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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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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에 흉터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유전적으로 있는 자국이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것이랬다. 어릴 때부터 크게 신경 쓴 적 없었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거슬리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초등학교에 가서 그것으로 상처받는 일이 하나 생겼다. 한 친구가 어쩌다 그걸 보게 됐는데, 그거에 대해 반 전체에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자기 마음대로 '신체 비밀'이라고 불러가며 이상한 게 있다고 놀렸다. 그때부터 나는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기장의 옷만 입고, 혼자 있어도 괜히 그것을 의식하게 되곤 한다. 그때부터 십 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흉터가 얼굴에 있으면 어떨까? 모든 전쟁은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처를 남긴다. 콜롬비아 대학의 자료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또한 병사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들의 얼굴에 남은 상처는 그들에게 멸시적인 오명을 안겨주었고, 남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그들을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은둔으로 이어졌다.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이들의 얼굴을 회복해 주기 위해 의학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지만, 상처가 워낙 깊고 싶한 탓에 완벽하게 회복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처를 가면을 만들어주는 '초상가면 스튜디오'가 등장했다. 미국의 조각가 안나 콜먼 래드가 설립해 가면을 만들며 그들을 도왔다.

 

<르 마스크>는 그 초상가면 스튜디오, 아틀리에를 배경으로 한다. 아틀리에에서 일하는 레오니, 스튜디오의 마담 래드, 근처 잡화점에서 일하는 페르낭, 그리고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 프레데릭까지 4인극 뮤지컬이다.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사람에게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만들거나 뭔가를 해내는 데서 사람들은 살아갈 이유를 찾기도 한다. 레오니에게도 그렇다. 그녀는 아틀리에에서 보조로 일하며 조각을 연습하고 있다. 그러나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뚝거리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가 책임을 다할 '일'이 아니다. 동정과 연민, 안타까운 시선이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도움의 손길을 건네거나 가만히 있으라고,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그녀의 상사이자 아틀리에를 설립한 래드는 다정하고 편견 없이 사람을 보는 인물이지만 그녀마저도 레오니를 배려하고자 할 뿐, 큰 일을 맡기지는 않는다. 그렇게 레오니는 존재하지 않는 듯 보조적인 일만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레오니와 같은 인물은 또 있다. 귀족 출신의 프레데릭. 프레데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살아남았지만 얼굴에 상처가 남았다. 얼굴을 가린 채 사람들 사이에서 몸을 움츠리거나 숨어가며 살고 있다. 그를 보고 있으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다'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 당시의 공포가 그대로 남아 환청을 듣고 환영을 보면서 살려 달라고, 살고 싶다고, 혹은 차라리 죽여 달라고 울부짖는다. 타인과의 교류 없이 살 수 없는 삶을, 그는 계속해서 숨고 도망치며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삶을 대하는 방식이 엄연히 다르다. 레오니는 희망을 가지고 '절름발이 레오니'라는 말만 들으며 살지는 않을 거라고 당차게 살려 하는 반면, 프레데릭은 삶에 대한 희망을 모두 잃은 듯 좌절한 채로 살고 있다.

 

레오니에게 프레데릭의 가면을 만들어줄 기회가 찾아온다. 어렵게 온 기회이니만큼 레오니는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프레데릭은 얼굴을 가린 채 드러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레오니는 프레데릭의 가면을 잘 만들 수 있을까?

 

 

 

이름이 뭔가요?


 

레오니는 그를 다그치는 대신 안부를 물으며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아름이 뭔가요?", "나이는 몇인가요?"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처럼. 이름이나 나이는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 서로를 알기 위해 가볍게 묻는 질문이다. 그러나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죽이고 도와야 하는 전쟁을 거쳐온, 돌아와서도 상처를 안고 사람을 피하며 홀로 살고 있는 프레데릭에게는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그녀의 인사에는 당신을 보고 있다는 함의가 있다. 프레데릭은 어쩌면 아주 오랜만에 자신을 대면해 주는 사람을 만났을지 모른다.

