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르 마스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얼굴에 상처를 입은 군인들을 위한 맞춤가면을 제작한 조각가 ‘안나 콜먼 래드’가 설립한 실제 장소 ‘초상가면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두 번째 넘버로도 등장한 ‘초상가면 스튜디오’는 군인들의 부상 전 사진을 참고하여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가면을 제작해 군인들이 무사히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을 그대로 가져와 ‘마담 래드’가 운영하는 ‘초상가면 스튜디오’에서 다리가 불편한 직원 ‘레오니’가 얼굴의 절반을 잃은 ‘프레데릭’의 가면을 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려낸다. 이때 스튜디오에 필요한 물건을 배달하는 ‘페르낭’이 짝사랑하는 ‘레오니’를 뺏길까 봐 질투하는 장면들이 코믹하게 연출되며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한다.
앞서 말했듯 ‘레오니’는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매번 허드렛일을 돕다가 처음으로 귀족 집안의 부상병인 ‘프레데릭’의 가면을 제작하게 된다. 밝고 단단한 내면을 가진 ‘레오니’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긍지로 가면을 제작할 생각이 없다며 회의적으로 굴던 ‘프레데릭’을 회유하는 데 성공한다. 보통의 로맨스 드라마였다면 여기서 둘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되는 양상을 보였겠지만, 이 극은 휴먼 드라마다.
상처 입은 사람과 그런 상처를 보듬어줄 사람이 만나 연대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가면 제작은 단순히 외면의 상처만을 덮는 게 아니라 내면 역시 같이 회복하고 나아갈 수 있게 돕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를 보듬어줄 사람 또한 다른 이를 돕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 또한 치유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초상가면 스튜디오’에 들른 모든 이들은 서로를 치유하기 위해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프레데릭’의 상처는 약혼자 ‘르네’로부터 시작됐다. 전쟁 이후 얼굴에 남은 끔찍한 흉터로 인해 자신을 괴물처럼 취급한 ‘프레데릭’은 끝내 ‘르네’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마저 자신을 피할까 두려웠던 그는 얼굴 한쪽을 붕대로 가리며 피폐하게 지내다가 스튜디오로 발걸음한 것이다.
하지만 ‘레오니’는 ‘편하게 말해봐요’라는 넘버에서 보여주듯 서서히 그에게 다가가며 경계심을 허물었고, 직접 상처를 보지 않고도 그의 원래 얼굴과 흡사한 조각상을 완성했다. 그렇게 모든 게 잘 풀려가던 상황에서 ‘레오니’가 ‘르네’에게 몰래 편지를 보냈단 사실이 발각되고, 이곳을 찾아온 ‘르네’가 ‘프레데릭’을 알아보지 못하고 황급히 지나침에 따라 ‘레오니’와 ‘프레데릭’ 사이의 갈등이 깊어진다.
이에 ‘초상가면 스튜디오’의 철거 위기를 막고자 연설을 준비하던 둘의 계획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아픈 다리를 이끈 채 계속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프레데릭’을 붙잡고 사과한 ‘레오니’ 덕분에 계획은 다시금 순조롭게 흘러간다. 그렇게 '프레데릭'을 위한 세상 단 하나뿐인 가면이 완성되고, 이제 글솜씨가 뛰어난 그가 준비한 진심 어린 연설도 사람들 앞에서 선보일 일만 남았다.
이윽고 작품의 하이라이트, 관객들 앞에 선 ‘프레데릭’은 그의 얼굴에 딱 맞는 초상가면을 착용한 채 연설을 시작한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에서 ‘에반 핸슨’이 우린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듯 그 역시 처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과 진정되지 않는 호흡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면이 미처 가려주지 못한 공포에 휩싸인 ‘프레데릭’은 자기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며 따듯한 격려를 보내는 ‘레오니’ 덕분에 용기를 얻고 준비한 연설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어떤 이의 진심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더 이상 얼굴을 가리지 않고도 일상을 살게 된 ‘프레데릭’의 이야기에 감명받은 사람들의 후원으로 ‘초상가면 스튜디오’는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이곳을 세운 ‘마담 래드’는 ‘레오니’에게 주인 자리를 넘겨주고,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곳으로 떠난다. ‘프레데릭’은 결과가 어떻든 괜찮다며 ‘르네’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페르낭’은 ‘레오니’에 대한 마음을 함께 일하고 싶단 말로 대신 고백하며 그녀 곁에 남는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겠지만, 이곳에서 치유받은 이들 모두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으니 되었다. 이제 ‘레오니’의 ‘초상가면 스튜디오’에서는 겉모습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 오히려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도구가 되어 남은 자들의 상처를 치료할 것이다.
뮤지컬 <르 마스크>는 파리의 풍경을 재현한 실감 나는 영상, 시스루 커튼과 조명을 활용한 그림자 연출, 세심하게 공들인 가면과 조각상 등 시각적 디테일로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두 남녀의 로맨스가 아닌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끝까지 넘어져도 멈추지 말고, 우리 함께 살아보자.”라는 따듯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사실 실화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적은 ‘마담 래드’나 어두운 분위기를 반전하는 역할로서 소모된 ‘페르낭’의 서사를 보충했다면 훨씬 입체적인 극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개인적으로 다소 높고 급하게 진행되는 음악 또한 감정 이입에 조금 방해되는 기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르 마스크는>는 창작 초연이자 실화 바탕 작품으로서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고 본다. ‘초상가면 스튜디오’라는 독특한 소재로부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뮤지컬 <르 마스크>가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길 바란다.
25/8/22 8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