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포의 근원이 말해주는 것 - 컨저링2[문화전반]

글 입력 2016.07.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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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 영화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 ‘컨저링’은 단연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2013년 ‘컨저링’이 개봉했을 당시에는 보지 않고 군 생활을 하던 중 생활관에서 동기들과 같이 본 것이 2015년의 일이었다. 이번에 개봉한 ‘컨저링2’까지 보고 나서 공포영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으로서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
 ‘컨저링’의 주인공은 퇴마사 워렌부부이다. 워렌부부는 심령현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며 미국에서 유명세를 얻는다. 그들이 겪은 많은 사건들 중 영국의 일을 다룬 영화가 이번에 공개된 ‘컨저링2’였다. 자신이 본 환영으로 인해 당분간 사건을 쉬자는 부인 로레인 워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돕고자 하는 일념으로 그녀를 설득한 남편 에드 워렌에 의해 부부는 함께 영국으로 간다. 영국에는 당시 매스컴에까지 보도된 유명한 심령현상의 피해 가정이 있었다. 보도와는 다르게 부부는 집에서 영적인 기운을 감지하지 못하고, 사기극으로 일단락 한 채 그 집을 떠나려 한다. 기차에서 부부는 그 가정을 괴롭히는 악마의 존재를 깨닫고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 악마를 제압하는 데 성공해 가정을 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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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컨저링2 공식 포스터>


공포의 근원 - 미지(未知)

  ‘컨저링’은 1,2 모두 귀신이나 악마 같은 영적존재에 의한 사람들의 괴로움을 다룬다. 물건들이 날아다니고, 아무도 없는데 큰 소리가 나거나, 내 가족이 다른 사람이 된 듯 행동하는(빙의) 일련의 과정이 공포가 되어 관객들을 조른다. 대중성을 확보하는 많은 영화들은 대부분 장르적 특성이 잘 지켜져 있기에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다는 아니지만, 가끔씩 눈치 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나오겠구나.’, ‘곧 어떻게 되겠구나.’ 이런 예상을 다 하면서도 우리는 왜 영상을 보며 숨을 들이마시고, 소리를 지르고, 심장이 ‘쫄깃’해 지는 경험을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무섭게 만드는 걸까?
 ‘미지’와 ‘무지’는 다르다. ‘무지’는 알지 못하는 상태이고, ‘미지’는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미지’는 ‘무지’와는 다르게 알게 되는 상태를 예정하고 있다. 공포는 이 ‘미지’의 상태에서 비롯된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고, 그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 아예 알지 못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귀신이나 악마 같은 영적 존재, 좀비 같은 괴생명체에 의한 이상현상, 식인 상어와 같은 돌연변이 등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있을 것만 같은 것들에 대해 공포심을 느낀다. 분장이나, 컴퓨터 그래픽 등은 그런 공포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공포심의 근원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
 인간이 ‘미지’를 두려워하는 것은 왜일까? 있을 것만 같은데 지금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딘가에는 있을 것만 같은데 지금은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태곳적부터 그런 두려움에 맞서왔는지 모른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짐승, 어디서 떨어지는지 모르겠는 벼락, 그런 알지 못하는 수많은 위험과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에 새겨놓은 장치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아닐까? 감정적인 ‘자동 반사’의 일종이 공포가 아닐까?
 ‘컨저링’의 공포는 공간을 소재로 한다.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집이라는 공간을 소재로 해 공포심을 극대화했다. 한국에서 귀신이 많이 등장한다는 3대장소로는 병원, 학교, 군대가 꼽힌다. 공통점은 정기적으로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바뀐다는 것. 현재 그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이 모르는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일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컨저링의 공포는 ‘집’을 배경으로 한다. 내가 24시간을 머무는 살아가는 장소에 내가 모르는 기억이 잠들어 있다는 것에서 공포가 발생한다. 나의 공간이 미지의 공간으로 변화하는 순간 공포가 되는 것이다.


공포를 이겨낸다는 것

 공포가 미지로부터 비롯된다면 공포를 이겨내는 것은 그 미지를 타파하고 마침내 앎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라 얘기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보는 것은 상영시간 내내 심장을 조이던 공포가, 그 근원이 마침내는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악마가 들린 소녀를 워렌 부부가 마침내는 구해낼 것이라는 희망, 마침내 그 소녀가 자신을 믿어줘서 고맙다며 또래의 소녀들처럼 돌아와 ‘고맙다’고 말하는 그 순간이 영화에 담겨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성취되기 때문이다. 미지의 상태의 공포는 그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방법을 찾아 나올 수 있다. ‘컨저링2’에서 퇴마의 열쇠가 악마의 이름을 ‘아는’ 것이었듯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두려움과 마주한다. 아기는 엄마가 멀어지는 순간을 두려워하고, 걷기위해 수없이 경험하는 넘어짐을 두려워한다. 커오면서는 성적처럼 나를 평가하는 많은 숫자들을 무서워하고, 내 사회적 위치를 매기는 월급액수를 겁내하며 그것을 잡기위해 노력한다. 결국 두려움을 해결하는 각자의 방식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 맞서거나 피하거나 하는 방식들을 학습하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살아간다. ‘컨저링2’를 보고 내가 ‘이제 공포영화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하고 생각했듯이.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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