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서막
페트라 근처, 와디무사에 숙소를 잡고 요르단에서 가장 유명한 페트라로 향했다. 페트라는 고대 시대 유목민 나비테아인들이 건설한 산악 도시로, 사암 산을 깎아서 만든 도시이다. 돌을 깎아서 건축물을 만들었음에도 굉장히 정밀하게 조각한 것으로 유명하다. 페트라는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새로웠다. 물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수로의 각도를 조절한 것부터, 큰 건축물을 만들기 전에 다른 바위에서 연습한 흔적도 남아있었다. 특히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알 카즈네는 돌로 조각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매우 섬세했다. 이분들의 끈기와 열정이 대단한 것 같다.
알 카즈네를 지나 쭉 가다가 가면 안될 곳을 갔다. 그곳은 바로 ‘희생의 제단’이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하다. 페트라는 하나의 도시이기 때문에 아주 넓다. 하루만 구경하는 여행객이라면 메인 코스로 쭉 구경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우리도 메인 코스로 성실히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페트라 메인 코스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희생의 제단에 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 지도상에서는 조금만 올라가면 희생의 제단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나와 있어서, 잠깐 올라갔다 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올라가야 했던 길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게 아니었다. 아주 가파른 계단을 계속 올라도 길은 끝이 없었다. 결국 나랑, 현승, 택연, 재우가 뒤처졌다.(7명의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이다 자세한 내용은 1편과 2편을 참고하면 된다) 하원, 가은, 시현은 빠른 속도로 올라가다가 우리 시야에서 벗어나 버렸다. 뒤처진 친구들과 터덜터덜 걸으며 가고 있는데, 일명 피리 할머니를 만났다.
그분은 올라가는 계단 한복판에 앉아 어딘가 섬뜩한 소리를 내며 피리를 연주하고 계셨다. 우리는 모른 척 얼른 지나가려고 했지만, 그분이 갑자기 피리 연주를 멈추고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자신의 남편이 죽은 이후로 매일 이곳을 오르며 피리를 연주한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행운의 상징이라며 자신이 이곳에서 주운 특별한 돌을 우리에게 주셨다. 절대 잃어버리거나 버리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우리는 그 돌을 강제로 손에 쥐었다. 현승이가 속삭였다. “이거 공포영화 오프닝이다.” 아 진짜 이러지 마라. 일단 할머니께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할머니가 뒤따라 올라오시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이제 우리는 멈출 수 없는 기차에 탄 것이다. 절대로 뒤돌아보거나 쉴 수도 없다. 현승이가 다시 말했다. “근데, 할머니가 죽은 남편을 기억하며 오른다는 이곳의 정상에 있는 건 ‘희생의 제단’인데...이게 무슨 연관일까?” 뭐..뭐라고? 다음 희생은 우리인가. “얘들아, 살고 싶으면 그냥 오르자” 이후 우리는 정말 단 한순간 쉬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갔다. 공포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결국 더 이상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근데, 보여야 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에 왔지만 먼저 올라간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보이지 않자 슬슬 화가 나고 불안해졌다. 유심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는 우리였기에, 매우 심란한 마음이었다. 같이 올라간 택연이와 재우의 손에 그 할머니께서 주신 일명 행운의 돌이 보이지 않았다. 거슬려서 중간에 그냥 두고 올라왔다고 했다. 설마 이것 때문에? 기절하기 직전, 한 줄기 빛과 같은 하원이의 빨간 머리가 희미하게 보였다. 살았다! 다행히 모두 잘 만나서 다시 내려올 수 있었다. 웃긴 건 나랑 같이 간 친구들은 진이 다 빠져서 희생의 제단은 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열심히 등산한 사람이 됐다. 희생의 제단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써서 메인 코스를 끝까지 돌지 못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주 짜릿한 경험을 했으니 만족한다. 아직 내 책상 위에는 피리 할머니께서 주신 행운의 돌이 우뚝 서 있다. 이 돌을 버리면 공포영화가 다시 재생될 것 같기 때문이다.
이게 그 돌이다
(참고로 앞서간 친구들도 피리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근데 왜 이 친구들은 그냥 지나치시고 우리에게 말을 거셨을까?)
정말 별거 아닌 희생의 제단
암만: (부사)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암만은 요르단의 수도이자, 요르단 사해와 가까운 곳이다. 보통 암만 숙소에서는 사해로 가는 차편을 제공하거나 대신 택시를 잡아준다. 우리도 숙소 사장님께 사해로 가는 택시를 여쭤봤고, 수많은 흥정 끝에 적당한 가격으로 택시를 구할 수 있었다. 이 글의 1, 2편을 읽은 사람은 느꼈겠지만, 우리는 돈을 아껴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유료 해변이 아닌 무료 해변으로 가야 했다. 무료 해변으로 가겠다는 우리의 말에 사장님께서는 좀 놀라신 것 같았다.
