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레드북은 사실, 초연으로 2018년에 먼저 만났던 공연이다.
당시 ‘성차별’이라는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은 지금보다도 흔치 않았기 때문에 무척 센세이셔널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막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시기였던 탓에, 소위 ‘좋다는 뮤지컬’을 한 번씩 보고 싶어하던 나 역시 극장에서 하이라이트 넘버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을 들으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때로부터 벌써 7년이 지나 다시 만난 레드북은 향수와 동시에 여전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이었다.
이번 시즌의 레드북은 유니버설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기며, 19세기 런던의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안나의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 간다.
주인공 안나는 문학과 사랑, 그리고 자유를 향한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세상의 시선에 맞서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써낸다. 그리고 그 여정은 '일반적인' 모습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진정한 자신을 되찾으려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시대극이라는 겉껍질 속에서 지금의 현실을 비추는 역할을 놓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당시의 안나는 '여자가 글을 쓰면 불온하다'는 편견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글은 여성이 쓰기에는 너무도 외설적이고, 도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레드북’이라 불리지만, 그 이름은 오히려 스스로를 규정할 언어를 되찾는 독자적인 타이틀이 된다.
그리고 안나가 세상의 잣대와 싸우며 자신을 증명하려 할 때, 처음에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던 변호사 브라운은 그 투쟁의 관찰자이자 동반자로 변해간다. 처음에는 안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가 안나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배우게 되는 과정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의 울림을 남긴다.
결국, 이 공연은 ‘시대극의 여성’이라는 틀을 넘어, 지금을 사는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의 목소리를 지키며 살아가는가를 되묻게 한다.
레드북은 분명 과거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서 관객은 지금의 자신을 본다. 시대의 편견을 뚫고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 외치는 안나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절실한 선언이다.
내게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넘어 다시 만나게 된 레드북은 여전히 유쾌하고 따뜻하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남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지금, 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혹시 그렇지 못하다면 그 목소리를 가두는 것은 편견과 사회가 아닐까.
안나의 이야기는 여전히 약자의 목소리가 사회적 논쟁으로 소비되는 현 시대에서 다시 한 번 유효하게 다가온다. 레드북은 단지 안나의 성장담을 넘어,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모든 개인의 서사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관객은 각자의 ‘안나’를 발견한다.
여전히 사회의 기준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길들여지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뮤지컬 [레드북]은 가장 단단한 위로로 다가갈 것이다.
![[이미지2] 2025 레드북 출연진.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0/20251023180151_gxwxghix.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