’는 극 마지막쯤에 다시 나오는데 이는 즐거웠던 과거와 앞으로 일어날 비극과 대비되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알렉스와 마담의 ‘관성의 법칙’ 에서는 마담의 악랄함과 알렉스의 처절함, 그리고 전개될 비극의 서막을 곡에 녹여서 보여주었다. 정해진 길로만 가야한다는 관성의 법칙을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긴장감도 놓치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노래는 역시 커튼콜 때 불렀던 ‘지워지는 순간을 견딜 수 없다면’이다. 극 중에서 주노가 자신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인데 극이 끝난 후에는 마담이 불렀다.


 
“지워질 것들은 지워야 한다.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없다면.
 지워질 것들은 지워야 한다. 지워지는 순간을 견딜 수 없다면.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없다면 널 만난 기억, 사랑한 추억 잊어야한다.
 수많은 꿈 모두 버려야 한다...“

- 지워지는 순간을 견딜 수 없다면 中 -



  주노가 포기했던 것들을,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주노가 불쌍하게 보이고, 또 주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을 망친 마담을 생각한다면 마담이 안돼 보인다. 이렇듯 음악을 통해 관객을 웃게, 울게 만드는 매력은 뮤지컬 ‘비스티’에서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을 다 본 후, 필자는 공간과 인물만 다를 뿐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도 이와 다를 바 없을 거 같아 보였다. 적당히 참을 줄 알아야 하고, 적당히 내 할 일, 주어진 일들을 해야 하며, 또 적당히 내 안의 더러운 것들도 숨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 욕망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욕망만 쫓다보면 결국 타락하는 건 한순간으로 다가온다. 극 중 호스트빠 이름인 ‘갯츠비’도 극과 굉장히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한 여자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탕진한 갯츠비의 모습을 5명의 주인공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어 이야기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모두가 힘든 이 순간, 화려함과 탐욕을 쫓아 스스로가 무너지는 일은 없길 바랄 뿐이다.

참고) 비스티는 5월 27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된다.


비스티 포스터.gif
자료원: 인터파크 티켓


[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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