숙소 사장님께서 잡아주신 택시 기사님들은 핫산, 아흐만 아저씨였다. 이분들과 함께한 것은 정말 축복이었다! 두 분은 진심으로 우리를 환대해 주셨다. 영어가 서툰 아저씨는 구글 번역기를 키고 사해 주변 지역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사해 근처는 온도가 높아서 지금도 점점 해수면이 낮아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주변에는 농장이 많으니 과일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는 길에 들러도 좋다고 하셨다. 심지어 택시 와이파이도 빌려주셨다! 너무 친절한 분이셨고, 한국 노래 좋아하신다면서 블랙핑크 노래도 틀어 주셨다.
사해에 도착했을 땐 살짝 당황스러웠다. 화장실이나 샤워실 하다못해 발을 닦는 곳도 없이 잔잔한 사해와 굴러다니는 쓰레기들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심지어 뒤쪽엔 폐허가 된 건물이 스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이 사해의 무료해변이구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은 사해니까! 처음에는 다들 겁을 먹고 조금씩 들어갔다. 소금으로 딱딱하고 뾰족한 사해 바닥은 슬리퍼를 놓치면 죽음뿐이었고, 혀에 살짝 스친 사해는 짜다 못해 아주 쓴 맛이 났다. 왜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 있는지 바로 이해했다. 우리는 천천히 깊은 곳에 들어가면서 몸이 뜨는 것을 느꼈다. 사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뒤로 딱 누웠을 때 가장 신기했다. 정말 내가 낙엽이 된 것처럼 몸이 붕 뜬다! 컨셉 샷을 위해 미리 사 온 과자를 잡고 한 명씩 사진을 남기며 사해를 만끽했다. 하지만 긴 시간 놀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이 점점 따가워졌다. 소금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았고, 우리는 한 시간 정도 놀다가 남은 과자를 먹고 수동 샤워실을 이용(?)했다. 옷을 입은 채 서로 물을 부어주며 대충 씻었다.
준비한 수건으로 아무리 닦아도 우리 몸은 젖은 상태였다. 택시에 어떻게 다시 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핫산, 아흐만 아저씨 두 분은 우리가 그냥 타도 괜찮다고 흔쾌히 허락하셨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번역기를 이용해 서로 대화를 나눴다. 두 분은 모두 팔레스타인이고, 이스라엘에서 추방 당해 이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있는 가족과도 헤어져 살고 있다고 하셨다. 같은 배경을 가진 두 분이 서로를 의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쯤 어떻게 지내시나 정말 궁금하다. 이때는 2020년이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줄 몰랐던 때였다)
핫산 아저씨가 소개해주신 약수터(?) 1급수라고 엄청 강조하심!
가는 길 중간에 주유소에서 잠깐 멈췄다. 두 분은 모두 무슬림이라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 멈춰야 했다. 근데 아흐만 아저씨만 기도를 드리러 가고 핫산 아저씨는 그대로 계시길래, 왜 같이 안 가시냐고 여쭤봤다. 핫산 아저씨는 번역기로, ‘저는 게을러서 때때로 기도합니다. 아흐만은 부지런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진짜 귀여운 아저씨다. 그렇게 대화는 자연스럽게 종교로 넘어갔다. 아저씨는 우리의 종교에 대해 물어봤고, 우리는 기독교인이라고 답했다. 사실 이슬람과 기독교는 사이가 좋은 종교가 아니기에, 기독교라고 답하는 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대답했고,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들고 뭔가 찾기 시작하셨다. ‘뭐지? 우리를 신고하시려는 건 아니겠지? 우리 좋았잖아요 아저씨...’라고 생각하던 찰나, 아저씨는 자신에게도 기독교인 이웃이 있다고 했다. 핸드폰으로 집 CCTV에 보이는 그 이웃의 차를 보여주었다. 아저씨는 이웃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시면서, 무슬림은 무슬림의 믿음이 있는 것이고,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의 믿음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속 좁은 편견이 삐쭉 튀어나와 나를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한 번도 무슬림이랑 대화해본 적도 없으면서, 함부로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던 것이다. 아저씨와 대화하면서 환대와 존중에 대해 배웠다. 비록 같은 종교도 아니고, 국적도, 배경도 다 다르지만, 기꺼이 환대하는 마음으로 대화하고 함께 웃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위로를 얻었다. 있는 그대로 우리를 바라보며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미소 지어주는 아저씨가 참 고마웠다. 우리는 무슬림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며,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다.
아흐만, 핫산 아저씨는 암만 공항에 갈 때도 함께했다. 이때도 우리에게 충전기를 빌려주시고, 오이(!)도 주셨다. ‘오이는 이 차의 옵션입니다’라고 하셨다! 끝까지 사랑스러운 분들이다!! 우리는 시원한 오이를 하나씩 먹으며 마지막 암만의 모습을 눈으로 담았다. 도착했을 때, 나는 내가 가진 유일한 작은 사탕을 아저씨께 드렸다.
소중한 오이와 핫산 아저씨