 

프레데릭은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얼굴을 가렸던 것을 드러내 얼굴을 보여주고, 레오니가 자신의 얼굴을 그릴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다치기 이전의 얼굴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그림을 그려도 "이건 내 얼굴이 아니에요"라는 말만 돌아온다. 보통 사람들은 이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받아 완성하지만 프레데릭은 자신의 사진을 받고자 (그가 사랑하는 여자인) 르네에게 연락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레오니는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려 가면을 만들기 전 석고상을 만들 준비를 하는데, 레오니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전쟁은 끝났고,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후원금은 줄어들면서 래드는 스토디오를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오니는 이제 처음 가면을 만들며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다시 모든 일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래드는 또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 위로하지만 레오니는 지금까지 그랬듯 그것은 쉽지 않고,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프레데릭은 이런 레오니의 상황을 알게 되고, 자신이 도움을 받은 것처럼 레오니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레오니에게 다가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묻는다. "이름이 뭔가요?", "가장 좋아하는 조각가는 누구인가요?" 그러면서 래드의 송별회로 사람이 많이 모인 날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자고 한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 보이지만 레오니와 프레데릭 사이에 또 다른 갈등이 생긴다. 프레데릭은 레오니의 실수로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고, 레오니는 여러 번 넘어지면서도 그를 쫓아가고 진심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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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마스크> 속 인물들이 가진 상처는 사라지지 못하는 상처다. 프레데릭의 얼굴 속 흉터는 계속 남을 것이고, 레오니는 다리가 완전히 나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르 마스크는 마음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했다. 레오니는 프레데릭이 다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용기가 되어 주었고, 프레데릭은 레오니가 자신의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주었다. 둘은 서로가 서로의 힘이다. 다른 사연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위로 받고 위로가 되어주는 모습을 르 마스크는 보여준다.

 

레오니와 프레데릭은 여러 갈등이 있었으나 종국에는 진심으로 서로를 대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하나의 사람으로 보며 잃은 듯 보인 존재를 되찾아준다.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보면서 말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극의 후반부 레오니가 어떤 잘못을 한 후, 프레데릭을 쫓아가 온 마음을 다해 사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안부를 물으며 다가가는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가벼운 인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당신을 알고 싶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담겨 있다. 서로의 존재를 되찾아주고 대면하고자 하는 장면(과 그 넘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인물들의 신분이나 상황을 보여주는 의상도 기억에 남는다. 레오니는 비교적 수수하고 차분한 의상을, 프레데릭은 귀족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기품 있는 듯한 의상을 입었다. 래드는 우아하고 어른스러운 의상을, 페르낭은 잡화점 직원인 것에 걸맞게 움직이기 좋고 가벼워 버이는 의상을 보였다. 인물들의 상황이나 성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지만 단번에 알기에는 도움이 되었다.

 

아기자기하고 가면이 가득 있던 스튜디오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커튼 너머로 보이는 파리의 풍경의 낮과 밤, 날씨는 극의 분위기에 맞춰 변화하며 극에 대한 몰입을 도왔다.

 

작품에서 레오니의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에는 의미가 있어요.

 

 

르네도 그것을 알아줄 거라고. 레오니가 프레데릭에게 전한다. 프레데릭이 용기를 내어 레오니에게 얼굴을 드러내고 후에 가면을 쓰게 된 과정 그 자체도 모두 의미가 있다. '살아가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면을 만든 레오니의 마음에도 저 말은 해당된다.

 

프레데릭은 르네를 만나러 가고, 레오니는 프레데릭의 연설 덕분에 모인 후원금으로 스튜디오를 계속 운영할 수 있게 되며 뮤지컬은 끝이 난다. 길지 않지만 사람이 가진 상처를 서로가 대면하고 마주해주며 치유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힘을 가지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편견과 상처를 껴안아줄 수 있는 연대가 더 확장되면 그것은 또 어떤 힘을 발휘할까?


상처와 치유, 화해가 담겨 있는 <르 마스크>는 11월 9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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