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ers Everywhere”-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중앙관에 설치된 “Foreigners Everywhere” 문구다.
출처: 직접 촬영
지난 2024년, 동시대의 주요 미술 담론이 오가는 예술 축제 중 하나인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최되었다. 이미 많은 언론이 다루었듯, 최초의 남미 출신 감독 큐레이터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Foreigners Everywhere”*라는 주제를 내걸어 중앙관(Central Pavilion)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관에서 외국인, 이민자, 소수인종 등이 겪는 비주류 내러티브를 선보였다. 이러한 주제를 바탕으로, 2024년에는 어보리진 작가 아치 무어(Archie Moore)가 호주 원주민의 역사를 다룬 호주관의 전시 “kith and kin”이 황금 사자상을 받았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지난 해 영국을 비롯한 서구 각지의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은 과거 제국주의적 행보를 반성하기 위한 탈식민지 서사와 비백인 작가의 대표성을 다루는 여러 문화적 서사를 담론의 중심으로 두었으며, 이러한 기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보다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로 해석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의도에 더 가깝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우리와 다른 이들을 마주칠 수 있으며, 우리 또한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민자 정책의 변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다양성에 포용적인 미술계의 움직임과 달리, 비엔날레가 끝났던 지난 해 11월부터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이민자 정책은 보수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식민주의 이후의 경제적 혹은 정치적 국제 권력 구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북반구’라는 지리적 용어보다는 서구 중심의 선진국들을 지칭하는 지정학적, 이념적 용어다. 한국, 일본, 홍콩, 마카오, 대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북반구에 위치해있더라도 글로벌 노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반대로 호주와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위치하지만 선진국으로 분류되기에 글로벌 노스에 속한다.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를 구별하는 지도.
출처: Wikipedia
2024년, 미국의 공화당은 대선을 앞두고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국익우선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추구하는 핵심 정책 공약을 내세웠고, 지난 해 11월 트럼프가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일부는 이미 실행 국면에 접어들었다. 최근 베네수엘라인 약 35만명의 임시 보호 신분(Temporary Protected Status)***을 철회하여 그들의 추방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미국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비시민권자의 해외 송금에 5%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여 자국의 가족들을 부양하는 외국인들의 경제적 상황에 부담을 주었다. 특히 지난 22일, 하버드의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하여 고학력 국제 학생들의 졸업 후 미국 정착을 억제하려는 조짐도 보였다.
***통칭 TPS. 특정 국가 출신 외국인이 자연재해나 내전 등의 사유로 자국으로 돌아가기 위험하다고 판단되었을 경우 일시적으로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신분이다. 시민권이나 영주권과는 다르다.
영국 또한 지난 해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Kier Starmer)가 80대 총리로 부임하며 이민자 인구를 매년 10만명 씩 줄이기 위한 이민 제도 개편안을 지난 5월 12일 정책 백서로 발행했다. 개편안의 주요 내용은 시민권 신청을 위해 영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세금을 내야 하는 최소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국제 학생들이 졸업 후 영국에서 일할 수 있는 졸업 비자(Graduate Route Visa)의 기한을 2년에서 1년 6개월로 단축하는 것이었다. 또한, 영국 현지 회사에서 외국인 노동자 고용 시 이들에게 지원하는 숙련 노동자 비자(Skilled Worker Visa)의 경우, 피고용인에 대한 석사 이상의 최종학력 요구조건과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이 부담하는 비자 발급 수수료를 32%로 인상하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즉, 비시민권자들을 통한 저렴한 노동력 보충은 지속하되, 이들의 영국 정착은 더욱 어렵게 만드려는 것이 현 총리의 계획이다. 특히 노동당은 14년 만에 재집권한 진보 성향의 정당이기에, 이번 이민자 정책안 발표는 현지에서 시민권 취득을 목표로 경제활동을 이루고 있는 비시민권자들에게 더욱 예상치 못한 변화로 다가왔다. 다만, 해당 내용은 영국 정부의 제안에 그치며, 실제 법률과 정책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의회의 심의와 승인을 받아야 하기에 향후 논의와 입법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유럽은 최근 독일이 EU의 규정과 별개로 자국의 공공 질서와 내부 안보 보호를 위해 독일 국경에서 서류 미비 이민자 및 난민 신청자들을 즉시 돌려보내고, 모든 인접국을 '안전한 제3국'으로 간주하여 이들 국가를 통해 입국한 난민 신청자들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2015년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전 총리의 개방적 이민 정책을 뒤집는 조치다. 이러한 조치가 유럽사법재판소의 법적 대응으로 이어질 지, 혹은 다른 EU 회원국의 이민자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이어질 지는 향후의 동향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세 선진국의 이민자 정책 변화는 모두 올해 상반기에 발표된 것들로, 현 상황을 좋고 나쁨의 이분법으로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 수년 간 난민 수용과 이민자 증가로 단기간 과도하게 넓어진 문화적 스펙트럼, 충분한 기반 없이 시민이 된 빈곤층 이민자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저지르는 불법 행위, 경기 침체로 인한 취업 시장 동결이 지속적으로 기존의 자국민들과 이민자 및 외국인들 사이의 갈등을 키워온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해당 국가들이 이러한 다소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조가 확산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도 분명 있다. 