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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뉴욕.

   

이 두 글자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자유의 여신상, 타임스퀘어, 브루클린 거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여러 구체적인 것이 생각날 수도 있고, 추상적인 무언가가 생각날 수도 있다. 필자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알리샤 키스의 유명한 노래 중 하나를 떠올렸다.

 

 

 


타임스퀘어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저들의 라이브를 통해 '뉴욕'의 분위기를 즐기는 이들을 보니 나까지 뉴욕에 대한 환상이 생기는 기분이다. 알리샤 키스가 노래한 'Empire State of Mind'는 세계의 수도라는 평을 듣는 뉴욕의 매력과 도시가 품은 희망에 대해 예찬하는 노래다. 뉴욕시의 중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브루클린 거리 등 가사에 뉴욕의 구석구석이 활기차고도 생생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2009년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도 '뉴욕'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되었다. 노래의 가사는 이러하다.


 

New York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There's nothin' you can't do

Now you're in New York

These streets will make you feel

brand new

Big lights will inspire you

 

 

내가 뉴욕에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이 뉴욕의 거리들이 나를 완전히 새롭게 느끼게 해준다니. 뉴욕이 대체 뭐길래!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야기할 뉴욕 배경 에세이 < 바깥은 불타는 늪 정신병원에 갇힘 >을 뉴욕에 살면서 쓴 김사과 작가는 뉴욕을 어떻게 보았을까?

 

두 번 연속으로 한 문장에 뉴욕이 세 번이나 들어가니 조금 어지러운 기분이다.

 

 

 

바깥은 불타는 늪 정신병원에 갇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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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고구마같이 길쭉하게 뻗은 맨해튼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길 가운데 5번가는 단연 돋보이는,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길의 여왕이다. 공황발작 직전의 흥분 속 쇼핑-관광-산책자들, 만성불황과 빈부 격차의 정조를 차단하는 영광의 소음과 먼지, 다시 말해 그 찌든 돈 냄새에 혹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에르메스, 샤넬, 프라다, 디올... 늘어선 값비싼 이름들 너머 황금빛으로 웅장하게, 지나치게 웅장하여 유치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발기된 페니스의 형상을 한 트럼프타워의 모퉁이로 들어서면, 살짝 나른한 채도로 사람들을 설레게 만드는 낯익은 민트색의, 옛날 옛적 오드리 헵번이 식은 프랑스빵을 뜯어먹으며 하염없이 바라보던 티파니 매장을 지나 끝없이 이어지는 몰인간적인 체스판 구획을 따라 발걸음을 영원토록 갱신하게 만드는, 매 순간 다가오는 저 압도적 세계에 감히 뭐라 토를 달 수 있단 말인가.

 

뉴욕.

힘의 완벽한 쇼케이스 장소.

 

 

놀랍게도 책의 첫 페이지다.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적인 의미인지 모를 기묘한 묘사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살짝 머리가 아파오지만 조금 더 읽어보자.

 

 

생각해보면 뉴욕도 많이 변했다. 911테러로부터도, 2008 금융위기로부터도 아주 멀리 왔다. 내 발칙한 첫사랑 피오나 애플로부터, 또 어퍼이스트사이드의 꽉 막힌 변태 우디 앨런으로부터, 심지어 LVMH의 사랑스러운 정부 섹스앤더시티로부터도 아주 멀리 왔다. 무슨 말인가 하면 뉴욕에서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수족관의 피라냐 물고기 떼를 본 적 있는가? 그 사나운 면상의, 매혹적으로 반짝거리는 물고기들은 마비된 듯 정지된 듯 뻣뻣하게 떠있다. 피라냐적 진공 상태. 그것은 뉴욕에 대한 적절한 묘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희생자들은 잘 처리되었다. (밀레니얼들은 디지털 캡슐에서 성공적으로 배양에 성공, 흑인들은 모조리 감옥에서 썩고 있다.) 아무도 이 도시의 미심쩍은 정지 상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이 도시에 대해서 뭔가 말하고 있는 개자식들이 있다면 그건 죄다 영국인들이다.


 

그리고 그는 외친다.

 

"This city is soㅐㅐㅐㅐㅐㅐo dope!!!"

