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모두 한 번쯤은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현재의 상태로부터 벗어나 성공하고 싶은 입신양명의 꿈을 꾸었던 적이 없진 않을 것이다. 뮤지컬 <에비타>는 20세기 중반, 시골 사생아 출신의 한 여성이 성공을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서 성공의 발판으로서 남성들을 끊임없이 사귀는 것을 넘어, 최종적으론 엘리트 군인이었던 후안 페론을 만나 영부인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극이다.

 

 

뮤지컬 에비타_공연 포스터.jpg

 

 

물론, 일반인의 경험과 비추어봤을 때 확실히 그녀의 경험이 극단적이긴 하다. 그러나 뮤지컬을 관람한 이후에 영화 <에비타>를 본 뒤, 그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극속 서사가 전부 사실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극속에서 다뤄지는 서사를 일정 부분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는 선과 악의 경계 속에 놓여 있어서, 그녀의 행적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들었다. 왜냐하면 에바 페론의 일대기는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욕망의 극적인 현현(manifestation)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나는 뮤지컬 <에비타>를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움의 대상은 다름 아닌 에바에 대한 나의 시선이었다. 나는 그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만약 그녀의 삶을 살았더라면 나는 그녀가 행한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에바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다. 이대로 살아가다간 자신의 삶이 변변치 않게 끝나고 말거라는 점을 말이다.

 

물론 그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을 땐, 만나는 모든 남성을 성공의 발판으로 수단으로써 대하는 냉혹한 면모를 보인다. 극단적으로 '자신의 몸'을 수단에 대한 수단으로써 사용해서라도 말이다. 이후 배우로서 입지가 생긴 뒤 참석한 자선 행사에서 군인 후안 페론을 만나 그의 집으로 향했을 때는, 거기에 있던 그의 약혼녀에게 자신이 이전 연인 마갈디에게 내쳐졌을 때 불렀던 '또 다른 여행, 또 다른 길Another Suitcase in Another Hall'을 부르면서 자신이 내쳐졌던 것처럼 그의 약혼녀를 매몰차게 내쫓아버리기까지 한다.

 

그러게 그녀의 입신양명에 대한 욕망이 점차 커지고 그 욕망이 실현될수록, 뮤지컬의 넘버들도 점차 날카로워지고 불협화음이 주를 이루기 시작한다. 에바의 선택과 행동이 점점 선악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줄타기를 할 때면, 그 위태로운 곡예가 넘버에서 날카로운 엇박과 불협화음으로 표현되기까지 이른다.

 

 

뮤지컬 에비타_공연 사진_에바 페론 역 유리아, 체 역 민우혁, 후안 페론 역 김바울.jpg

 

 

그 위태로운 곡예가 절정에 이르는 넘버는 '에바와 체의 왈츠Walts for Eva and Ché'다. 그 장면에서는 영부인에 오른 에바 페론과 후안 페론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나라 경제가 피폐해진 가운데, 유럽 순방 중 건강이 악화된 에바 곁에 냉소적인 관찰자 '체'가 나타나 둘 사이의 위태로운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체는 극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에바의 일생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심지어 비꼬기까지도 하면서 함께 한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에바의 삶에 직접적으론 나타나지는 않은 채 거리를 두면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일생을 읊던 그가, 왈츠를 추기 위해 그녀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른다. (영화에서는 건강이 악화된 에바의 꿈속에 나타나 추는 왈츠 장면으로 표현된다)

 

수많은 사면체 거울 속에서 둘은 왈츠를 추는데, 체는 끊임없이 에바가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도록 종용한다. 체가 기본적으로 그녀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자라는 걸 감안한다면, 체는 그녀가 나라를 위한다는 대의의 명분은 사실 그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사적 욕망에 불과하다는 것임을, 그녀는 에바는 위선자라는 걸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체의 계속되는 비판과 비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덕분에 에바에게 동화되는 상태로부터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끔 만들긴 함에도 불구하고), 에바가 가졌던 욕망을 나 역시 다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어서 그런지 몰라도 에바의 계속되는 행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못해도 이해해볼 수는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유명해지고 성공한다는 입신양명이라는 욕망은 타인의 관심이 없다면 무너진다는 점에서 타자 의존적이긴 하지만, 우리 중에서 과연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극을 보면서 에바에게 느끼는 일종의 공감과 동질감, 그리고 체로부터 느끼는 그녀에 대한 비판의 감각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끼다 보니, 주인공 에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정말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아마도 <에비타> 창작진도 그 지점을 노린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우리들 모두는 에바의 욕망을 정도의 차이일 뿐 그 욕망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 모두는 그녀의 삶에 대해 하나의 명확한 문장으로 평가 내리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일생을 우리 역시 관찰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거기로부터 그저 각자 자신의 욕망은 어떠한지를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다.

 

 

뮤지컬 에비타_공연 사진_에바 페론 역 김소현, 후안 페론 역 손준호.jpg

 

 

이 뮤지컬의 음악과 관련해서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대다수를 작곡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 뮤지컬은 관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운드트랙으로 먼저 이 뮤지컬을 접했는데, 듣고 나서 처음 든 느낌은 그의 작품 중 <오페라의 유령> 결이 아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결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는 확실히 엘리트다. 부모가 모두 음악인이었으며,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아버지가 교수로 재직해 있던 로열 음대에 편입해 클래식을 전공했던, 이미 어렸을 적부터 대단한 이력을 가진 자이다.

 

이때 그의 메가히트 작품인 <오페라의 유령>은 그런 그의 이력과도 개연성이 큰 것 같다. <오페라의 유령>을 듣다 보면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나 <에비타> 음악을 듣다 보면, 엘리트읜 그의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 반항적이고 날카로움이 음악을 통해 표현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뮤지컬에서도 그렇지만, <에비타> 음악을 듣다 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악기를 참 잘 활용해서 작곡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페론의 여자Perón's Latest Flame'에서는 지휘자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듯한 박자의 드럼 소리가 강조되고, 그 드럼 박자에 따라 앙상블들이 무릎과 손뼉을 친다. '돈이 굴러가네And the Money kept Rolling In and Out'에서는 커튼콜 영상을 통해 이제는 팬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유명해진, 악명높은 8분의 7박자가 울려 퍼지는데, 이는 마치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그녀의 굴곡진 인생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 외의 넘버에서도 그는 트럼펫이나 휘슬 등의 여러 악기를  이용하여 역동적이고 박자감 있는 음악을 그려낸다.

 

8분의 7박자는 현대에 들어와 고전 음악의 관습적인 리듬 형태를 거부하려는 것에서 고안된 박자라고 한다. 복잡하고 엇나가는 리듬의 음악은 마치 그녀의 지난하고 굵직한 생애를 드러내주는 것만 같아 그 리듬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고 오히려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유빈_컬쳐리스트.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