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의 [20]을 들으며 20살의 마음을 짐작하던 18살의 나는 어느새 정말 스물이 되어 있었다. 대학교 때문에 상경을 앞두고 딱 예습한 만큼 불안했다. 기숙사에서 표류하던 고등학생 때처럼 한 번 더 ‘I Have No Hometown’이 되겠구나. 이번엔 서울인데 또 얼마나 ‘Lonely’하려나. 그곳에는 새로운 인연이 널려 있을 건데, 만나보기도 전에 설레다가 두렵다가 어지럽다. 마음이 들뜨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Feels Like Roller-Coaster Ride’) 그래도 한 명쯤은, 내 것과 같아 보이는 고통을 가진 채로 내게 오려나. (‘Ohio’) 그건 그것대로 무섭다. 내게 온다는 것은 나를 떠날 수 있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공들여 세상을 지어 놓고선 그 세상에 나만 두고 도망칠 수 있다는 뜻이다. (‘Our Place’) 이 모든 불안을 이미 노래해 둔 채 ‘위잉위잉’ 날아가 버린 혁오는 아직 오지 않고.
그러다 스물로부터 딱 30일 지났을 때 혁오가 돌아왔다. 늘 그랬듯 나이를 앞세워 [25] 혹은 [26]을 들고 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랑으로]? 사랑을 향해 가라는 건가, 사랑을 통해 가라는 건가. 모르겠지만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고독이나 허무, 혹은 사랑이나 행복에 파고들던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6개의 곡이 모두 타이틀이라는 옷을 입은 채 삶이라는 큼직한 주제를 감돌고 있었다. 뭐랄까. 해탈의 경지에 오른 도사가 삶의 모든 면면을 모조리 살아본 후일담을 홀로 고요히 읊조리는 것 같았다. 그건 방대한 삶을 앞둔 스무 살의 내가 기댈 수 있는 가장 담담한 증언이었다. 스무 살을 축하해. [사랑으로]는 (믿거나 말거나)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 속삭임이 아주 약간 낯설고 조금 많이 설렜다.
그러고 보면 혁오에게 꼬박꼬박 세월을 의탁했다. 스무 살부터는 생일이 오면 마땅한 의례처럼 새 나이에 맞는 앨범을 꼭! 통째로 들었다. 그건 내가 스무 살을 기다린 이유 중 하나였는데, 살면서 혁오를 가장 많이 들었던 18~19살에는 내 나이를 이름으로 한 앨범이 없다는 게 항상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으로]와 함께 어엿한 스물이 된 나는 그해 생일에 기꺼이 [20]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매년 나이에 맞는 앨범으로 생일을 마무리했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그 시간이야말로 오늘이 정말 생일임을 증명해 준다는 듯이 그랬다. 모든 것이 마냥 무서웠던 스무 번째 생일에는 [20]과 불안정을 나눠 가졌다. 사람들이 살살 밉던 스물하나엔 [Panda Bear]의 방어기제를 빌려 썼다. (혁오가 [21]을 뛰어넘었다는 게 거슬렸으나 내년의 [22]를 기약하며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다.)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었던 스물둘엔 [22]의 절망 속 낭만을 신봉했다. 많은 부위가 회복되었던 스물셋엔 [23]의 비관으로 균형을 잡았다. 사랑에도 자격이 있을 거라며 머뭇거리던 스물넷엔 [24]처럼 산뜻하게 사랑과 행복을 좇기로 다짐해 버렸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5년 4월 28일. 나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다. 혁오가 건너뛴 25의 나는 생일을 이틀 앞두고 혁오 콘서트에 다녀왔다. 이미 작년 9월 한 차례 진행한 투어 콘서트지만 그때는 가지 않았다. 당연히 후회했고 그런 내게 혁오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었다. 앵콜콘을 연다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사실 이건 나의 첫 혁오 콘서트. 혁오에 열광하던 18살부터 일상적으로 애정하는 25살까지,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지난가을처럼 늘 포기했다는 뜻이다. 콘서트에 관객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꽤 고통스러운 일이니까. 온 마음을 내어준 아티스트라면 더욱 그렇다. 스탠딩이면 그를 올려다보아야 하고 좌석이면 그를 내려다보아야 한다. 그와 수평적으로 눈을 맞추기란 어렵다. 나는 철저히 관객, 그는 명백히 공연가. 삶의 많은 부분을 떼어다 바쳤건만 그와 나는 사실 너무도 다른 위치에 있다. 나와 직접 호흡한 건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아니라 그의 음악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자만이 ‘최애’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견딜 수 있다. 내겐 어려운 일이다. 알면서도 이번엔 관객이 되길 택했다. ‘일개 관객’이 되기 싫다는 알량한 자존심을 더 늦기 전에 그만두고 싶었다.
