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드가 '혐오'를 다루는 방식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1.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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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ffice
Season 1~9
On Air : 2005~2012





  한 미국드라마(이하 '미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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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드라마는 던더 미플린이라는 종이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20분 분량의 짧은 에피소드로 풀어나간다. 흔한 배경음악도 없고, 촬영 기법도 독특하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실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다큐처럼 촬영하는 컨셉으로,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 앉아 인터뷰를 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과 맞닥뜨리면 카메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무한도전의 '무한상사'가 바로 이 드라마, '더 오피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오피스가 큰 인기를 끌었던 요인 중 하나는 각각 개성이 살아있는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직원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인 메러디스,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며 하루종일 스도쿠 퍼즐을 푸는 스탠리, 회계부서지만 숫자를 잘 모르는 케빈 등 모든 캐릭터들이 입체성을 가지고 여러 에피소드를 꾸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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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인물을 꼽아보자면, 던더 미플린의 보스인 마이클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보스'라는 머그컵을 애지중지 여기며 자신의 직업에 높은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직원들 중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던더 어워드'를 매년 개최하고, '올해의 노처녀상' 따위를 수여하며 즐거워한다.

  그는 사장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유치하고 속이 좁으며 장난치기만을 즐기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마이클의 캐릭터를 통해 '혐오'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차별주의자이다. 마이클은 사장으로서 '다양성의 날'을 개최하고, 각기 다른 인종이 모여있는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진다. 멕시코인부터 흑인까지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직원들은 각자의 이마에 자신은 모르는 메모를 하나씩 붙이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메모를 보고 묘사한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떤 인종인지를 맞추는 일종의 '게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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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들의 반응이 좋을 리 없다. 멕시코 사람, 자메이카 사람 등의 메모를 보며 마이클은 그들 특유의 억양을 장난스럽게 흉내낸다. 그리고 방금 던진 자신의 유머가 재밌지 않았냐며 -혼자- 신나게 웃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직원들은 카메라를 '지겹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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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 또한 마이클의 캐릭터를 잘 설명하고 있다. '네가 게이라는 사실은 절대 너를 정의할 수 없어. 멕시코 사람이라는 게 너를 설명해줄 뿐이지.'  마이클은 게이이자 멕시칸인 직원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마이클의 차별적인 언사에 진저리가 난 직원은 이 회사를 더는 다니지 못하겠다며 속마음을 토로한다. 모든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직원들은 마이클의 실수에 대해 모두 인정하는 표정을 보인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마이클만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얼굴이다.

  그런 그는 자신이 게이였다면 누구보다도 게이 퍼레이드에 앞장 서서 화려한 깃털을 달고 행진했을 거라며 -위로랍시고- 말을 건넨다. 직원의 표정이 더욱 굳어가자 마이클은 포옹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포옹을 쉽게 받아줄 리 없다. 사장님의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모욕적이었다고 화를 내자, 마이클은 상처받은 표정으로 회의실을 빠져나가려 하고 순간 마음이 약해진 직원이 그를 잡아세운다. 그 때 마이클이 제시한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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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를 싫어하지 않아. 게이랑 뽀뽀도 할 수 있어."


  그는 회의실에서 -누가 봐도 힘겨워 보이는- 뽀뽀를 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에 직원들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이 레파토리,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여성 혐오를 하는 남성들이 '여성 혐오라니? 난 여자를 좋아한다구!'라고 외치는, 바로 그 논리와 똑같다.

  마이클의 말과 행동들은 몇 개의 시즌을 거치는 동안 꾸준히 차별적이다. 그는 특히 게이와 인종에 관련된 농담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차별과 비방을 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유발된 것이라기 보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오는 농담이라는 사실이 시청자로 하여금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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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드와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이 직원은, 여성에 대한 혐오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 과거 연인이었던 직원과 정기적으로 섹스를 나누자는 계약서를 적는 상상 이상의 캐릭터이다. 임신한 직원에게 폭언을 던지는 일에도 스스럼이 없으며, 그러한 자신이 남자답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이클과 드와이트는 현실에서의 혐오 문제를 자연스럽게 조명하는 데에 일조한다. 그들이 성별, 인종, 장애 여부를 가지고 농담을 던지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이 미드는 분명히 조롱하고 있다. 그들의 행동을 보며 직원들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는 장면, 합심하여 드와이트를 골탕먹이는 장면 등 많은 에피소드들이 이들을 풍자하고,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차별을 일삼는 캐릭터가 대놓고 '멍청한' 캐릭터가 되는 과정을 목도하며, 자신들의 일상에 숨어 있었던 차별과 혐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미드 오피스를 보며 감탄한 부분이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오락적이고 감동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005년에 시작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혐오에 대해 직설적이지 않은 듯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매우 세련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한국의 드라마가 생각나 한 편으로는 씁쓸해졌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팽배해 있다. 그 중에서도 여성 혐오가 가장 심각하다. 남자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여자주인공과, 그런 여자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 끌고 밀어 붙여 키스를 하는 남자주인공.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를 꾸준히 재생산하는 미디어.

  2010년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게이 커플이 등장하자 이른바 '어버이 연합' 등의 단체에서 난리가 났던 사실을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게이 커플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자식들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그들 비판의 핵심이었다. 그 커플이 드라마에서 찐득한 애정씬을 나눈 적도 없다. 남녀 커플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위의 연애 감정만을 드러냈을 뿐인데도, 세상은 시끄러워졌다. 

  혐오를 멈추자는 말은 결코 거창한 게 아니다. 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자는 말과 다름 없다. 그러나 이 거창하지 않은 것을, 미드에서는 더욱 즐거운 방식으로 확대하고 있는 데 비해 한드는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적이다. 드라마를 쓰는 모든 작가와 피디들이 '오피스'를 단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렇게 꾸준히 '혐오'를 재생산하는 일에 대해 곱씹어볼 시간 정도는 가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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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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