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담을 하고 싶다. 무언가를 온전히 즐기기 어려워진다. 쾌락이란 거대한 나무가 있고 가지들 사이사이에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매달려 있는 느낌이랄까. 오락이 필연적으로 소비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그 무게감은 선명해진다. 소모하는 자원만큼의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의 시대에서 즐거움을 향한 갈망은 묘한 죄책감이란 부록을 동반하는 거다.
페스티벌 역시 많은 자원을 이용하여 방대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기술의 총체다. 고양감, 해방감 등 그 기술력의 산물을 필요로 하고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번 행사에서 의심 없이 큰 만족을 느꼈다. 다만 쾌락과 죄의식을 저울질하는 것도 멈출 수 없었다. 이 사적인 갈등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써야 한다고 느낄 뿐이다.

한 해 동안 수많은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그 말인즉 매력적인 선택지를 잘 골라내야 한다는 거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2025 컬러 인 뮤직페스티벌(이하 컬뮤페)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라인업이 구축된 방식 때문이다.
페스티벌을 즐기는 소비자 입장에서 항상 아쉬웠던 건 보고 싶은 퍼포머들의 공연 시간대가 겹치거나 일자가 달라 특정 무대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이다. 불가피한 현상임을 이해하면서도, 퍼포머의 특색보다 그 파급력을 우선하여 배치된 타임 테이블로 주제와 통일성이 희미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다. 컬뮤페는 단일 무대, 콤팩트한 부지라는 특성을 살려 일자별 라인업 특색을 꽤 또렷하게 구분했다고 생각한다.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동시에 관객을 향한 존중감도 느낄 수 있는 요소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1107_15265798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1/20251107153230_lyfbtyoy.jpg)
페스티벌의 묘미는 단연코 야외에서 즐긴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일한 감각(청각)으로 향유하던 음악에 낯선 감각을 초대할 때, 음악은 소리를 넘어 하나의 경험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송소희의 무대가 그랬다. 송소희의 노랫말, 정서, 퍼포먼스 등엔 ‘자연’이 녹아들어 있다. 자연 속에 공존하는 존재, 소외된 존재, 초월적 존재, 무상하고 따스한 삶과 죽음이 그녀의 소리에 있다. 그래서인지 하늘을 보고 바람을 맞고 태양의 온도를 느끼는 동시에 그녀의 소리를 들으면서 비로소 노래가 완성됐다고 느꼈다. 그 자체로 온전한 줄 알았지만 사실을 흩어져있었던 조각들이 모여 더 거대한 실체로 나타난 것 같았다.
듣기의 황홀경을 기대하는 한편 ‘보기’를 몹시 기대하기도 한다. 공연자가 무대 위에서 취하는 자연스러운 제스쳐와 표정이 궁금한 거다. 대부분은 공연자가 고안해서 제공하는 퍼포먼스임을 모르지 않으나, 나는 청각마저도 죽인 채 그것들의 사이, 공연자의 무의식이 삐져나올 수밖에 없는 찰나를 목격하려는 변태적인 욕망이 있다. 날 것의 무언가를 목격(했다고 착각)하면, 그이가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 느껴지고 더 사랑할 수밖에 없어지니까.
그런 맥락에서 권진아의 무대를 집중해서 ‘봤다.’ 그녀가 자신의 시간을 통과하고 소화해서 뱉어낸 이야기들을 아낀다. 스스로 짜냈던 이야기를 현재의 시제로 다시 옮길 때 줄어들고 늘어나고 사라지고 창조되는 무언가를 그녀는 흘린 것 같다. 오래도록 감은 눈 속에 어떤 풍경을 붙잡아두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었을까. 알고 싶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1107_153508051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1/20251107153739_nmwxayik.jpg)
이찬혁의 공연은 날 것이 아닌 촘촘히 구성된 퍼포먼스를 목격하고 싶었던 무대였다. 한국 대중음악 메이저 씬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장르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그는 최근 가스펠 기반의 앨범 「EROS」를 발매했다. 그가 전면에 내세운 코러스 군단은 곧바로 이목을 끌었다.
무대 위에서 코러스의 존재감은 단연 거대했고, 타 앨범 수록곡들도 코러스와 색소폰을 가미한 편곡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메들리는 비속어로 표현하고 싶을 만큼 즐거웠다. 날 것의 모습뿐만 아니라 훌륭한 포장지 역시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만족스러운 공연들을 지나왔지만 가장 깊숙한 마음은 줄곧 이소라를 향해 있었다. 앞선 무대들이 이소라를 만나기 위해 지나야 할 화려한 레드카펫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마주한 그녀의 공연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필시 마법을 부리는 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수천의 사람이 넋을 놓은 채 고요히 한 사람을 응시하는 게 가능할 리 없으니까.
다른 공연에서 관객은 하나의 마음으로 그 공간을 함께 누빈 것 같았다. 이소라의 공연에서 관객은 각자의 마음으로 저마다의 공간을 향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한 사람을 경유하여 떠난 이들이 다시 한 사람으로 모여드는 풍경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나는 왜인지 기적처럼 느껴졌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1107_152657983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1/20251107153826_fzxbzhfc.jpg)
전반적으로 만족했던 컬뮤페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부분은 F&B다.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여 별도로 마련된 푸드 트럭 이용을 유도한 만큼 평균 이상의 품질을 보장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관적인 영역이나, 페스티벌임을 고려해도 높은 가격과 그에 상응하지 못했던 양과 질의 음식들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관객의 쾌적한 관람을 위해 섬세히 준비했다는 인상은 분명 받을 수 있었다. 육체적 피로는 덜 느끼면서 정신적 만족감은 더 채울 수 있었던 컬뮤페가 꾸준히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