잘한 선택이다. 덕분에 스물다섯의 내가 정확히 [사랑으로]의 자리에 서 있다. 스피커 너머가 아닌, 화면 너머가 아닌, 상상 너머가 아닌,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혁오가 내 눈앞에 있다. 노래하고 연주하며 발을 구른다. 그 생생함이 너무 커서 그들은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 서럽기도 하다. 오랜 친구는 기억을 잃어버리고 나 혼자만 그와의 추억을 간직하는 것 같다. 자의식과잉에 가까운 터무니없는 외로움은 다른 관객들이 달래준다. 혁오를 언제부터, 얼마만큼, 왜, 어떻게 좋아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객석에 있다. 혁오가 등장한 순간부터 같은 곳을 보고 있다. 상봉 시간은 길어도 3시간일 테고, 우리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늘려 미래의 나와 오늘의 혁오를 이어줄 다리로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휴대폰을 꺼내 든다. 동영상 녹화 화면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것은 별 같다.
관객들 중에는 나의 친구들도 있다. 고등학교를 같이 견뎌 온 친구들이다. 한 명은 내 앞에, 나머지 두 명은 건너편 구역에 있다. 이번 콘서트는 꼭 가자고 마음먹은 데는 이들의 지분이 크다. 혼자였다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엄청 많을 거고, 그 속에 혼자 있으면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들 거고, 혁오가 노래를 시작하면 나는 순식간에 일개 관객이 되어버릴 거고, 그건 분명 소름 돋는 경험일 테지만 동시에 외로울 거고, 무엇보다 혁오의 노래는 너희를 생각나게 할 거다. 무대를 보다가 너희를 보다가 다시 무대로 시선을 두다가 또 너희를 눈으로 쫓길 반복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맙다. 지금 이 순간 이곳까지 살아온 것을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적당히 과장하자면 이 콘서트가 살아있음에 대한 보답 같기도 하다.
이번 콘서트는 엄밀히 말하자면 혁오 콘서트가 아니라 ‘혁오&선셋롤러코스터’ 콘서트다. 두 밴드가 힘을 합쳐 만든 앨범 [AAA]와 나란히 온 콘서트다. 나는 선셋롤러코스터는 잘 모르지만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 이들은 누가 뭐래도 하나의 팀이다. 팀을 이루는 건 두 밴드의 구성원뿐만이 아니다. 연주자가 아닌 이들도 시시각각 팀에 뛰어든다. 카메라맨이 무대에 잠입해 촬영하는 영상은 무대의 배경이 된다. 그가 폰을 들어 다음 노래를 재생(하는 화면을 촬영)하면 정말로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가 다음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런 장치는 더 가까이 그들과 공명하고 싶다는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준다. 일개 관객은 이 정도의 연출로도 위로받을 수 있다. 카메라맨의 영상 중간중간에는 오퍼레이터가 때에 맞게 내보내는 영상이 매끄럽게 끼어든다. 영상을 입고 있던 배경 천은 어느 시점에 등장한 스태프가 거두어낸다. 이 모든 일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마음 맞는 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 내며, 그 무언가에 대해 다들 ‘좋다’라는 합의점을 공유하고 있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이 내미는 합의 문서에 좋아요 도장 찍는 일이고 그건 너무 쉽다. 정말로 좋으니까. 기분 좋게 무대에 감응하면서 나 역시 점점 팀원이 되어간다. 외롭지 않다.