국가가 사회적으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 관련 행정부터 개편하는 방식이 지속된다면 한 공동체 내에서 정상 시민과 타자를 나누는 작업이 정당화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이민자와 외국인이 정치적 희생양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이들을 시작으로 여성, 장애인, 소수자들에 대한 급 나누기도 당연시 될 여지가 있으며, 나아가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포용하고 평등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그간 쌓아온 민주주의적 토대가 허물어질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예술과 정책의 간극, ‘포용’은 허상인가
지난 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Foreigners Everywhere”라는 제목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탐험하는 장을 마련했던 만큼, 최근 선진국들의 이민자 정책에 관한 보수적 변화는 미술 제도의 이상과 실제 정책 결정권자들이 좌우하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민자와 소수자들의 서사는 전시장에서 ‘색다른 것’으로 소비될 뿐, 현실에 사는 실제 ‘이방인’들은 정착할 보금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여 있다.
사실, 이러한 모순은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도 지적받은 바 있으며, 일부 서구 기관에서도 지속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Foreigners Everywhere”는 이민자, 소수인종, 토착민 등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다양한 정체성들을 포용하려는 취지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들이 지닌 각자의 복합적 서사를 하나의 ‘비주류’로 분류하여 오히려 평면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례로 당시 영국관은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의 작품으로 영국 이주사, 중국 시, 아프리카 역사, 생태 정치 등의 폭넓은 주제를 다뤘으나 이로 인해 전시를 통해 전달하려는 핵심이 모호해져 ‘그저 서사들을 나열한 것’이 되었다.
또한, 지난 해 직접 비엔날레에 방문했을 때, 중앙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관이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적 업보를 청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서구 식민주의 역사에 완전한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속하지 않았던 주변 아시아 국가관들은 들러리에 그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런던과 유럽의 여러 현대미술 전시의 서문에서 아프리카로부터 자신의 문화적 근간을 탐구하는 흑인 이민자 작가와 1980년 에이즈 유행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성소수자 작가 이야기를 수도 없이 접했다. 이러한 과도한 정체성 서사 중심의 큐레이션을 마주하며, 그들의 존재가 ‘동등한 주체’로 보여지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시점이었다.
앞으로 예술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미술계의 제도는 그저 선진국 엘리트 고학력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을 펼치고 있을 뿐인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고대와 과학기술을 넘나들며 자신의 아프리카 정체성을 탐구한 타바레스 스트라찬(Tavares Strachan)의 전시를 보며 느낀 개인의 문화적 근간에 대한 고민, 학부 시절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dridge)의 작품을 공부하며 알게 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청중으로서, 학습자로서 자신의 문화적 서사를 예술적 수양과 결합하여 다름에 공감할 기회와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수많은 작가들이 미술 제도에서 소개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대표성의 틀을 넘어 보다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이해를 도모하려는 제도 내의 움직임도 있다. 본 기고문은 그 중 하나로 바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Contemporary and Modern Art Perspectives(C-MAP)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프로그램은 북미와 서유럽 외 지역의 현대 및 근대 미술사를 장기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내부 협업 기반 연구 프로젝트로,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유럽 세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리서치 그룹이 작가, 큐레이터, 연구자를 초청하여 세미나와 현장에서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지역적 맥락의 근현대 미술사를 다층적으로 탐구한다.
C-Map의 온라인 자료를 볼 수 있는 사이트. 지역별로 카테고리를 검색하여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동아시아 근현대 미술사를 정치, 환경 등의 서사와 결합하여 소개는 글들이 상당히 흥미롭다.
출처: MoMa 웹사이트 화면 캡쳐
C-MAP은 이를 통해 MoMA 소장품의 기존 작업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향후 기획과 수집에 있어 더 넓은 미술사적 맥락을 반영하여 단순히 작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생산한 실천과 문화적 배경을 동등한 지적 주체로서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간다.
“이방인들(Foreigners)”이 있을 곳을 잃어가는 지금 상황이야 말로, 미술계는 다양한 정체성의 서사를 발굴하고, 재해석하고, 소개하는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다만 이는 작가의 '대표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동시대를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과 개념, 재료, 기법을 아우르는 예술적 실천을 함께 조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