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하나의 전제를 합의해야 한다.
독립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그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칼럼에서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EBS,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들을 나의 다큐 등용문으로 제시한 바 있다. 대중이 떠올리는 전형적인 다큐의 얼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방송이라는 안정된 생태계 안에서 만들어진다. 역할은 확고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오늘날 다큐는 OTT, 유튜브, 영화제, 극장 등 훨씬 다양한 경로로 소비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큐멘터리에도 단편, 애니메이션 다큐, 사적 다큐 등 다양한 하위 장르가 생겼다.
다만, 다큐가 무엇이냐? 라고 질문했을때,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고, 이 방대한 분류를 아우를 수 있는 큰 전제를 묻는다면,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다루는 장르란 것이다.
다만 최근 다큐멘터리 제작에서는 생성AI(GenAI)의 부상과 함께 새로운 혼란과 질문이 생겨났다.
넷플릭스의 범죄 다큐멘터리 <제니퍼는 무슨 짓을 했는가?(What Jennifer Did(2024))>는 여느 영상 작품과 마찬가지로 재연과 그래픽, 음향효과 등을 활용해 작품의 몰입도와 완성도를 높혔다. 하지만 작품의 공개 직후 출연자(제니퍼)의 과거 사진이 생성AI를 통해 수정된 것 같다는 의혹이 제시된다.
손가락이 이상하다…다큐까지 파고든 AI [경제합시다] / KBS 2024.05.01.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보정과 연출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조작으로 보아야 하는지다. 진실을 쫒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가공은 신뢰성 전체를 흔드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우린 “이것은 조작인가, 아니면 보정인가? 아니면 창조인가?”라는 경계선을 질문하게 된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미국 아카이브 프로듀서 연합(APA)은 [Best Practices for Use of Generative AI in Documentaries]라는 보고서를 통해 다큐 제작에서 생성 AI 사용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
원자료(primary source)의 형식·맥락·의미를 보존할 것
AI 사용 내역을 제작·마케팅·상영·크레딧 과정에 걸쳐 상세히 고지할 것
영화 ↔ 국내외 법, 기관, 정책, 노조·보험사·업계 관계를 신중히 검토할 것
딥페이크 등 인간 시뮬레이션 제작 시 철저한 동의·고지·맥락 공유를 보장할 것
- APA, [Best Practices for Use of Generative AI in Documentaries] 요약
보고서는 다큐와 AI의 결합 사례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지만, 점점 높아지는 AI 접근성은 이제 모든 동시대인이 이 지침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는 단지 창작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모든 개인이 현실을 보호하고 그 본질적 의무를 함께 짊어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린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가능한 한 진실·객관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모든 카메라 뒤엔 사람이 있고, 사람은 관점을 가지며, 기울어진 세상을 담기 위해서는 다른 앵글과 가공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다만, 생성 AI는 이 ‘가공’을 너무 쉽고 빠르게 만들어버렸고, 그만큼 현실은 불신 속으로 미끄러질 위험에 놓였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의 시대에 다큐는 대체 어떻게 정의되야 하는 걸까.
나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단순한 영화 형식이 아니라, 삶의 방식·태도·감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힘, 예측 불가능함을 견디는 능력, 긴 시간을 버티며 관찰하는 인내, 구조 밖에서 질문을 던지는 시선.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진정성과 지구력.
AI가 죽었다 깨나도 결코 제공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완벽한 진실을 보여주는 장르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과 부딪히며 실망하고, 기다리며, 배우는 과정을 통해 단순한 데이터적 진실과 주관적 착각을 넘어서려는 장르이다.
생성 AI가 우리에게 편리함을 안겨주었지만, 현실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장르를 넘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실천이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참고 자료]
· 손가락이 이상하다…다큐까지 파고든 AI [경제합시다] / KBS 2024.05.01.
· Archival Producers Alliance. (2024, September). Best practices for use of generative AI in documentaries (Version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