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워내야 행복해진다, 연극 모놀로그 아이

글 입력 2016.07.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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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대학로 연진 아트홀에서 연극 ‘모놀로그 아이’를 보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연극들은 여러 명의 주인공들이 나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진행시켜 갔다. 이와 달리, 모놀로그 아이는 한 명의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녀가 한 명 뿐인 주인공이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러한 특이한 형식 때문에 연극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다.


모놀로그-포스터.jpg

 
"여러분의 그것, '똥'은 안녕하신가요?"

‘똥’으로 시작하여 전반부를 ‘똥’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운다. ‘똥’을 계기로 하여 주인공 ‘민서’는 좋아하던 남자 ‘우영’과 연인이 된다. 극심한 변비에 시달리는 민서는 그녀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듯 보이는 우영과 우연히 계속 마주치게 되고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연극의 전반부는 그녀가 좋아하던 남자 우영과 어떤 계기로 가까워지고 교제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둘의 사랑은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가 된다. 민서와 우영은 여느 커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 사랑을 했고 점차 그들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영은 민서를 떠나게 되고 민서는 떠나는 그를 향해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를 떠나보낸 민서는 고통스러워하며 그녀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내가 믿는 것은 현실이고, 믿지 않는 것은 꿈이야"

연극에서 ‘우영’은 민서의 남자 친구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6살 때 부모님께 생일 선물로 받은 곰 인형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곰 인형을 선물 받은 6살 생일날,  그녀의 부모님은 화재 사고로 인해 그녀 곁을 떠난다. 민서는 이 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기고, 잠을 자면 누군가 죽는 꿈을 꾼다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녀는 남자친구였던 우영이 떠나간 후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자신을 괴롭히던 6살의 생일날을 회상한다. 그동안 그녀는 붉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기억을 믿어버리면 그 일이 현실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했기에 그 기억을 외면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는 그녀의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이 부분에서 ‘모놀로그’극이 절정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다.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버리고 부모님을 이제 그만 놓아주라는 마음의 소리와 그들을 정말로 떠나보내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무게감 사이에서 주인공은 내적 갈등에 휩싸인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할 때는 낮고 엄격한 목소리로, 감정적인 생각을 할 때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내적 긴장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이 때 켜지는 붉은 빛의 조명 역시 그녀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잘 반영한다. 긴 고민 끝 그녀는 그 날의 기억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부모님을 놓아드리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항상 가지고 다니던 곰 인형 ‘우영’도 다른 한 켠에 내려  놓는다. 그리고는 이제 잠을 청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과거와 사뭇 다른 그녀의 모습이다. 항상 마음 속 무겁게 지니고 있던 짐을 조금 내려놓고, 그녀는 학교 선배와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똥은 가장 솔직하다. 똥은 우리들의 소외된 과거이다.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 우리는 더 행복하다.”


‘우영’과의 연애에서 보였던 불안한 모습과 달리 그녀는 굉장히 행복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이는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똥’도 비워낼 때 행복해지듯, 우리의 마음도 사랑도 채우려고 안달 내며 불안해하기보다는 자신부터 돌아보고 비워낼 때 행복해질 수 있다. ‘민서’가 비워내야 할 ‘똥’은 그녀가 간직하고 있던 트라우마였다. ‘똥은 솔직하다. 똥은 소외된 우리의 과거이다’라는 대사에서 보듯, ‘똥’은 우리가 외면하려 하는 아주 솔직한 과거이다. 똥을 비워내야 마음이 편안해지듯 외면하고 싶은 과거,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피하기보다는 그것을 마주하고 비워내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


   배우의 연기력과 다양한 은유적인 표현들이 모놀로그 무대를 꽉 채웠던 것 같다. 굉장히 감성적이고 생각하게 하는 연극이었다. 다만 민서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것, 변비에 걸린 그녀에게 ‘똥’처럼 쉽게 비워지지 않았던 것, 그것이 ‘화재사고와 부모님의 죽음’이었던 것은 조금 극단적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적 설정 상 극단적인 사건이 그녀의 감정을 더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부분도 있을테지만, 전반부에서 변비와 똥을 언급하며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가던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심각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주제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에 굉장히 공감이 되었고, 무대를 꽉 채운 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모놀로그’로 구성된 무대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연극이었다.


상세페이지 800-화영,혜선,영주.jpg
 

[노혜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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