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모두의 불편한 진실, 해피투게더

글 입력 2015.12.2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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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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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1980년대 부산... 
일곱 살 종선과 누나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광파출소에 맡겨진다.
육교에서 구걸하던 아무개 씨는 어느날 경찰에 끌려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된다.

포항제철에 근무하던 서상렬 씨는 해운대 휴가 중
부산역 대합실에서 깜박 잠들었다 철도공안원 신고로 잡혀간다.
원양어선을 타던 김민효 씨는 모처럼 육지의 밤을 술로 달래다 누군가에게 끌려 간다. 
부산 연산동에 살던 이명렬 씨는 마누라를 때린 혐의로 경찰에 연행된다. 
취직차 부산에 왔던 한아무개 씨는 포장마차에서 술에 취해 졸다가 누군가의 차에 태워진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부산시 북구 주례 2동 산 18번지, 형제복지원!
이들을 가둔 것은 1975년 유신시대에 발효된 내무부 훈령 410조. 
1975년과 1986년 사이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551명.

그들은 왜 이곳에 갇혔으며, 도대체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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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해피투게더>는 1980년대 당시 일어났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바탕으로 높으신 분들이 항상 외쳐대는 ‘해피투게더’가 과연 누구를 위한 해피투게더였는지, 진정한 ‘해피투게더’를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해피투게더>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신없이 엉킨다. 피해자였던 사람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는 또다른 피해자였음이 밝혀진다. 자신이 왜 잡혀온 줄 모르고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던 사람은 다음 장면에서는 다른 수감자(이를 대신할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를 윽박지르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려던 사람은 잔혹한 폭력에 굴복하고 고장난 기계처럼 원장을 찬양한다.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사람이 있다면 이는 원장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있다. 주변의 평판도 칭찬 일색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인격자이고, 자신의 돈까지 긁어모아 갈데없는 인간들을 거둬 먹이고 직업까지 마련해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궤변은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연인과 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 거리의 어느 지저분하고 불쾌한 노숙자가 연인을 훑어본다면, 그것을 달가워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디로 가버렸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까? 

하지만 연극은 확신에 찬 그의 주장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를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 또한 보여준다. 끊임없는 폭력, 학대, 죽어도 죽었노라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은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자신을 때리라 말하는 원장에게 도리어 겁을 먹고, 성모 마리아처럼 분한 원장 사모가 천진난만하게 던져주는 빵을 주워먹는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길들여진 개를 연상시킨다. 거지, 부랑인, 노숙자들을 모아 바르게 노동하는 일꾼으로 갱생시킨다는 원대한 형제복지원이 실은 인간을 짐승 이하로 떨어뜨리는 수용소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해피투게더>의 무대는 의자 몇개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다. 하지만 독특한 연출이 연극을 더욱 풍성하게 꾸며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대 한켠의 두 명의 여인들이다. 상복과 같은 검은 옷을 입은 배우들은 무대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목소리만으로 등장인물, 나레이터, 배경음악 등 다양한 역할을 도맡아 연기한다.
또한 소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노래와 몸짓이 쉴새없이 무대를 채운다. 성가, 찬송가, 군가, 대중가요, 캠페인송, 팝송 등의 온갖 노래들과 함께 독백, 재현, 회상, 관객과의 대화 등 다양한 기법들이 등장한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 '그래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는 언제나 공정하려 애쓰며 이런 말들을 하고는 한다. 물론 이런 태도는 꼭 필요하다. 어떤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두 쪽의 말을 모두 들어보아야 한다. <해피투게더>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우리가 이 과정에서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원장이 처별을 면제받고 여전히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누군가가 원장의 논리에 동조했기에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었다. 우리도 결국 불편한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는 않는지, 생각이 깊어지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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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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