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시인 [문학]

글 입력 2016.11.2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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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뜻했었다.

고맙다.
네가 내가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 최영미, ‘옛날의 불꽃’



작년, 우연히 하나의 시를 읽게 되었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마음이었던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시의 매력은 읽을수록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라 하지만 때로는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더 끌릴 때가 있다.

본 작품의 저자는 최영미 시인이다. 서양 사학을 전공하였지만 1992년 창작과 비평을 시작으로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산문집 ‘시대의 우울’ 등을 연달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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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사진: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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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시인의 작품은 현실적이다. 시의 가장 본질적 특징은 ‘집약’이기 때문에 다양한 도구들과 상징들을 포함하게 되지만, 최영미 시인의 작품은 군더더기가 없고 직설적이다. 시에서만 볼 수 있는 생경한 단어들도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시가 ‘고백’에 가깝다면 그녀의 작품은 ‘고발’이 더욱 어울린다. 부정의 분위기로 내면을 그려내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오히려 차분하게 자신을 다독이는 느낌을 준다. 폭발하는 그리움을 그리기 보다 자신의 내면으로 수렴시키고 응축하여 더욱 밀도있는 느낌이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최영미, ‘선운사에서'



얼마 전 첫눈이 내렸다.
첫눈은 때로 설레고 때로는 아쉽다.
아름다운 광경에 가슴이 뛰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이 왔음에 허무함이 몰려온다.

시를 읽기 좋은 계절이다.
짧은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공새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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