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기, 소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문학]

‘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면, 그래도 절... 사랑해 줄 건가요'
글 입력 2016.02.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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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기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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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도 그 중 하나다. 인간은, 특히 여자는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그가 가진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해왔고, 그러한 투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세기의 권력자 옆엔 세기의 미녀가 있었듯이 아름다움은 곧 ‘절대 권력’과도 같았다. 

21세기, 이제 외모도 하나의 스펙으로 간주되는 시대에 왔다. 외모가 자본이고 권력이 되는 이런 현실에서 아름다움과는 아주 거리가 먼 외모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박민규 작가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긴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아내의 한 마디 질문 때문이었다.


‘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면, 
그래도 절... 사랑해 줄 건가요?‘


갑작스런 질문이면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끝내 아무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길고 긴 연서(戀書)를 쓰는 마음으로 저는 이 소설을 썼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최초의 소설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소설입니다.’ 

-작가의 말中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매우 비현실적인 소설이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계기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경위는 없다. 그의 어머니가 그녀와 같이 아주 못생긴 여자였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마저도 그가 그녀에게 동정이나 연민 따위가 아닌 ‘사랑’을 느끼게 하게 되는 충분한 이유를 설명해주진 못한다.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가’보다 ‘어떻게 사랑이 두 사람의 삶을 바꿔 놓았는지’다. 



그녀의 이야기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을 수 없었고, 존재 자체만으로 죄인 취급 받았다. 이름 대신 못난이, 괴물로 불리며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얼굴을 단두대 위에서 잘라버리는 것.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잘린 얼굴이 사람들의 발길에 치이는 것을 보면서, 목이 잘린 몸뚱이는 우두커니 서서 아픔도 수치도 잊고 살았다. 사실 그것만이 고통을 덜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던 그녀에게 그가 다가왔다. 저랑 친구하지 않을래요? 또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게 아닐까, 의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그는 진심(眞心)이었다.

 
‘저랑 같이 있는게
부끄럽지 않았나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아마도, 하고 역시나 손을 통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분으로 나는 속삭였었다. 자기 자신을 납득하라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미안해. 무어라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어떤 말도 생각이 안 나. … 대신 그 대답은 아주 먼 훗날에 들려줄게. 천천히, 아주 조금씩 그 대답을 만들어가고 싶어. 그 외의 다른 방법을 나로선 찾지 못하겠어. 이건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납득의 문제니까... 그러니까 행동으로밖에는 대답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




그의 이야기

이상한 가족사진이었다. 누가 봐도 미남인 아버지와 박색의 어머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버지를 쏙 빼닮은 자신. 아버지라는 인간은, 무명배우로 철없이 자신의 꿈만 좇다가 우연한 기회로 스타덤에 오르지만 결국 처자식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야 마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싸지르고 간 똥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집은 가난했고,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시시하고 무의미했다. 그러던 중 그녀가 눈에 띄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그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겐 없는 어떤 것이 그녀에게 있었다. 
그에게 그녀는 삶을 삶답게 살아갈 이유였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

왜 사냐고 묻거든,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지요. 그렇다.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행복의 잣대는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고 네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데에 있었다. 돌아보면 모두가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로 이 정도의 대학, 이 정도의 스펙, 이 정도의 몸매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세상엔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욕망하는 것일까? 왜 너 나할 것 없이 코를 높이고 뻑뻑살을 먹는 것일까? 소설 속 인물간의 대화는 끊임없이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자본주의 속 인간의 욕망 구조를 잘 보여준다. 



‘그게 인간이야.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미모를 준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1%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만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고 세상은 말하지만 노력한다고 모두가 1%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99%에 속한 인생들은 1%의 그림자를 따라다니다 사라지고 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계속 이렇게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진짜 나를 위해 살고 있는 걸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론 삶을 제대로 살아간다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 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나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당신이,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작가의 말 中


성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의 삶을 송두리 바꿀만한, 정말 의미 있는 사랑을 해본 사람이 아닐까. 
다시 그와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작가는 결코 내세울 것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고 심지어 스스로도 자신을 버린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각자가 가진 상처는 아물고 그들의 존재는 세상의 변두리에서 중심이 되었다. 본인들의 인생임에도 엑스트라처럼 살고있던 두 사람이 비로소 주인공이 된 것이다. 자신 말고는 다른 어떤 조건도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 그 시간, 농도 짙은 그 시간은 온전히 그와 그녀의 시간이 되었다.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부러워하지 않았다. 

이 사랑이란 일순 남녀의 사랑만을 지칭하진 않을 것이다. 친구나 가족일수도 있고, 더 나아가는 도움이 필요한 제3자일 수도 있다. 잃어버렸던 나의 삶을 되찾고 온전히 살아가는 비결,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는 길, 그것은 바로 오늘 당신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윤정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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