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날의 사랑 그리고 연애 [문화전반]

글 입력 2016.09.0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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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근대와 전근대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 중 하나는 미신타파와 자유연애이다. 전근대적 시대에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고 미신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합리성'의 개념을 수용하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면서 미신과 같은 비이성적 존재들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집안끼리의 약속으로 혼인을 하는 풍습도 '자유연애'에 대한 의지와 함께 호감을 전제로 한 혼인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근대와 전근대를 구분하는 이러한 미신타파와 자유연애는 정해진 숙명에 대한 저항이며 '주체성'의 자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에 이르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혼인하게 되면서, 사랑과 연애는 어느 정도 일치하게 되었다. 이들 두 개념이 많은 부분에서 의미를 공유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종종 '나는 연애만 할거야'라는 말을 하거나 듣곤 한다. 이 말은 '사랑 없는 연애'를 하겠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결혼 없는 연애'를 하겠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결혼, 그리고 연애가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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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의 방식은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많겠지만, 사랑과 연관지어 생각해본다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사랑의 과정에서의 연애'와 '연애를 위한 사랑'이다. 전자의 경우 사랑이 핵심적인 요소이며 후자의 경우 연애가 핵심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우리가 낭만적 사랑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접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어려움이나 위기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극복하고,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경우이다. 이 경우 상대방에 대한 깊은 신뢰와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기반으로 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그 정도의 신뢰와 의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나 행동은 더욱 행복한 연애를 위한 첨가제 역할을 할 뿐이다. 이 관계에서는 연애를 한다는 '상황'이 연애의 '대상'이 누구인지보다 중요하다. 즉,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과 더욱 관련이 깊은 것이며 연애는 사랑하는 '상황'과 더욱 관련이 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두 경우는 사랑과 연애, 두 요소가 형성하는 관계 중 다소 극단적인 경우이다. 실제로  '사랑의 과정에서의 연애'와 '연애를 위한 사랑'을 명확하게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연애만 하겠다'던 사람이 순식간에 물불 안가리는 사랑에 빠져버릴 수 있는 것처럼,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연애가 어느 순간 연애를 위한 연애로 전락할 수 있는 것처럼 이것들은 명확한 구별이 어려울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이는 사랑과 연애가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성의 근간을 형성한 자유연애와 이로부터 비롯된 주체 의식은, 스스로 사랑할 대상을 결정할 수 있게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랑과 연애에 있어 스스로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늘날 사랑도 연애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물론 어려운 사회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청년들을 가리켜 '삼포세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오늘날 청년들은 취업난과 적은 월급,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타인까지 챙길 여유가 없기에 이러한 것들을 포기하게 된다. 또한 감정이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과 연애라는 행위를 회피하거나, 연애의 '상황'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혼자 살아가기도 어려운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삶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누구도 비난 당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성복 시인의 글귀가 생각난다.


"사랑이란 작은 것들에 대한 지향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큰 것일 수 있다."

(이성복 아포리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中)


[노혜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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