 

이제 겨우 '첫 번째 편지'를 읽었을 뿐인데 기가 빨린다. 일단 작가가 온몸으로 뉴욕 생활을 감각하고 있으며, 그 감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생생하게, 생경하게, 감각적으로, 혹은 날 것 그대로 담아내겠다는 의지 혹은 필연적인 운명 같은 광기가 보인다. 이 책은 브레이크가 없다. 작가는 '사방이 90도 수직으로 꺾이는 미친 방식의 산책', 명품관은 휘황찬란하게 있지만서도 푸드트럭은 없는 뉴욕의 백화점,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여러 가지 관념을 먹고 마시고 사고 파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쏟아낸다. 그리고, 관념으로 이루어져 관념으로 영원히 존재할 뉴욕에서 살아가는 '완전히 돌았을지라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작가의 정신 나간 일상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이루는 문장들은 작가의 중얼거림, 공상, 정제된 문장, 정제되지 않은 문장, 정제되지 않은 척 하는 정제된 문장 그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그 구분은 불가능해진다. 어쩌면 뉴욕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을 독자까지도 '미치광이에 의해 쓰인 무가치한 요설'에 빠져드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책에 우리는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인가?

 

 

 

공상을 모아 뉴욕을 꿰뚫는 작가의 통찰


 

작가는 자신의 중얼거림, 공상, 정제된 문장, 정제되지 않은 문장, 정제되지 않은 척하는 정제된 문장들을 그저 토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은 분해되어 흩어지는 대신, 작가의 통찰을 통해 하나로 합쳐져 '뉴욕'을 꿰뚫는다. 여기서 바로 이 책을 우리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나온다. 바로, 카타르시스. 우리는 뉴욕을 정신병원으로 과감히 비유하는 작가의 단어 선택과 문장의 구성에서 타격감을, 작가의 뉴욕에 대한 통찰에서 쾌감을 느낀다.

 

 

젊은이들의 광란이란 원래 이다지도 서글픈 것인가?

마치 IMF 구제금융 시절의 영국 같군. 그런데 돈 냄새는 왜 이렇게 진동하는지.

이 가엾은 젊은이들은 왜 이스트빌리지 한 구석에서 이렇게 몹쓸 방식으로 젊음을 불태워야 하는가?

 

추악한 힘과 아름다운 이상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두 세계가 기묘한 방식으로 동거하는 것이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분열증적 존재양식이다. 물론 둘이 화합하는 순간은 한정되어 있다. 리버티 밸런스 같은 절대 악에 맞설 때와 같은 응급 상황이 그런 때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주기적으로 대단한 적이 필요한 것이다. 그 적이 미국적 자유를 유지하는 균형이다.

 

미국은 표백과 재탄생이라는 성가신 처리 과정의 영원한 반복에 불과하다. 잘 자란 중산층 미국인들을 보면 탄생의 순간부터 주도면밀하게 어떤 것들이 도려내진 것 같은, 이후로도 주기적인 잡초 뽑기를 부지런히 행하며 집요하게 관리되는 매끄한 결여가 느껴진다. 그 결과 빚어지는 완벽한 인공성이 바로 미국의 미학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고 뉴욕이라는 도시가 궁금해져 유튜브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관념적' 뉴욕을, 건축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뉴욕을, 그리고 뉴욕의 역사를 구경했다. 직사각형의 블록이 격자형 도로로 구성된 맨해튼의 유일한 사선, 브로드웨이 거리를 네모난 화면 안으로 관찰하다 보니 번쩍번쩍한 전광판들에 절로 눈이 뻐근해졌다. <바깥은 불타는 늪 정신병원에 갇힘>에는 위에 인용한 문장들 외에도 아주 많은, 머리가 지끈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니 뉴욕에 대한, 미국에 대한, 세계에 대한 작가의 감각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순수하게 뉴욕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 읽어도 좋을 듯하다.

 

책을 다 읽고, 뉴욕에 대해 조금 찾아보다 알게 된 재밌는 사실 한 가지

 

'뉴욕'이라는 이름의 비하인드:

영국 국왕이었던 찰스 2세가 자신의 동생 '요크'에게 생일선물로 뉴암스테르담(뉴욕의 전 이름)을 주었고, 그렇게 뉴암스테르담은 요크의 이름을 따 뉴욕(New York)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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