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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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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말부터 삼월 이일까지 이박 삼일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늘 정해져 있는 편이다. 여행하면 바다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정도로 해안가를 좋아한다. 사람들 틈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조용한 풍경 안에 들어가 있는 여행을 택했다. 무엇보다 고성은 처음이었다. 강릉, 속초, 원주 강원도는 살면서 발이 닳도록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 있다니. 사실은 숙소를 찾다 보니 고성 쪽으로 가게 된 것인데, 속초 같은 관광지는 호텔이나 풀빌라가 많았고 공휴일과 대체휴일이 끼어있어 예약 마감이 됐거나 가격대가 비쌌다. 무엇보다 내가 묵고 싶은 곳은 바다 뷰 숙소였다.

 

동쪽의 끝, 속초에서는 북쪽으로 더 가야 볼 수 있는 바다, 고성. 차를 타고 고성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속초에 갈 때는 숙소 근처에서 차가 많이 밀렸다. 고성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동해에서도 유난히 조용한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여행 가기 며칠 전부터 아야진 송지호 해변, DMZ, 백섬해상전망대 등 갈만한 곳들을 서칭했다. 도착 후 짐을 풀고 숙소 근처를 거닐었다.

 

이번 여행은 관광지를 찾아다니기보다 바다를 보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바닷바람 때문에 살짝 쌀쌀했는데 마음은 뻥 뚫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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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있으면서 통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한참 바라봤다. 하지만 여행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도착한 당일 저녁부터 비가 내렸다. 바다를 따라 산책을 하고 모래 위에 글씨를 쓰려던 계획은 그대로 접어야 했다. 다음날에는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하루 종일 오는 눈비 덕분에 여행 계획은 더 좁아졌다.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 아야진 해변, 송지호 해변 같은 곳을 둘러보려 했건만 가보지 못했다. 길게 산책을 하거나 해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할 계획이었지만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날씨는 좀처럼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여행의 대부분은 숙소 주변을 잠깐 걷거나 창밖의 바다를 보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여행은 생각보다 심심했다. 날씨도 따라주지 않았고, 기대했던 만큼 바다를 가까이에서 즐기지도 못했다. 여행지에서는 무언가를 보고, 먹고, 즐기는 게 남는 건데 요건들을 다 충족시키지는 못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었다. 비가 내리는 바다, 눈이 흩날리는 해변, 바람세기에 따라 움직이는 밀물 썰물의 모습이 그것이다. 관광지를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대신 조용한 시간을 오래 보게 된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는 게 진짜 여행 아니겠는가. 열쇠로 문을 여는 오래된 펜션, 엘리베이터도 없어 짐을 들고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야 했다. 작은 불편함들이 오히려 여행의 시간을 선명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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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숙소였는데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와서 원 없이 씻었다. 아랫목은 어찌나 따뜻한지. 손발이 차가운 나는 바닥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첫째 날 밤에는 벽간 소음이 꽤 크게 느껴졌다. 오래된 펜션이라 방음이 안돼서인지 옆방에서 말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그런데 둘째 날 밤, 창문을 조금 열어두자 상황이 달라졌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면서 다른 소리들을 자연스럽게 묻었다. 사람의 소음 대신 파도의 울림이 깊게 스며들었다. 자연이 들려주는 ASMR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비가 굵게 내리다 잦아드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근처 식당으로 가 장칼국수와 감자 전을 시켜 먹었다. 비가 오는 날씨가 아쉽기도 했지만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었다. 잔잔히 내리는 빗소리와 흐릿한 바다 풍경이 어우러지며 여행에 묘한 운치를 더했다.

 

이번 고성 여행은 기대했던 여행과 달랐다. 많은 곳을 둘러보지도 못했고, 특별한 일정도 없었다. 하지만 때로는 계획이 어긋난 여행이 천천히 흘러가기도 한다. 아마 봄이나 여름쯤 고성을 다시 찾게 된다면 가보지 못했던 맑은 날씨 속에서 해변과 공원을 원 없이 걸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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