떨어지는 종이 조각들. 앨범과는 다른 편곡. 관객부터 무대까지 훑고 지나가는 조명.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하나의 소리를 내는 기적. 모든 노래를 조금씩 슬퍼지게 만드는 오혁의 목소리. 같은 박자 다른 모양으로 몸을 흔드는 사람들. 애초에 장르에 얽매인 적 없는 혁오. 그 덕에 [20]에서 [23]으로 [사랑으로]에서 [24]와 [22]로 또 [AAA]로 마음껏 넘나들 수 있는 자유. ‘New born’이 흐른다. 살아만 있다면 이 노래를 들으며 몇 번이고 새로 태어날 수 있다. ‘Love Ya’가 흐른다. 이들의 음악을 빌려 사랑을 얼마든지 신격화해도 괜찮을 것 같다. 마지막의 마지막 곡으로 ‘공드리’가 흐른다. ‘공드리’는 고등학교의 기억과 그대로 동행한다. 앞서 [18]이나 [19]가 없어 아쉬웠다고 했던 과거의 나는 ‘공드리’로 허기를 채웠다. 기억은 감각에 의존하는 법이다. 특정 시기에 반복해서 감상한 노래는 언제나 그때의 기억을 업고 온다. 나를 재빠르게 교복으로 갈아입히고 18살로 만들어 앉혀둔다. 눈물은 딱 흐르지 않을 만큼만 고인다. 무대가 빛에 퍼져 살짝 뭉개진다. 귀로는 ‘공드리’를 듣고 눈으로는 또 친구들을 본다. 지난했던 시기를 함께 통과해 이 노래를 안전하게 들을 수 있는 지금이 왔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지금껏 나를 구한 음악의 절반은 혁오의 몫일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 콘서트가 끝났다. 일개 관객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며 흥분에 젖은 감상을 내뿜는다. 야 미쳤다. 선셋롤러코스터의 재발견이야. 오혁이 입은 옷 무슨 무슨 브랜드더라. 뒤에 깔리는 영상 봤어? 아 집 언제 가냐. 제각기 다른 단어지만 떠나기 아쉬운 목소리라는 점은 같다. 그 사이에서 나도 조금 울적해진다. 예상한 결과다. 거대한 기쁨을 느끼고 나면 일정한 슬픔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3시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속으로 동의한다. 우리는 오늘의 기억으로 며칠을 지탱하겠지. 그러다 또 견딜 수 없어지면, 그런 일이 생겨버리면, 휴대폰을 꺼내 4월 26일로 돌아가겠지. 그날의 심장은 못 이기는 척 이날의 무대와 박자를 맞춰가겠지. 사랑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야 처음 마주한 혁오의 맨얼굴. 혁오 노래를 들으면 이제 그 얼굴들이 새롭게 따라 나오겠지. 아마도 내년 생일에 듣게 될 건, 존재하지 않는 [26] 대신 이 순간의 기억이 불러주는 생일 축하합니다...
콘서트가 끝나고 역 앞에 모여 작별 인사를 하고 난 후에도 친구들과 나는 아무도 발을 떼지 않았거나 떼지 못했다. 몇 마디 감상을 주고받다가, 벽에 괜히 등을 기대도 봤다가, 무슨 노래가 제일 좋았냐고 묻다가, 배고프지 않냐는 누군가의 말에 다 같이 치킨을 먹으러 갔다.
혁오 콘서트를 관통하고 이틀 후, 스물다섯 번째 생일. 올해의 순서는 [사랑으로]. 다 듣고 나선 핸드폰으로 담아온 콘서트 영상을. 다 보고 나선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토독토도독 이 글을. 메모였던 것이 어느새 여기까지 불어났네. 이 글은 혁오를 거쳐 온 시간의 회고록. 그리고 스물다섯의 내게 주는 올해의 생일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