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유없이 찾아온 두통 영화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5.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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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jpg





영화 캐롤을 보고 감독의 초기작을 찾아봤다. 지금에 비해 정제되지 않은 느낌의 메시지 전달 방식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영화 <세이프>를 소개한다. (여기서도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캐롤이다.) 세이프는 이유 없는 두통, 호흡곤란에 시달리는 미국 50년대 중산층 여성의 이야기이다. 캐롤의 두통은 어느 날 시작되었으며, 이는 점점 더 잦아진다. 보통 우리는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 현대 의학이라는 외부의 힘을 빌린다. 하지만 이 의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되면, 그것은 설명하지 못한다는 고통까지 더해준다.





영화에서 캐롤은 자신의 통증을 설명하기 위해 결국 대체의학의 힘을 빌리고,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랜우드라는 격리된 장소로 들어가기에 이른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 두통이 화학 물질과 오염으로부터 기인했다고 믿으며 청정 지역인 랜우드에서 자신들의 고통이 치유된다고 믿는다.





첫 장면에서 캐롤은 남편과 감정 없는 성관계를 맺는다. 남편의 등을 아이 달래듯이 쓰다듬는 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없고 의무만 남은 관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소파의 색이 잘못 배달되고, 라디오에서는 의미 없는 말을 떠들어대고, 운전도 마음대로 안되고 사소하지만 번거로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그리고 어느날 운전을 하다 멈출수 없는 기침에 시달리고 그렇게 고통이 시작된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건강이 오히려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누구도 캐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울면서 남편에게 "where am i?"라고 묻는 그녀는 중심을 잃고 주변의 수많은 소리, 냄새, 말들에 휩쓸려서 살아가는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 영화에는 몸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이 충돌하고 있다. 흰색 가운을 입은 현대 의학은 어떤 근거로 타인의 몸을 설명하고 처방할 권위와 특권을 누리는 것인가? 이를 대체하는 대체의학에 대한 담론들은 또 어떤 몸을 설명하는 방식을 찾는 것인가? 영화는 우리가 몸, 건강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이것은 우리의 몸을 더 잘 설명해주는 동시에 그 설명이 우리의 몸을 정의하고, 통제하게 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정제되지 않은 연출은 조금씩 난해하게 흘러가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어 볼만하다. 영화를 환경 오염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고, 의학과 전문가 지식의 권위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도 있고, 몸에 대한 관점들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중심, 주체가 되어서 살아가지 못하는 중산층 가정주부 여성의 공허한 삶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예술 작품은 언제나 훌륭하다.






[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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