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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자본가-노동자의 이분법은 이해하기 쉽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은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잘 와닿지 않는다. 자본가보다는 동료 월급쟁이인 부장님이 나를 더 착취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도 누군가를 착취한다. 내가 나를 착취하는지도 모른다. 연극 <번아웃에 관한 농담>은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노동 환경을 유쾌하게, 또 슬프게 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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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가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니었다


 

작중 배경은 가상의 회사, ‘플랫폼 몬스터’라는 곳이다. ‘플몬’은 프리랜서들과 고객을 연결해 주는 온라인 플랫폼이기도 하면서, 할 일은 많은데, 충원은 없고, 사람을 갈아넣고 있는 덕분에 굴러가는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우리 스따뜨업이잖아!’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대표는, 투자를 받으려고 전전긍긍하며 직원들에게 열정을 강요한다. 그나마 이사는 불만을 들어주는 듯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낮은 임금을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으로 만회하려 하는 인턴과, 언제 퇴근한 건지 모르겠는 꾀죄죄한 개발자. 와중에 직원 한 명은 잠수를 탔다. 이 막장스러운 상황에, 온갖 업무는 ‘유진’에게로 돌아온다. 손이 열 개, 백 개라도 모자랄 지경의 업무량, 유진은 한탄한다. ‘천수관음이 되어 버릴 것 같아!’

 

한편, ‘플몬’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제이미의 이야기도 있다. 그녀는 후려치기에 가까운 낮은 임금을 감내하면서까지 높은 평점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던 중 아무런 근거 없는 별점 테러를 당하고, 악성 리뷰로 평점이 추락하는 일을 겪는다. 프리랜서를 보호하지 않는 플몬의 무책임한 운영 정책에 분노한 제이미는 결국 본사에 항의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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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에 관한 농담>은, 제목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났듯, 코미디이다. 코미디의 기본은 과장이므로, 이 작품도 현실을 과장한다. 작품 속 ‘플몬’은 현실 속 회사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더 막장스럽고, 극단적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일도 일어난다. 관객들은 그렇게 희화화된 노동 착취의 현장을 보면서 웃는다. ‘이들의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농담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탄식을 내뱉는다. 제이미에게서, 유진에게서, 인턴과 이사와 개발자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허무맹랑하고 웃기니 일단은 웃는다, 그런데 웃다가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니다. 웃을 일도 아니다. 마냥 웃을 수 없는 농담, 그렇다면 이들이 던지는 질문도, 과연 농담일까?

 

 

 

자유 시장, 자유 경쟁 – 정말 자유로운가?


 

우리 사회는 갈수록 반짝거리고 멀끔해진다. 노동 착취 역시 반짝거리고 멀끔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 착취는 플랫폼 노동, 유연근무제, N잡러 같은 말로 바뀌어, 장시간 노동이 개인의 선택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착취하게 되고, 쉽게 ‘번아웃’을 맞이한다.

 

프리랜서 제이미는 플랫폼이 자신을 정당하게 보호해 주길 원한다. 그러나 업무에 지친 유진에게는 그런 제이미의 항의 전화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대표는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사 역시 사무실 분위기를 풀어 놓으려고 중간에서 최선을 다한다. 다른 직원들 역시 먹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중에서 이해하지 못할 욕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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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이 서로를 괴롭게 하는 결과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자유 시장, 자유 경쟁’이라는 반짝반짝한 단어의 허점을 깨닫는다. 모두가 시스템의 일부이면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 있는 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착취는 옆으로 번지고, 아래로 전가된다. 구조를 직접 바꿀 수 없는 개인들은 서로를 향해 분노를 돌린다. 자유로운 경쟁은 연대 대신 공격을 선택하게 만든다. 자유 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구조적 폭력은 보이지 않게 되고, 남는 것은 서로를 소모시키다 ‘번아웃’을 맞이한 개인들뿐이다.

 

<번아웃에 관한 농담>은 번아웃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의심하지 않았던 말들을 다시 묻게 만든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도 과연 농담인지’. 답은 명확하다.

 

그래서 이 연극이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농담처럼 시작되지만, 끝내 농담으로 남지 않는다. 번아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작동시켜 온 이 세계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불편함만이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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