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향적인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수잔 케인 < Quiet >[문화전반]

글 입력 2016.03.3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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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학과 1년 넘게 다니면서 성격 개조 많이 됐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곧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학과에는 그 무시무시한 조별과제와 발표 수업이 많다.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하지만 난 대학교에 입학한 뒤 1년 동안 단 한 번도 질문이나 발표를 해본 적이 없었다. 사회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발표를 피해 다녔고, 질문은 삼켰다. 다 같이 모인 술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역시 내게는 벅찬 일이었다. 가끔은 그런 일이 즐거운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가 나만의 은신처에 오롯이 홀로 숨어있고 싶었다. 


LIVING-ALONE-1024x512.jpg▲ - listovative 출처
 

 그렇다. 나는 흔히 말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단체보다는 일대일로 깊은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일주일에 4일 동안 사람을 만나면 3일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나 토론을 하는 것은 내게 거의 최악의 상황이다. 차라리 혼자 몇 장씩이라도 글로 풀어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나 같은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날 하루 내내 성격을 외향적으로 개조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었다. 

 

 

noname01.jpg▲ -igem 출처
 

 어째서 외향성이 아니라 내향성이 더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선시대에 한석봉은 매일같이 글공부를 했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 시대엔 집에서 밤낮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입신양명의 길이었으며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보다는 묵묵히 자리를 지킬 때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그렇지 않다.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많은 이들 앞에서 발표하는데 능숙해야한다. 실질적인 내공을 쌓는 것만큼이나 활발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를 즐기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익숙한 외향적인 사람이 더 능력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까지 읽고 여러분은 자신이 외향적이라는 생각에 승리감을 느꼈는가? 혹은 나와 같은 경우라서 패배감을 느꼈는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두 가지 감정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8925546876_f.jpg▲ -네이버 출처
 

 타고난 나의 성격을 어쩌지 못하고 우울감에 젖어있던 나를 위로해주었던 것은 의 저자 수잔 케인이었다. 성격과 관련해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생각 중 하나는 내가 사교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향적인 사람들은 보통 에너지를 빼앗긴다고 느끼기 때문에 파티나 회식 자리같이 시끌벅적한 상황에서 잡담을 즐기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수잔 케인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교적이라고 주장한다. 일대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거나 상대방의 고민을 들어줄 때 그 누구보다도 집중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와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내향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수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 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을 어려워할지도 모르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잔 케인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비교적 보상의 유혹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외부의 자극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어떠한 보상이 있을 때 그 목표를 향해서 거침없이 달려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1등을 하기 위해, 혹은 더 많은 금액의 돈을 벌기 위해 움직여야하는 외적 동기가 존재하거나 경쟁적인 상황에서는 외향성이 내향성보다 도움이 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서 즉각적으로 외부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연구 과제는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다루어야할 수도 있고 소설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인가는 작가 본인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이런 경우에는 외적 동기보다는 내적 동기가 훨씬 중요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몰두하고 외부로부터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내향적인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n-13-large570.jpg▲ -허밍턴포스트 출처

 
 내향적인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지 외향성이 그러하듯 내향성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질문과 발표, 토론 등에 능하고 자기 어필을 잘하며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사람만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조용하고 소심해 보이는 그들이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결과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빌 게이츠, 아인슈타인, 간디, 그리고 루스벨트 대통령 등 내향적이면서도 성공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처음으로 수잔 케인이 말하는 내향성을 접했던 것은 책이 아니라 이미 4년 전에 나온 TED 영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와서 내향성과 수잔 케인의 < quiet > 를 이야기하는 것은 신선하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사회는 여전히 수잔 케인이 말했듯 ‘외향성 이상’에 젖어있다. 교수님으로부터 ‘성격 개조’라는 말을 들었던 일이  불과 8개월 전이니까 말이다. 이런 사회에서 나를 비롯한 내향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겉으로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이려 애써본 적이 있거나, 애쓰고 있거나, 앞으로 애쓸지도 모른다. 소외당할까봐 술자리에 마지못해 나가면서, 글을 쓰는 취미를 숨기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것이 고쳐야 하는 병이나 숨겨야만 하는 불쾌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내향적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과 진심어린 위로를 나누기 위해. 



반채은.jpg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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