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라 금관(4) [전통예술]

글 입력 2015.03.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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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금관(4)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금관의 기본 형식
3. 금관의 모티프
4. 금관의 상징성
5. ‘신라 금관’의 형식
6. 금관
7. 나가는 말


6. 금관(상대서열 순으로 나열)

(1) 교동 고분 금관 5세기, 높이 12.8cm,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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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금관은 정상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것이 아니라 도굴된 것을 압수한 것이다. 이 금관은 다른 고분에서 출토된 전형적인 신라 금관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3개의 입식은 모두 1단식 자연형수지이다. 이는 전형적인 신라 금관에서 보이는 ‘出’자형의 솟은장식으로 변화되기 이전 단계의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이 금관에는 전형적인 신라 금관에 통상적으로 보이는 2개의 사슴뿔 모양 장식도 없으며 관태 표면에도 점선무늬 등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금관의 수지는 줄기를 중심으로 대칭형으로 생겼고 줄기의 꼭대기는 보주형이다. 입식과 관테에는 수엽이 달려 있는데, 수엽의 모양은 원형과 심엽형이 섞여 있다. 곡옥이나 수식이 없는 걸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은 나이가 어리고 사회적 신분이 높지 않은 인물로 추정된다.


(2) 황남대총 북분 금관 5세기, 높이 27.3cm, 국보 제191호,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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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은 표형분에 속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분이다. 남분과 북분으로 구분되는데, 발굴 조사 당시 북분에서만 금관이 발견되어 남분의 무덤 주인공의 신분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북분에서 발견된 허리띠의 끝장식에 ‘부인대’라는 명문이 있는 점으로 보아 북쪽 무덤의 주인공은 여자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남편의 사회적 신분보다 부인의 신분이 높았을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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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움장식 정면에 3단 직각수지형 입식이 3개있고, 뒷면에는 녹각형 입식이 2개 있다. 두 귀의 앞쪽에 6개의 드리개가 드리워져 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곡옥과 수엽이 달려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금관은 현재까지의 出자모양의 세움 장식의 금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관테에는 위아래의 가장자리에 2줄의 연속점무늬와 물결무늬를 한 줄씩 표현하고 그 가운데에 곱은 옥을 1개씩 매달았다.


(3) 금관총 금관 5세기, 높이 27.5cm, 국보 제98호,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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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금관이다. 관테의 직경이 19cm로 성인용이며 직각 수지형 입식이 3개, 녹각형 입식이 2개 있다. 입식의 꼭대기는 보주형 장식으로 마감하였다. 입식의 가지는 3단으로 황남대총 북분 및 서봉총 금관과 같다. 관테에는 위아래 가장자리에 송곳과 같은 뾰족한 도구로 찍어내어 2줄을 줄무늬와 1줄의 물결무늬를 새겨 넣었다. 관테의 가운데는 줄을 지어 둥근 볼록장식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그 가운데에 곱은 옥과 달개를 매달았다.


(4) 서봉총 금관 5세기, 높이 30.7cm, 보물 339호,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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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총은 발굴 당시 스웨덴(서전 瑞典) 왕자가 참관한 것을 기념하여 서(瑞)자를 따고, 출토된 금제 모에 새가 앉아 있다고 해서 봉(鳳)자를 붙여 서봉총이라고 명명되었다. 서봉총 금관은 3단 직각수지형 입식이 3개 있으며, 뒷면에도 녹각형 입식이 2개 있다. 안쪽에 너비 약 1cm의 길쭉하고 얇은 금판 2개를 십자 모양으로 교차시켜 모자 형태의 내관을 만들고 그 교차점, 다시 말해 내관의 꼭대기에 얹은 나뭇가지 세 가닥의 끝에 봉황으로 생각되는 상서로운 새 모양 장식 세 마리를 얹어 장식한 점이 특이하다. 경주에서 출토된 금관들, 즉 신라 왕 또는 왕의 직계 친족의 금관들 중에 새가 장식되어 있는 것은 서봉총 금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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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테의 위아래 가장자리에는 송곳과 같은 뾰족한 도구로 찍어낸 연속되는 점무늬와 물결무늬가 있는데, 이 무늬는 금관총 금관과 동일하다. 그러나 둥근 볼록장식이 시기에 따라 차츰 풍부해지는 양상을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볼록장식이 2줄로 된 이 금관은 1줄로 장식된 황남대총 북쪽무덤이나 금관총의 금관보다는 늦고, 3줄로 장식된 천마총 금관보다는 이른 시기의 금관 모습으로 보여진다.


(5) 금령총 금관 6세기, 높이 27cm, 보물 338호,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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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의 지름이 16.5cm에 불과하여 무덤에 묻힌 주인공이 유소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앞면에 4단 직각수지형 입식이 3개, 뒷면에 녹각형 입식이 2개 있으며, 양쪽 귀의 앞쪽으로 수식 2개를 늘어뜨렸다. 원형 수엽이 59개 달려 있으나 곡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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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테에는 위아래 가장자리를 따라가면서 2줄의 연속점무늬와 둥근 볼록장식이 베풀어져 있다. 세움장식의 가장자리에도 2줄의 연속점무늬가 베풀어져 있고, 둥근 볼록장식과 달개로 장식되어 있다. 금령총 금관 역시 출토 당시에는 세움장식의 윗부분이 가운데로 모여 있어 고깔과 같은 모습이었으며, 피장자이 턱 부근까지 관테가 내려와 있었다. 이 금관은 천마총 금관과 더불어 후대 금관 양식으로 보여진다.


(6) 천마총 금관 6세기, 높이 27cm, 보물 338호,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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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 금관의 정면에는 4단식 직각수지형 입식이 3개 있고, 뒷면에는 녹각형 입식이 2개 있다. 귀 앞쪽으로 2개의 수식이 늘어져 있고, 전면에 걸쳐 곱은옥과 달개가 가득 달려 있어 화려함을 극치를 이룬다. 또한, 입식의 꼭대기는 보주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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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테에는 위아래 가장자리에 2줄씩의 연속점무늬와 물결무늬가 베풀어져 있는데, 물결무늬 사이사이에 둥근무늬를 찍어 전체적인 문양의 조화를 이루었다. 작은 가지의 좌우가 90도에 가깝게 각이 지며, 세움장식의 가장자리에도 2줄의 연속점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7. 나가는 말

신라에서는 왕들의 칭호가 마립간이었을 시기에 금관이 사용되었다. 마립간시대가 끝난 후, 대를 이은 법흥왕은 칭호를 왕으로 바꾸었다. 이는 보다 강력해진 왕권의 등장을 의미한다. 신라는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지방관을 파견하면서 신라 전 지역의 왕의 직접 통치권에 두었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에 따라 더 이상 금관과 같은 위세품, 즉 정치적 · 종교적 상징물이 필요없게 되었다.

또한,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함에 따라 알타이풍의 장묘 제도인 적석묘와 금제 유물의 매장을 금지하는 데 앞장섰을 것이다. 이제 황금으로 상징되던 화려한 금속공예품은 고분 부장품에서 황룡사 목탑터 진단구나 감은사 석탑, 송림사 전탑의 사리장엄구 등과 같은 불교 공양품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신라 금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문헌>

김병모, 『금관의 비밀』, (재)고구려문화재연구원, 2012.

이영훈 · 신광섭, 『고분미술』2, 솔, 2005.

이한상, 『황금의 나라 신라』, 김영사, 2004.

정족목, 『역사스페셜』2, 효형출판, 2001.

[최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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