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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쩌면 우리는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스물의 초입 이후로 줄곧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인류의 마지막을 목도하는 세대의 일원이 될 것만 같다고. 이 행성에서 인류의 존속은 몇십 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환경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지배적인 전망. 예정되었다고 해도 좋을 기후위기의 말로. 도처에서 사라져만 가는 인간성과 따뜻함. 반대로 도처에서 만연해만 가는 무지함. 개인 단위로, 집단 단위로, 국가 단위로 행해지는 시대역행의 폭력성. 이러한 이유 중 하나로 인해, 또는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종장을 맞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제부턴가는 세상이 나선형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 - 이를테면 기술의 진보, 학문적 성취, 과업의 이룩, 인식의 변화 같은 것들은, 나선형의 궤도 위에서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찰나 간의 상승일 뿐이라는 생각과 함께. 언뜻 세상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선형의 길을 따라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나선형으로 나빠지는 세상, 어쩌면 그 나선형의 궤도에서도 가장 끝자락일지 모를 세상에 살고 있는 젊은이가 취할 수 있는 태도에는 무엇이 있을지를 고민했다. 비단 젊은이가 아니더라도, 내 숨이 다하는 것보다 세상의 수명이 다하는 것이 먼저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기저에 안고 있는 시대의 사람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기약 없는 비관 외에 다른 답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오래도록 답을 구하려 애썼으나 구하지 못한 그 물음에 마침내 이정표를 제시해 준 것이 정보라의 <작은 종말>이었다. 

 

<작은 종말>은 현대 사회의 서로 다른 이면을 다루는 여러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이면들은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리 크고 심각한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순수학문과 도서관과 교육에 관한 예산이 끊기고,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취업을 위한 영단어 1,000개 외우기’라는 책은 남기되 노벨상을 수상한 한국인 박사의 저서는 가차없이 처분하는 것이 국가적 지침이 된들 그것이 당장 큰 재앙이 될까. 존재감 없는 시민 하나가 사이비 다단계의 수렁에 빠지는 바람에 그의 몇 남지 않은, 본래도 화목하다고는 할 수 없었던 단출한 가족이 지리멸렬하게 갈라진다 한들 사회에 그리 큰 여파가 있을까. 호기심에 타투 기계를 구입한 젊은이가 온몸에 화상을 입고도 ‘그러게 누가 문신 하래?’와 비슷한 조롱 외에는 돌려받지 못했다 한들, 그것이 정녕 모두가 주목하는 큰일로 번질 수 있을까.

 

그러나 나선형으로 나빠져만 가는 세상에서 이들은 사실 하나하나가 모두 아래로 나 있는 계단이나 다름없다. 계단 한 칸을 내려간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지만 그 계단들을 타고 타고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무저갱에 이르는 것은 순식간이다.


말했듯 세상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종장을 맞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예견된 기후위기 탓일지도 모르고, 인간성을 경시하는 풍조 탓일지도 모르며, 서로 다른 집단 간의 배척과 폭력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종말은 크고 궁극적인 단 하나의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순수학문과 인문학적 가치를 경시하는 풍조는 ‘버려지는 도서관의 장서들’이라는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생산성과 금전적 가치를 기어이 인간성보다 앞에 두어 셈하는 관습은 ‘기계로의 전환을 장려하는 사회’의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국가와 집단에 의해 대물림되는 유서 깊은 폭력은 ‘가상 현실 시뮬레이터를 통해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노년 여성’의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세상의 종말은 벼락처럼 단번에 찾아오지 않는다. 예견된 끝은 언제나 작은 종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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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는 이러한 작은 종말의 모습들을 하나씩, 지극히 건조하되 지극히 현실감 있는 문체로 선선히 그려 놓는다. 활자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며 독자는 우리네 현대 사회의 씁쓸한 이면들을 종류별로 다채롭게 맛보게 된다. 그러나 <작은 종말>은 단순히 제 이름처럼 ‘작은 종말’들을 나열하며 비관적 관조를 제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은 종말>은 세상을 아래로 이끄는 하향 계단들의 홍수 속에서 그저 멈춰선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인물들을 조명한다. 현대에 걸맞은 방식으로 소외된 이들. 소외되었으나 그 소외가 너무도 현실적이고 일상적이며 평범하여 세상은 그들이 소외된 줄조차 몰라 주는 이들. 시대의 날 선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저 존재하는 이들. 그저 버티며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시대에 저항을 하고 있는 셈인 이들. 말하자면 물이 새는 지하실에서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책들을 지키려 분연히 일어서는 사서 김 선생님, 또는 ‘탄소 기반의 유기체’가 모두 기계로 전환하는 와중에도 홀로 인간으로 남아 인간의 아이를 데리고 살리라 마음먹는 여성 ‘상’ 같은 이들.


이들의 결심은 거대한 시대의 물살 앞에 언뜻 무력하고 연약해 보인다. 그들의 앞에 예견된 미래가 장밋빛 전망이리라고 누구도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그들이 그래 왔던 대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선형으로 하락하는 세상의 급류 속에서 그들의 ‘그저 존재함’은 이미 그 자체로 저항이자 타인을 향한 독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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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존재하는 인물들을 내밂으로써, 정보라 작가는 작은 종말들 앞에 무력감을 느끼는 독자들을 향해 말을 건넨다.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아직 세상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고. 조금씩 조금씩 종장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 같은 세상일지라도 여전히 지금까지 지켜 왔던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그저 존재하는 이들이 있으니, 우리도 조금 더 그저 존재해 보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지면 위에 펼쳐진 여러 개의 작은 종말들을 지나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나선형으로 나빠지는 세상에 살고 있던 이들은 비로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조금은 갈피를 잡게 된다. 우리는 그저 존재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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