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記

#03
글 입력 2017.01.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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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그리다


 지난 번 '白記 #02 (http://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26887)' 에서는 주변을 그리는 것에 대해. 이번에는 '나' 자신을 그리는 이야기.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우선 무얼 그릴지를 정해야 한다. 주변을 그리는 일은 도처에 소재가 널려 있어 맘에 드는 장소를 보면서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두고 후에 그릴 수도 있다. 그래서 깊은 고민 없이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은지에 따라 적절한 장소만 생각해두면 된다. 비교적 고민도 덜 하고, 그릴 때 어려움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주변만 그리는 일을 매일 반복하면 당연히 지루함이 뒤따른다. 거기다 이야기를 담아 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보통 주변을 그리는 일은 그 장소에서 느껴지는 '온화함', '일상의 즐거움', '따스함' 정도를 담아 보여준다. 그 외의 감정들.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화나거나 무기력 등등. 그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선 다른 것보다 '나' 자신을 볼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타인의 감정을 관찰하고 그리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주체가 되었을 때 그 감정이 어떤 식으로 느껴지는지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기록하던 버릇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요즘도 감정이 용솟음 치는 때면 블로그에 따로 일기를 적어두는데. 곧 그것이 소재가 된다.

 감정들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느끼는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그려낸다. 왕왕, 매체에서 말하길. '우울증'이 현대의 감기라고 한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또 어느 정도는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게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그 와중에 염증을 느끼고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잘 지내다 갑자기 문득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혹은 얼굴책 같은 SNS 속 잘 사는 친구나 지인을 보며 '와 나는 이제까지 뭐했지?'. 이런저런 생각에 괜스레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 외에도 다양하게 우울을 찾아오게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 우울에 짧게 빠지고 곧 훌훌 털어내 힘을 낸다. 반면에 그런 일시적인 이유 외에 양육환경이나 성장배경이 축적되어 우울한 사람은 다르다. 말로는 쉽게 '과거' 는 과거라고 얘기하지만. 막상 당사자에겐 그것들이 쌓여 자신이 되고, 다 커서 가버리라고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그런 징그러운 무형의 감정들이다. 나 같은 경우엔 후자이다. 완벽하진 않아도 우울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고 떵떵 거릴 자신이 있다. 어릴 적 자라 온 집은 가정폭력이 당연시 되는 집이었다. 폭력은 되물림 되고, 뭐든 맞는 걸로 해결되는 식의 양육을 받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린 아이지만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생존 본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부모님이 이혼하고 각자의 삶을 찾아가며 자유를 되찾았지만. 20년 간 쌓인 과거의 나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내 이면에 달라붙어 공존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공통적으로 '성격이 좋다', '나이에 비해 말이 잘 통한다.', '붙임성이 좋다' 라는 칭찬을 건네준다. 다른 사람 눈에는 좋아보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좋게만 다가오진 않는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부모님에게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한 탓에, 학교에서라도 애정을 받고 싶어. 싹싹하게 굴고,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칭찬을 받기 위해 성격을 억지로 맞췄다. 그리고 집 안에서는 맞지 않기 위해 언제나 눈치를 보고 살다보니 그게 자연스럽게 '센스있는' 사람이라고 평하는 성격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울이라는 감정과 싸우고 있다. 더불어 정신과 병원에 다닌 지도 벌써 4년째가 되어 가지만 내 일생을 거쳐 만들어진 우울이라는 또 다른 나를 단기간에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주변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면서, 동시에 '나'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엔 만화로 기록을 하였다. 일러스트만 그리다보니 만화적 서사는 어색했지만, 아래의 병원 일기 만화를 올리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정말 만화를 보고서, 병원에 다녀 온 분의 감사하다는 말에 뿌듯함을 느끼며 동시에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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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일기 - 4P 씩 총 3편으로 나눠 연재했다.>

 

# 그러므로 나는 대체로


 처음엔 부단히, 웃거나 기쁨을 표출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우울한 감정이 반복되고 감정이 묻어난 그림이 늘어나면 이런 게 과연 사람들에게 좋게 비춰질까. 여러 시선들에 주눅이 들어 자책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정말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인 '우울'을 그대로 인정하고 나서야, 그게 내 그림의 특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 욕심만 밀어붙여서 고집을 부릴 순 없다. 그걸 제외하고, 내가 내 스스로를 인정해야. 그림도 자연스럽게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대체로 우울한 사람이고, 내 그림은 그걸 가장 잘 표현하고 전달한다. 나 뿐만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거나 창작 활동을 한다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색이 분명해질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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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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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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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HAYANG)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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