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고 무한한 것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므로 사랑의 시작은 더욱 덧없으며 세상사를 어우르는 특별한 감정 또한 무의미한 것일까. 누군가는 이를 강하게 수긍할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말 걸 그랬어, 시작조차 하지 말걸.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는 것,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긴다는 것 이는 어쩌면 삶에 나을 수 없는 상처를 짊어지고 가게 하는 일종의 유혹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매번 애정이라는 유혹에 완패하고 만다. 강하게 이끌리면서도, 아물어지는 것은 더욱 더디다. 가슴속 크게 비어 있는 구멍을 가득 채우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드는 과정이며 우리는 암묵적으로 삶의 끝에 이르렀을 때조차 이를 다 채우지 못함을 더할 나위 없이 명확히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또 누군가를, 어떤 무언가를 사랑하고 지키고 또 그로 인해 힘겹게 상처 입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를 반복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것에 애정과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며,
살인 청부업자 조각,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일명 ‘방역업’이라 불리는 살인 청부업을 비밀리에 수행하고 있으며 그녀에게 임무 실패란 죽음 즉, 불명예스러운 수치와도 같다. 조금이라도 수틀릴 일 없이 완벽하게 성공해야만 하는 청부업은 타인에게 향하는 감정 또한 큰 사치임과 동시에 그녀를 개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맹독과도 같았다.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 단호한 목소리가 그녀의 뇌를 뚫고 아우성친다. 자신의 감정은 진작 메말랐고, 마음은 텅텅 비어 있어야 한다고 매 순간 자기 최면을 걸어온 그녀가 점차 발걸음을 돌린다.
누군가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어서, 누군가의 대답과 동시에 그의 표정에서 피어오르는 강렬한 불빛을 머금은 미소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분명히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사람으로 인해 무너지고 사람으로 인해 살아간다. 조각은 그 말을 언뜻 이해하기 시작했다.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쳐 데려오게 된 그녀의 강아지 무용, 갈 곳 없는 무용의 처지를 고려하여 그저 자신의 곁에서 단조로운 하루를 이어가며 삶과 죽음이라는 순환 속 무용을 향한 미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무용과의 급작스러운 이별에 그녀의 가슴 한편이 사무친다.
어른이 될수록,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실감할수록 누군가와 접촉하고 끊어진 실을 다시 잇도록 노력하는 것은 고난이 가득할지도 모른다. 한 대상에게 애정을 품는다는 것은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 볼 수 없었던 것도 이제는 충분히 볼 수 있게 되고 상대와 점차 닮아가게 되는 것, 나에게 기쁨이란, 슬픔이란, 분노란, 벅차오름이란 무엇인지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 어쩌면 그 점이 충분할지도 모른다. 상실이란 또 발걸음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잃는다는 것이 소중한 것을 완전히 놓쳐버리는 것이 아니니까, 언제 어디서든,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은 이를 반복하게 만들고 사람을 아름답게 성장하게 한다.
한순간 빛을 내며 사라지는 것
한 쪽 팔을 잃게 된 조각은 과거 입구에서 줄곧 망설이곤 했던 네일 숍을 방문한다. 기세등등한 신입 아티스트에게 시술받게 된 조각, 신입이었던 그녀는 조각의 시술을 마친 뒤 급작스럽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조각의 한 쪽 팔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기본 가격에서 절반의 값을 지급하도록 허용해 준 것이다. 자신의 시술 방식만을 고집하곤 했던 풋내기였지만, 숍 원장은 그녀의 ‘인간애’에 경애하며 조금은 버겁고 거부하고 싶었던 그녀의 행동을 사랑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며 조각의 손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손톱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며 석연치 않은 듯 걸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각은 그녀의 손톱이 마음에 든다.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작품이 마음에 든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라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속이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은 얼마나 추종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인가, 사랑을 키우는 것은 일평생의 고민거리이자 무거운 과업과도 같을 텐데 사랑이 많은 사람은 정녕 가시 돋친 말로 온몸과 마음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그럼에도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타인을 향한 냉소와 혐오로 자신을 무장하고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가볍고 예사로운 일임이 분명하다.
세계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과거 철학자들조차 쉽게 찾아낼 수 없었던 삶의 이유를 찾으려 견식을 쫓는 사람이 많다. 사랑, 그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