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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스물세 번째 주인공은 샤를로트 페리앙이다. 1세대 여성 건축가이자 실내디자인의 선구자로 알려진 샤를로트는 20세기 건축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그 성취와 여정에 비해 르코르뷔지에와 함께한 여성 건축가라는 다소 단순한 문장으로 설명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출간된  『샤를로트 페리앙-모든 삶에 깃든』  은 샤를로트 페리앙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고정관념의 대상에서 벗어나 본인의 삶과 한 인간으로서의 면면을 보여주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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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샤를로트 페리앙은 어머니에게 “샤를로트, 공부해, 공부는 자유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말한다. 그런 정신을 물려 받아 장학생으로 장식미술 연맹학교를 졸업 후 뒷걸음질 없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1928년 "지붕 아래 바"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갑작스러운 주목을 받은 그녀는 두려움 속에서 농업 대학에 입학하고 싶었다는 토로를 한다. 이를 들은 보석 예술가 장 푸케가 르코르뷔지에의 책 두 권 <건축을 향하여>와 <오늘날의 장식예술>을 권유하고, 샤를로트는 책을 읽고 정신이 아뜩해졌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건축에 매료된다. 처음에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던 르코르뷔지에와 연이 닿은 이후 그녀는 10년을 내리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작업을 이어가게 된다. 그 선택의 순간을 그녀는 이렇게 표현한다.


지도 없이 숲속을 헤매다 보면 갈림길이 계속 나타난다.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우리는 망설이다가 직감대로 하나를 고른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렇다. 갈림길은 한 번 지나치면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게 이 갈림길에서 저 갈림길로 구불구불하게 흘러가고, 매 갈림길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가 다룬 일화들에는 매번 치열하게 연구하고 구상한 건축이 있었고, 샤를로트는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에게 르코르뷔지에는 현실적인 적용과 구현을 요구했고, 샤를로트는 그 과정에서 건축에 눈을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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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 담당 프로젝트 패브리브 항공 파빌리온의 설계를 르코르뷔지에는 혹평한다. 노력이 일순간의 짓밟힌 기분이었을 테지만 그녀는 필수적인 여유 공간,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물성, 동공이 빛의 영향을 받아 수축하듯 모든 구조적 결합에는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며 끝까지 피력한 후 사흘간 작업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 지점에서 얼마나 자신의 건축 작업에 애정을 쏟았는지, 동시에 이어질 르코르뷔지에와의 합작들은 이 기개와 통찰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 확신에 따른 변화였는지, 르코르뷔지에는 1914년 이후 평면, 정면으로부터 자유로운 돔-이노(Dom-ino) 시스템을 제안하게 된다. 내력벽이 없이 파사드 안쪽으로 물러난 기둥들이 천장을 지지하는, 즉 샤를로트의 말처럼 공간의 여유와 자유를 가져다준 개념이자 르코르뷔지에의 현대건축의 5원칙의 시작이 된 개념이다. 여전히 역작으로 불리는 LC 시리즈 역시 실질적인 창작자가 샤를로트 페리앙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요즘. 그녀가 주창한 삶과 예술의 연결이 곧 가구와 건축으로 발현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르코르뷔지에와의 작업은 그녀를 건축적 사고로 이끈 시작이자 상상을 실현하는 토대가 되었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10년 간의 협업을 마무리 한 채였고 그녀는 인생의 변곡점에 서있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40년 2월, 샤를로트 페리앙은 일본의 장식예술 디자이너 고문으로 초빙된다. 분명한 기회였다. 동시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그녀가 남긴 말처럼 여지가 있던 시간을 거쳐 갈림길이 늘어난 어떤 순간에 그녀는 서 있던 것이다.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는 하필 전쟁 중에 있었고 그녀는 프랑스를 떠나며 큰 슬픔과 절망을 느낀다. 그 후 제자들을 만나며 일본에서 업무를 수행한 시간도 잠시, 대피를 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급격한 국제 정세 변화에 휩쓸린다. 그렇게 샤를로트가  프랑스에 돌아오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프랑스로 돌아와 전쟁의 후유증에 신음하는 도시를 바라본 그녀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고 표현한다. 커리어를 이어갈 때 마땅히 오는 불안과 주저함이, 페리앙에게는 훨씬 더 큰 규모의 전쟁과 사회 변화 속에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과 파시즘을 반대해 왔기 때문에 일본과 인도차이나에서 보낸 시간이 샤를로트에게는 무력하면서도 삶을 끝내 살아야 한다는 동력처럼 작용하기도 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을 믿는다는 것은 절망스럽다면서도 다시 동료를 찾아가는 그녀의 꺾이지 않는 의지가 놀랍다. 현대에서 바라보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삶은 성공한 건축가라는 단면이지만, 정작 본인이 설명한 그녀의 삶은 창작의 희열과 인류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샤를로트 페리앙이 남긴 수많은 작품 뒤에 있던 그의 삶, 창조적이고도 사람 냄새가 짙게 배인 그의 회고록이다. 자유를 추구했지만, 급변하는 정세 속의 그저 인간이었던 그녀의 삶을 자신의 목소리로 끝내 담아낸 의지가 강렬하게 남겨진다. 수십 년의 세월을 마치 어제 경험한 것처럼 써 내린 말년의 또렷함이 그녀의 작품을 볼 때도 문득 생각날 것 같다.


샤를로트 페리앙이 남긴 성취는 단순히 “르코르뷔지에의 조력자”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명료하게 어떻게 자신의 자유와 직관을 지켜냈는지를 말한다. 자유. 그녀의 어머니가 주창했듯 그녀는 자유를 향해. 어떤 해방을 향해 끝없이 걸어갔다. 그녀에게 자유란 어떤 의미였을까. 자유의 마지막 정의에 눈길이 멈췄다.

 

자유. 명사 / 철학 / 자연 및 사회의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활용하는 일.

 

사회와 인간에 절망한 그녀였지만, 동료와 함께 하고,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삶과 건축을 결부시키는 것은 절대 그만두지 않았다. 그녀가 책의 끝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굴복하지 않고 투쟁해야 하는 이유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자유란 목표가 아니라 가장 강력한 동기였다.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마음 말이다.


샤를로트 페리앙의 전기는 그녀를 이미 알고 있던 이들에게만 읽히기 아쉽다. 그의 삶은 전쟁 속 인간, 건축가, 여성 등 다양한 층이 한데 섞여 있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과 깨달음을 얻도록 수많은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다시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시대에 이르러 이 회고록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고, 어떻게 더 잔인한 죽임을 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샤를로트의 사유가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더 시급한 질문처럼 다가온다.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선택해야 했던 한 인간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그녀가 내린 결론처럼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수많은 질문을 생각하고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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